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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형 소 해체, 구걸 공연 작가 미공개 전시 ‘기이한 협업’ 그 후는?

일러스트=강일구 ilkooK@hanmail.net


2016년 현재 세계 곳곳의 현대 미술계는 중층적 위기에 직면한 모습이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미술시장에 일었던 거품이 꺼지면서 갖가지 문제가 노출되고 있다. 초대형화한 미술관의 기대와 요구에 부합하는 초대형 작품을 제작해, 초대형 상업 갤러리와 초대형 아트페어를 통해 초고가에 판매하는 거물급 작가들의 시대는 저물고 있다. 물론 신자유주의적 열망에 부합하는 거물급 현대미술가들이 하루아침에 사라지진 않을 것이다. 그들은 자본주의를 이리저리 비판하면서도, 이면에선 늘 정치적 거래를 시도했고, 또 투기 자본가들의 후원에 힙 입은 국제적 명성과 함께 1, 2차 시장에서의 미술품 가격 상승을 노골적으로 추구함으로써 전례 없는 특수 기득권 집단으로 거듭났다.


중산층이 늘어나며 경제가 성장하던 시절에는, 미술계도 거의 모든 면에서 팽창을 거듭했다. 미술대학도, 현대 미술가의 수와 작업의 규모도, 수집가의 수와 소장선의 규모도, 주요 미술관의 수와 그 운영 규모도, 국제 비엔날레의 수와 그 운영 규모도, 정부의 진흥 및 후원 정책도, 모두 점진적으로 ‘성장’하고 ‘발전’해왔다. 하다못해 유명 작가의 회고전 도록조차도 더 크고 더 두껍고 더 화려하게 변화해왔다. 현대 미술계가 걸어온 이런 팽창의 궤적은 정말로 성장이고 발전이었을까.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기대 감소의 시대가 본격화하는 과정에서 미술가들은 처음으로 수축하는 세계를 전제로 현대미술의 미래를 생각해보게 됐다. 세계 경제가 장기 침체에 빠지고 주요 산업국가에서 연이어 ‘인구절벽’이 가시화되고 중산층이 사라지면 적잖은 수의 미술대학이 사라질 것이고, 현대 미술가의 수와 작업의 규모도 축소될 것이며, 수집가의 수와 소장선의 규모도 줄어들 것이다. 또 주요 미술관이나 비엔날레의 수와 그 운영 규모 또한 구조 조정될 것이며, 정부의 진흥 및 후원 정책도 축소될 것이다. 그러한 미래상에 비평적으로 대응하는 현대 미술가와 현대미술은 어떤 모습일까.


자신의 스튜디오를 대형화하거나 주요 화랑에 소속되기는 커녕 신작 지원금이 제공되는 전시 기회를 얻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서울의 청년 미술인들은 새로운 생존 방식을 창출해냈다. 새로운 방식이란 이러저러한 콜렉티브를 결성해 이합집산하며, 과거의 대안공간과는 다른 성격을 띠는 한시적 공간을 마련해 비평적 프로토콜에 따라 유동하는 양태로 전시를 구현하고, 그 과정에서 비교적 보관이 용이한 작은 규모의 작품을 파생시키는데, 종종 기이한 방식으로 협업을 시도하는 것들이다.


 

1 2015년 10월 굿-즈 2015에서 모형 소 헬포니를 해체하는 작가 김웅현.


[작가들이 직접 부스 차리고 관객 만나]예컨대, 2015년 10월14일부터 닷새 동안 세종문화회관 세종예술동에서 열렸던 ‘굿-즈 2015’는, 그러한 방법론적 특성을 명확하게 드러낸 기획이었다. ‘교역소’ ‘지금 여기’ ‘구탁소’ ‘비디오 탄산’ ‘시청각’ ‘커먼센터’ ‘413’ 등 현대 미술계의 세대교체를 이끌고 있던 15개 단위가 참가한 이 행사는, 기념품의 양태로 제시되는 현대미술을 사고파는 일종의 예술 생산자 페어였다. 화상(畵商)들이 주도하는 대형 아트페어와 달리, 작가들이 직접 부스를 차리고 앉아서 소비자와 관객을 만났다. 만화·애니메이션 동인 행사인 서울코믹월드의 방식을 차용해, 미술가들과 관객이 새로운 방식으로 다시 만나는 자리였다고 할 수 있다.


한데 ‘굿-즈 2015’에 약 6000명의 관객이 몰리고, 1억6천만원 정도의 매출이 일어나자, 구세대 미술인들로부터 “돈을 밝히는 청년들이 자본주의적 아트페어를 무비판적으로 모방한다”는 억측과 오해를 사기도 했고, 실제로 이러한 비난이 비평문으로 작성돼 지면에 실리기도 했다. 행사장을 찾아와 직접 청년들에게 호통을 친 자칭 타칭 진보 미술인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반대로 이 행사가 성공했으니, 내년에도 열어야 한다고 주문하는 순진한 기성세대도 있었다.


 

2 거지로 분장한 채 구걸을 공연하는 작가 김동규.


이러한 구세대의 오독은, 무척 흥미로운 현상이기도 했다. 사실 ‘굿-즈 2015’에 참여한 작가들의 모습은 굿즈 양태의 미술품을 사고파는 실제 상황을 구현하는 마라톤 퍼포먼스의 풍경에 다름 아니었다. 일식 우동집에서 직원들이 손님을 맞을 때 큰소리로 인사를 해서 분위기를 잡듯, 입구와 지하의 매대에서 참가자들이 함성을 질러 시장통의 분위기를 내는가 하면, 김웅현 작가는 모형 소를 만들어놓고 도축 퍼포먼스를 벌이며 잘라낸 부위별 모형 고기를 굿즈 양태의 미술품으로 판매했다. 김동규 작가는 “팔 작품이 없다”는 이유를 내세워 거지로 분장한 채 구걸을 하다가, 누가 돈을 주면 고맙다고 와락 안아주고, 나중엔 모인 돈으로 남의 작품을 구매하기도 했다. 매출이 꾸준히 발생했어도 재료비와 일당 이상으로 돈을 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투여한 노동과 재고로 남은 굿즈 등을 종합해 따지면 상당한 적자였다. 남은 것이 있다면 새로운 실험적 전시 운용 방식과, 관객과 직접 대화하는 가운데 실제 상황을 작업으로 구현하며 작업의 파생물을 기념품처럼 판매해본 경험과 이력이다.


‘굿-즈 2015’에 앞서, 보다 난도가 높은 시간과 공간 활용법도 시도된 적이 있다. 신생공간 ‘CC101’ ‘공간사일삼’ ‘개방회로’ ‘200/20’에서 순차적으로 전개된 릴레이 기획전 ‘던전’이 그것이었다. 2015년 5월4일 개막한 이 기획전은 대규모 다중 사용자 온라인 롤 플레잉 게임에서 공유되는 ‘인스턴스’라는 개념을 현대미술에 적용한 것이 특징이었다.


던전으로 불리는 게임 속 공간에, 동시 접속한 대규모의 게임 플레이어들이 몰리는 경우 발생하는, 서버 과부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안된 개념이 인스턴스다. 이는 유클리드적 공간에 소단위로 분할된 파티 단위의 임시 공간을 할당함으로써 새로운 시공을 다중 창출하는 수법, 위 아래가 없는 일종의 레이어 개념이라고 볼 수도 있다.


기획자인 강정석 등은 온라인 게임의 공간 운용 방법을 신생공간에 적용해, 누구도 같은 경험을 할 수 없는 ‘던전’을 기획해냈다. 전시를 방문하고자 하는 관객은 사전 예약을 통해 ‘던전을 모험하는 파티원’으로 초대됐고, 서로 다른 장소와 일정을 따라 전시를 관람하도록 반강제적으로 유도됐다. 이는 사실 미술관에서 도슨트에 의해 특정 동선에 따라 안내되는 레디메이드 전시 경험을 작가들이 폐허 같은 곳에 들어선 신생공간에서 직접 한시적 작업으로 전치해 구현해본 결과이기도 했다. 소셜네트워크의 타임라인처럼 유동하며 사라지는 양태의 작업이자 전시로서의 ‘던전’은 전통적인 미술비평의 방식으로는 포착하기 어려운 새로운 예술 형식이자 내용이었기에, 자료집 한 권과 떠도는 풍문으로 남았지만 동세대 작가들에게 공유된 자각의 효과는 뚜렷했다.


이후 1980년대생 현대 미술인들은, 장소 특정성의 설치미술을 관계성의 실험으로 전치하던 관계미학의 2000년대식 방식에서 벗어나 다양한 실험을 전개하고 있다. 한 예로는, 권순우 큐레이터가 동료 작가들과 함께 기획한 ‘웨스트웨어하우스’라는 전시 공간을 들 수 있다. 지금은 서울시립미술관의 ‘SeMA 창고’로 이름이 바뀌었지만, 작가들은 서울혁신파크 내의 구 시약창고의 공간을 사용할 한시적 권리를 얻어 새로운 양태의 전시를 구현해냈다.


 


[저가 의류 매장 같은 디스플레이도]‘웨스트웨어하우스’의 두 번째 전시였던 노상호 개인전 ‘더 그레이트 챕북’은 지난 10월1일 개막해 15일 폐막했는데, 얼핏 예의 현대미술 전시와 크게 달라 보이진 않았지만 실은 달랐다. 노상호 작가의 회화 작업을 총망라한 이 전시는 공들여 제작한 웹사이트와 짝을 이루도록 고안됐는데, 이는 물건 구경은 백화점에서 하고 실제 구매는 온라인 샵에서 하는 오늘의 쇼핑 패턴을 전시에 적용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실제 전시 공간의 디스플레이 방식도 마치 저가 의류 매장 같아서, 상당한 양의 연작 그림들은 줄줄이 옷걸이에 걸린 채 제시됐고, 오히려 공간을 지배하는 이미지의 역할은 간판의 문법으로 제시된 작업의 디테일 샷이나 배너처럼 내걸린 일부 작업이 맡았다. 이 공간 연출과 설치를 총괄한 작가는 김동희였고, 그 과정에서 여러 작가가 참여했으며, 홍보물 디자인과 웹사이트 구축은 디자인팀인 물질과 비물질이 맡았다.


올 연말, 청년 세대의 현대미술인들은 다시 이합집산하며 새로운 도전에 나설 예정이다. 여러 기획 가운데 가장 주목되는 것은 새로운 타입의 사진 전시·판매 플랫폼을 자처하는 ‘더-스크랩’(날짜 미정)이다. 사진가 김익현 등의 공동 기획으로 동대문 일대의 공실에서 전개될 이 행사는, 동일한 A4 크기의 C-프린트 방식으로 출력된 작품을 제목이나 작가의 이름을 공개하지 않은 채로 번호만 매겨 전시하고 판매하는 ‘실험’이다. 입장권을 끊고 쇼룸에 입장해 전시를 구경한 관객이 구매를 원하는 사진의 번호를 입장권 뒷면에 적어 제시하면 이후 작품 저장소로 안내된다는데, 결제가 이뤄진 다음에야 해당 사진과 함께 자세한 작품 정보가 제공된다고 한다. 이러한 도전을 미술 애호가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어떤 유의미한 차이를 발견할 수 있을까. 기성 미술제도는 이들을 포용할 수 있을까. 미술계가 풀어야 할 과제다.


 


임근준미술·디자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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