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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에 콩깍지 씌어 한국말 배웠죠, 남편의 한국말 선생이 꿈

김경빈 기자



한 금발머리 덴마크 처자가 있다. 상황 발생은 덴마크 제2의 도시 오르후스다. 강의실에서 마주친 한 남자를 사랑하게 된다. 첫눈에 콩깍지가 씌었다고 했다. 그 남자는 한국인 입양아다. 오로지 그와의 인연을 이어가기 위해 한국말을 독학으로 공부한다. 마침내 결혼에 골인하고 그 남자의 모국인 한국에 교환교수로 왔다. 요즘 세상에 좀처럼 쉽지 않은 순애보다. 그 이름은 소피 브로델슨(사진), 서강대 경제학과 교환교수로 최근 서울에 왔다.



[김동률의 심쿵 인터뷰] 입양아 남편에 반해, 교환교수로 한국 온 소피 브로델슨

 

소피 교수와 남편. 스티그 교수(왼쪽)는 생후 6개월에 덴마크로 입양됐다.



-남편이 뭐가 그리 좋았나? 내가 보기엔 그저그런 ‘범생이’ 같은데. “헐- 무슨 말씀, 무엇보다 잘생기지 않았나. 2007년 여름학기 수업시간에 처음 만났다. 주로 외국인 학생들이 수강하는 클래스였는데 스스로를 소개하는 기회가 있었다. 남편이 자기 소개를 했다. 요즘 배운 한국말로 표현하자면 한마디로 ‘뿅’ 갔다. 누구보다도 당당하게 말을 이어가더라. 유일한 아시아인이고 또 한국인 입양아임을 밝히는 거리낌 없는 당당한 태도가 무척 좋아 보였다. 깡도 있어 보이고, 그래서 반했다. 좌고우면하지 않고 들이댔다. 지금 봐도 잘생긴 내 남편이다.”



-동의하기 어렵다. 남편의 외모는 그저 그렇다. 보통 한국인의 평균 인물 정도다.(이 대목에서 옆에 있던 김경빈 사진기자도 거들었다. “한번 비교해 보자. 인터뷰하는 김 교수가 훨씬 더 잘생겼다”고.) “그런가, 내가 보기에는 남편이 더 멋지다. 남편은 굉장히 지적이다. 또 교수로서도 좋은 퍼포먼스를 보이고 있다. 교양이 풍부하다. (이 대목에서 그는 남편이 very knowledgeable하다고 강조했다.) 남편과 함께한 나날들이 행복하고 만족스럽다.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만난 지 2년 뒤인 2009년 몹시 춥고 어두운 겨울 저녁이었다. 덴마크의 겨울은 춥고 어둡고 길다. 심각한 표정의 남편이 컴컴한 빈 강의실로 나를 끌고 갔다. 잔뜩 겁먹은 채 강의실 문을 열자 실내에는 수많은 장미, 캔들 그리고 와인이 준비돼 있었다. 남편이 말했다. ‘윌 유 메리 미(Will you marry me)?’ 한치의 망설임 없이 글썽이며 나는 답했다. ‘오브 코스, 아이 메리 유(Of course, I marry you).’ 그리고 11개월 뒤 결혼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한국인 입양아인 남편은 한국말을 단 한마디도 못한다. 그런데 소피 교수는 한국말에 능통하다. 어째 좀 이상하지 않은가. “한국 속담에 아내가 좋으면 처갓집 말뚝 보고도 절한다는 말이 있지 않나. 남편이 좋아 덩달아 한국까지 좋아하게 됐다. 그래서 독학으로 한국말을 어렵게 공부했다. 인터넷과 한국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말하는 입모습을 거울을 보며 따라 하는 방법으로 한국말을 공부했다. 지금도 ‘가을동화’ 등 인기 한국 드라마의 주요 대사는 줄줄 외운다. 언어에 관심이 많다. 6개 언어에 아무런 막힘이 없다. 그러나 한국말은 굉장히 복잡하고 또 어렵다. 컨텍스트(맥락)를 알아야 무슨 의미인지 알게 된다. 정말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언어다.”



-덴마크 한국대사관 주최 한국말 경연대회에서 1등 했는데. “아마 나의 별난 연애 성공담이 한몫했다고 생각한다. 18명이 참가했다. “나의 사랑 이야기’란 주제 아래 남편과의 인연을 가감 없이 소개했다. 발표하는 도중 객석의 많은 분들이 눈시울을 적시는 것을 보고 우승을 예감했다. 부상으로 한국~코펜하겐 왕복 항공권을 받았다. 생큐 코리아 앰버서더, 멋지지 않은가?”



소피 브로델슨 교수는 1984년생이다. 노르웨이 핏줄로 덴마크 오르후스 출신이다. 오르후스대에서 경제학 박사를 취득해 현재 이 대학 경제학과 조교수로 있다. 역시 84년 부산에서 태어난 남편 스티그 브로델슨 교수는 생후 반년 만에 덴마크로 입양됐다. 같은 대학의 경영학과 교수다.



-전공이 노동경제학이다. “노동 조건에 관심이 많다. 앞으로 1년간 한국과 덴마크의 근로조건, 생산성을 비교 분석하는 리서치를 계획하고 있다. 가을 학기에는 서강대 학부에서 3학점짜리 강의도 한다. 막상 한국말로 강의하게 되니 걱정도 되고 긴장도 된다. 한국은 정말 익사이팅(exciting)하다. 모든 것이 가능한 나라다. IT 환경은 말할 것도 없고 배달서비스도, 저렴한 대중교통망도 뭐든 가능한 나라가 한국이다. 강대국을 우습게 보는 배짱도 있다. 작지만 강하고 멋진 나라다. 그러나 한국인에게 진정한 의미의 삶이 없어 보인다. 모두가 살기 위해서 사는 것 같다. 충분히 쉬고 놀아야 풀 에너지로 직장에 복귀해 일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근로시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길다. 너무 오래, 그리고 열심히 일한다.(그는 이 대목에서 working too hard를 연발했다.) 일과 휴식, 직장과 가정 간의 균형이 필요한데 한국 사회에서는 모든 게 일과 직장 우선이다. 잠시 성공할 수 있을진 몰라도 미래는 암울하다고 본다. 푹 쉬어야 열심히 일할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한국인들이 간과하고 있다. 이는 특히 한국의 거버넌스가 고민해야 하는 대목이다. 보통 한국인들이 행복해야 한국의 미래가 밝아지게 된다.”



-덴마크는 어떤가. 많은 한국인이 판타지를 갖고 있는 나라다. “덴마크는 말 그대로 복지국가다. 대학 등록금도 없고 학생들은 오히려 정부로부터 매달 일정 금액을 생활비로 받는다. 가정환경에 상관없이 받는다. 의료보장도 완벽하다. 공무원 급여는 낱낱이 공개돼 있고 조교수의 경우 월 700만~800만원 정도다. 절반이 세금이지만 불만은 없다. 대부분 만족을 느끼며 살고 있다. 그래서 삶의 질은 단연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런데 왜 한국이 좋은가. 꿈에 그리던 땅이라고 했지만 막상 와보니 어떤가. 헬조선, 교통지옥, 대기오염, 공해, 살벌한 경쟁 등이 눈에 띄나. “한국에 오게 된 데는 마영삼 대사가 한몫했다. 대사관 덕분에 한국에 대한 호감이 부쩍 커졌다. 아시아 첫 여행이 한국이었고 남편의 고향이지만 마치 내 고향 같다. 남편도 생후 6개월 만에 덴마크로 입양됐다. 당연히 한국과 우리 부부의 관계는 아직은 허니문 기간쯤 된다. 그래서 마냥 좋다. 헬조선, 그러나 세상에 완벽한 나라는 어차피 없다. 헬조선이란 말을 들으면 나까지 우울해진다. 그래도 한국은 정이 있는 나라다. 북유럽의 계산적이고도 차가운 사회에 비하면 인간미가 넘치는 나라가 코리아다. ‘별에서 온 그대’ ‘태양의 후예’ 등 한국 드라마를 보라. 인간적인 훈훈함을 느낄 수 있다. 나는 이 나라에 대해 끝없는 호감을 가지고 있다. 여러 가지 문제점은 있지만 그래도 한국은 썩 괜찮은 나라다. 그런 점에서 한국은 내게 좋은 ‘시절 인연’이다. 한국의 다양한 호칭도 흥미진진하다. 나는 소희 교수님, 소희 쌤, 미스 소희, 소희씨, 소희 학생(기분 좋다. 소희 학생으로 불린다는 것은 아직은 젊어 보인다는 의미가 아닌가? 후후), 또 때로는 소희 누나로도 불린다. 그러나 가끔 식당이나 수퍼에서 언니·이모 등등으로 불릴 때는 조금 어색해진다. ‘불금’과 ‘황토’도 멋지다. 불타는 금요일, 황홀한 토요일… 한국말 멋지다. 입양아 남편의 완벽한 한국어 선생이 되는 게 내 꿈이다.”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시작한 한국말 공부가 결국 지구 반대편 아시아의 조그만 국가 한국까지 오게 됐다는 그의 얘기는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러면서 그가 그토록 빠져들었다는 남편과 한국의 매력이 뭘까 몹시 궁금해진다. 인터뷰를 마치고 삼청동 길을 함께 걸었다. 한없이 즐거워하는 그를 보면서 문득 그의 전생이 한국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여름의 끝자락, 불어오는 공기에서 가을 냄새를 느낀다. 그리고 지독히 뜨거웠던 2016년 여름날들이 왠지 그리워질 것 같다.



 



 



김동률 서강대 MOT 대학원 교수 yule21@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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