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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덕혜옹주’ 왜곡 논란, 한국사 연구 새 발판으로 삼아야

영화 ‘덕혜옹주’의 역사 왜곡 논란이 뜨겁다. 실존 인물을 다룬 영화에서 상상력과 사실의 경계를 둘러싼 설전이 일고 있다. 지난 3일 개봉한 ‘덕혜옹주’는 19일 현재 누적 관객 444만 명을 기록하며 꾸준한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덕혜옹주’는 비운의 황녀 덕혜옹주(1912~89)의 애달픈 삶을 조명한다. 대한제국 황제 고종과 귀인 양씨(貴人 梁氏) 사이에서 태어난 옹주(翁主·후궁의 딸) 덕혜의 비극적 생애와 일제강점기 조선 민초의 간난한 일상을 겹쳐놓으며 지난 100년 우리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게 한다. 식민지 치하 조선 황족(皇族)의 수모에 눈물이 흐른다. 20세기 한국사의 크나큰 고통이다.



‘덕혜옹주’는 시기적으로 안성맞춤이다. 광복 71년을 맞은 8·15에 맞춰 찾아왔다. 국권 상실의 아픔과 회복의 기쁨을 환기시킨다. 그간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한, 역사에서 잊혀진 인물을 오늘에 다시 불러낸 점도 박수를 받을 만하다. 한국 현대사의 공백지대를 메운 셈이다. 일반 관객의 반응은 그런 시대적·문화적 갈증을 보여준다.



사설

문제는 인물을 다루는 방식이다. 영화가 상상력의 장르라고 하지만 실존 인물을 다룰 때는 무엇보다 기본 사실에 충실해야 한다. 스크린의 감동을 극대화하기 위해 일부 대목을 과장할 수 있어도 해당 인물의 성격 자체를 바꾸는 건 자칫 왜곡으로 흐를 수 있다. 대중의 감정선을 건드리는 데는 성공할지 몰라도 역사에 대한 또 다른 오해를 빚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영화에 재연된 덕혜옹주는 인물의 실체와 거리가 멀다. 결정적 오류는 덕혜옹주를 독립투사형 캐릭터로 그렸다는 점이다. 영화에서 덕혜옹주는 일본에 강제 징용돼 온 조선 백성을 위로하고, 일제에 저항하는 조선 유학생 모임에 참석한다. 또한 고종의 아들로 일본에 끌려온 영친왕을 중국 상하이(上海)로 망명시키는 일에 가담한다. 조선의 마지막 자존심으로 부각된다.



하지만 덕혜옹주는 일본 식민통치의 철저한 희생양이었다. 영친왕과 비슷하게 일본에 강제로 끌려가 일본인과 결혼했고, 고독과 병마의 세월을 감내해야 했다. 조국 독립운동을 도왔다는 증거도 없다. 조선을 강제 병합한 일제는 대한제국 황실을 이왕가(李王家)로 격하하고, 일본 궁내성(宮內省) 산하에 이왕직(李王職) 기구를 만들어 조선 황족을 관리·통제했다. 일본과 조선은 한 몸이라는 내선일체(內鮮一體)를 합리화하는 도구로도 사용했다.



‘덕혜옹주’는 우리 근현대사 연구에 새로운 과제를 남겼다. 사실 덕혜옹주라는 인물을 되살려낸 사람은 일본 여성사 연구가 혼마 야스코(本馬恭子)다. 혼마는 1998년 덕혜옹주 평전 『도쿠케이 히메(德惠姬)』를 펴냈고, 이 책은 10년 후 한국에서 『대한제국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라는 제목으로 번역됐다. 2009년 100만 부 넘게 팔린 권비영의 소설 『덕혜옹주』도 이 책을 참고했으며, 영화 제작진은 베스트셀러 『덕혜옹주』를 원작으로 삼았다. 상해 임시정부를 거쳐 대한민국의 뿌리가 됐던 대한제국에 대한 우리의 연구가 그만큼 미흡하다는 증거다.



우리 역사학계는 덕혜옹주를 주목하지 않았다. 이른바 청사(靑史)에 남을 업적이 뚜렷하지 않은 데다 몰락한 황족이란 부정적 이미지가 강했기 때문이다. 2012, 2015년 두 차례에 걸쳐 일본에서 기증받은 덕혜옹주 유품 전시가 열렸지만 그에 대한 학술적 조명은 매우 빈약하다. 국립중앙도서관·국회도서관에서 덕혜옹주를 검색해도 관련 논문을 거의 찾을 수 없다. 황실 복식 연구 정도가 눈에 띈다.



가장 큰 배경으론 일제강점기 한국사 연구가 항일독립운동, 이념투쟁 등에 집중된 점이 꼽힌다. 당대 한국 지도층의 고충, 일반 백성의 애환, 일제의 한국 통치술 등에 대한 보다 실증적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 역사를 정체된 것으로 보는 일제 식민사관, 여전히 뜨거운 감자인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은 결국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 연구를 통해 극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 ‘덕혜옹주’ 논란이 지금 우리에게 던지는 핵심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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