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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則死 死則生


박근혜 대통령 비선 실세로 지목된 최순실씨의 국정 농단 파문 이후 첫 주말을 맞은 29일 서울과 부산 등 전국 곳곳에서 대규모 촛불시위가 열렸다. 집회 참가자는 중고생과 대학생은 물론 ‘넥타이 부대’ ‘유모차 부대’까지 전 연령을 망라했다. “인생 자체를 속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거나 “우리나라가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이 성공할 수 있는 나라라는 믿음이 무너졌다”는 참가자들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최씨 사건은 국민의 자존심과 신뢰에 깊은 상처를 입혔다. 박근혜 정권이 신뢰의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90초 사과’로 의혹만 키워놓은 채 침묵으로 일관하던 박 대통령이 28일 심야에 청와대 비서진의 일괄 사표 제출을 지시하고 검찰이 핵심 관련자들의 사무실과 집에 대한 뒤늦은 압수수색에 나선 것도 민심이 심상치 않다는 걸 의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씨 관련 의혹이 언론에 보도된 지 한 달가량이 흘렀지만 사건의 핵심 관련자들은 자리를 보전한 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특히 독일에 체류 중으로 알려진 사건의 몸통인 최씨는 변호인을 통해 검찰 수사에 응하겠다는 원론적 답변만 내놓은 채 도피 행각을 이어가고 있다.


진작 경질했어야 할 비서진 몇 명 자르는 것으로 국민의 분노를 달랠 수 있다고 판단했다면 오산이다. 박 대통령은 즉각 다음 단계의 수습책을 제시해야 한다. 우선 우병우·안종범 수석과 ‘문고리 3인방’은 당장 검찰 수사를 받게 해야 한다. 최씨도 시간을 끌지 말고 빨리 귀국시켜 스스로 의혹의 진상을 밝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최씨에 대한 성역 없는 수사를 어느 선까지 허용하느냐가 이번 사태에 임하는 대통령의 자세를 가늠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나아가 박 대통령은 여야 정치권과 원로들의 촉구대로 조속히 책임 총리를 임명해 권한을 대폭 이양하고 거국중립내각을 출범시켜야 한다. 존재감 없는 황교안 총리로는 책임 총리 시스템을 끌고 가기 어렵다. 초당적인 지지를 받는 경륜 있는 인사를 책임 총리로 임명하고 그의 제청을 받아 중립적 인사들로 내각을 꾸려야 한다. 또다시 시일을 끌며 미적거려선 안 된다. 이와 함께 박 대통령도 온 국민이 의혹을 품고 있는 자신과 최씨의 관계에 대해 투명하게 설명하고 엄정한 수사를 하도록 촉구하는 게 필요하다. 이번 사태는 단순히 대통령의 측근 비리가 아니라 대통령 본인이 연루된 국기문란 의혹이란 국민적 의심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조금이라도 진실을 숨기려는 모습을 보인다면 사태는 더 악화될 뿐이다.


야당이 요구하는 ‘별도 특검’도 수용하는 게 좋다. 박 대통령은 이미 대국민 사과를 통해 청와대 문서 유출을 간접 시인한 데 이어 재벌 총수들에게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을 지원토록 촉구했다는 주장까지 제기된 상태다. 그런 만큼 대통령이 헌법의 불소추 특권을 따지지 말고 스스로 수사받겠다고 자청해야 한다. 검찰이 뒤늦게 특별수사본부까지 차리고 관련자들을 소환하고 있지만 국민이 납득할 수준으로 의혹을 해소해줄 것으로 보는 이는 많지 않기 때문에 특검으로 가는 게 옳다.


정치권도 인식과 태도를 바꿔 나라 구하는 데 한 몸이 돼야 한다. 나라가 절체절명 위기에 빠졌는데도 여전히 대통령 눈치만 살피거나 자신의 유불리를 계산하는 새누리당 친박계 인사들의 행태는 국민적 지탄을 받고 있다. 최씨 사건이 터진 데는 민심은 외면한 채 ‘박심’만 쳐다보기 급급했던 새누리당의 책임도 작지 않다. 그런 만큼 집권당은 즉각 별도 특검에 합의해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에 협력해야 한다.


더불어민주당도 사태 수습에 책임감을 갖고 나서야 한다. 돌연 여당의 석고대죄, 우병우 수석 사퇴, 최순실 부역자 전원 사퇴 등 3대 선결조건을 주장하며 특검 협상을 깬 건 시간을 끌면 끌수록 대선 구도에 유리하다는 계산이 작용했다는 의심을 사고 있다. 정치공학을 앞세워 얄팍한 수 싸움을 벌인다면 야당 역시 국민적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호(號)’는 좌초 위기를 맞고 있다. 국가적 위기 상황을 맞아 대통령과 정치권, 검찰은 자신의 유불리를 떠나 애국심을 갖고 나라 구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고 죽기를 각오하면 살 것(生則死 死則生)’이란 충무공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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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