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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라도 에코 백을 듭시다

밤마다 잠을 설쳤다. 더위 때문이다. 절기상 입추가 지났건만 흥건하게 밴 땀이 침대 시트를 적실 만큼 더위는 물러갈 줄 모른다. 평소 기후 변화로 빚어질 위험의 경고를 우습게 알았다. 하지만 경고의 구체적 징후란 이미 곳곳에서 벌어지지 않았던가. 직접 당해봐야 안다. 잠들지 못하게 하는 더위의 원인이 바로 기후변화의 결과다. 전기요금이 무서워 평소 켜지 못한 에어컨을 팡팡 틀어대는 마누라도 비로소 실감했을 게다.



최고로 덥다는 시기에 상하이?오키나와?나가사키를 돌아보는 크루즈 여행을 했다. 팔자 좋아 다닌 피서여행이 아니다. 환경재단의 최열 대표가 이끄는 ‘피스앤 그린보트’의 일원으로 지구 평화와 환경에 기여하고 싶었음이다. 덥다는 상하이와 오키나와에서도 그럭저럭 견뎠다. 정작 숨 막히는 더위를 실감한 것은 부산항에 내려서였다. 서울에 올라오니 더 했다. 더위의 내용이 달랐다. 후끈한 열기에 습도가 곁들인 불쾌의 초절정을 겪었다. 그래도 우리나라는 중국의 도시환경보단 나을 것이라고 제멋대로 생각했다. 아니었다. 실제론 우리나라가 더 심각한 지경임을 알았다.



윤광준의 新 생활명품 -45- 에코 백

객관적 지표를 보면 상태의 우려가 그대로 드러난다. 지난 100년 동안 지구 전체의 평균기온은 0.74°C 높아졌다. 놀라지 마시라. 우리나라는 무려 1.7°C나 기온이 올라갔다. 게다가 서울과 울산 지역은 3°C에 다다른다. 숫자의 의미를 잘 읽어내야 한다. 기온의 작은 변화에도 지구 환경과 생태계는 심각한 위험을 겪는다. 세계 평균의 두 배에서 네 배나 더 높은 기온변화는 거의 재앙 수준이라 봐야 하지 않을까.



제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부랴부랴 대책을 세우는 게 우리들이다. 이미 깊숙하게 진행된 기후변화의 폐해를 가볍게 여기거나 애써 외면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나 역시 이 부분에서 할 말이 별로 없다. 환경문제란 나와 관계없는 먼 나라 얘기처럼 넘겨 버렸던 과오를 인정한다. 올해의 ‘피스앤 그린보트’에 타길 잘했다. 기후변화의 위험성을 진심으로 실감하게 된 교육 프로그램을 경청했기 때문이다.



지구 평균 기온 상승보다 2~4배 더 더워진 서울환경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인간의 기대와 욕망에서 출발한다. 더 나은 삶과 행복, 편리와 소유를 쫓는 한 자연은 필연적으로 파괴될 수밖에 없다. 모든 원료는 자연에서 얻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 쾌적하고 안락한 생활의 즐거움을 누가 마다할까. 기대가 커지는 만큼 불쾌함과 불편은 점점 더 참지 못하게 된다. 찌는 더위에 인내를 보이며 의연하게 부채질하는 사람은 이제 없다. 누구라도 당장 냉장고 만큼 시원한 건물에 들어가 덜덜 떨어야 직성이 풀리지 않던가.



지금까지 일부 국가의 백성들만 누리던 편리와 쾌적함이었다. 이젠 문제가 달라졌다. 뒤따라오던 나라들과 사람들의 기대는 지금부터 시작이 아니던가. 누구도 편리와 쾌적함을 향한 욕망을 막을 방법이 없다. 에어컨은 더욱 늘어날 것이고 배출되는 탄소의 양은 따져보지 않아도 엄청나다. 탄소 배출량을 줄이지 않으면 온실효과로 인한 지구적 재앙은 불 보듯 뻔하다. 편리를 누리는 대가는 반드시 치루게 마련이다. 인류 공멸의 위기란 예측은 엄포가 아니다. 지구환경 문제의 해결책은 이제 인류생존의 필수조건이 되어버렸다.



항해 중 서울대 교수를 지낸 고철환 박사와 한방을 쓰게 됐다. 자칫 불편할 수 있는 두 남자의 동거는 의외로 순조로웠다. 학식과 인품이 겉돌지 않는 존경의 인물이란 점을 확인한 덕분이다. 환경문제 전문가인 박사의 진단은 심각했다. 지구적 환경재앙이 현실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높아진 기온에 따른 해수면 상승과 생태계 파괴의 폐해가 핵심이다. 인류 생존을 위협하는 주범인 탄소 배출이 가장 큰 문제다. 지금부터라도 배출량을 줄이지 않으면 우울한 결말은 불 보듯 뻔할 것이란 예측결과를 들려주었다.



인간의 욕망을 통제할 수 없으니 탄소배출은 계속될 것이란 현실인식은 옳았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무엇일까. 배출되는 탄소 양보다 더 많이 흡수하는 일이다. 개인의 차원을 넘어 국가와 전 지구적 관점으로 접근해야 할 부분임은 말할 것도 없다.



해법은 의외로 단순했다. 자연의 정화력을 복원시켜 탄소흡수량을 늘리는 방법이야말로 가장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서·남해안의 갯벌을 보존하고 관리하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갯벌 생태계의 건강한 회복이 환경문제의 개선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의 묘책은 설득력이 있다. 삼림의 파괴를 막고 습지식물과 해초류의 재배도 탄소흡수에 도움이 된다. 이러한 노력으로 2030년까지 온도 상승폭을 최대한 낮추는 것을 목표로 세계가 실천할 것을 주문했다.



박사의 충정은 진심이다. 환경지표를 보여주는 그래프의 변화추이는 심각한 수준이었다. 나 같은 얼치기 환경론자에게 몇 번이나 쉽게 풀어 의미를 설명해 주었다. 결론은 ‘어물거리며 내일을 기약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바로 지금 각자의 자리에서 탄소배출을 줄여야 하는 당위성만 넘쳤다. 나는 보통사람이 할 수 있는 구체적 실천법을 질문했다. 박사의 대답은 역시 간결했다. “덜 쓰고 덜 버리는 일”이라 했다. 욕망의 크기를 줄이고 편리를 약간만이라도 희생하는 자세다.



이를테면 에코 백을 쓰는 일만으로도 지구환경의 개선에 일조하는 행동이 된다. 환경에 가장 나쁜 물질의 대표 격이 비닐과 플라스틱이라는 지적은 일리 있다. 만들 땐 탄소배출을 하게 되고 분해되는 데 엄청난 시간이 걸린다는 건 상식이다. 태우면 환경호르몬이 나오게 된다. 문제는 분해되더라도 남은 물질이 작은 조각으로 물속에 떠다니는 위험이다. 비닐과 플라스틱 조각을 물고기가 먹고 먹이사슬로 이어진 인간이 결국 피해를 입는 악순환의 고리다. 개인의 선택으로 줄인 비닐과 플라스틱이 얼마나 환경에 기여할까 라는 회의적인 시선을 거두어야 한다. 사용을 자제하는 자세와 태도만으로 환경문제의 동참을 확산시키는 효과가 있다.



환경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1100명의 한일 시민들의 행동은 과연 달랐다. ‘피스앤 그린보트’를 탄 열 명 가운데 일곱 명 정도는 에코 백을 쓰고 있었다. 일상의 물건을 담는 백의 필요성이란 말할 것도 없다. 친환경 소재의 면을 활용하고 반복 사용해 얻게 되는 비닐 대체의 효과는 만만치 않을 것이다. 에코 백의 필요를 급 공감했다. 박사의 개인 지도로 커진 학습효과의 영향이다. 무심코 하게 되는 개인의 행동조차 확산되면 지구환경 개선에 일조하게 된다.



만들 땐 탄소배출, 태우면 환경호르몬 ? 비닐 줄여야오키나와 나하시엔 고래 전문 숍이 있다. 고래의 부산물로 만든 상품을 취급한다. 몇 번을 들러 익숙해진 가게는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일각고래의 코 뿔을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이기도 하다. 신성을 느끼게 하는 일각고래의 뿔은 2m가 넘었다. 먹이를 잡는 데 쓰였을 긴 뿔은 이제 장식품이 되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엄청난 가격을 매긴 뿔은 만지작거리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평소 눈길도 주지 않았을 에코 백에 눈길이 갔다. 일각고래 대신 긴 수염고래의 문양으로 장식한 에코 백이다. 슬그머니 점원을 불러 일각고래가 찍힌 백은 없느냐고 물었다. 답변은 섭섭했다. 실물을 본 이가 없어 도안하지 못했을 것이란 설명 때문이다. 아쉽지만 긴 수염고래가 찍힌 에코 백이라도 사야 위안이다. 아저씨가 에코 백을 들고다니기로 한 이유다.



서울에도 멋진 디자인의 에코 백을 든 이들이 여기저기서 눈에 띈다. 백을 드는 것은 시작이다. 의미의 확산을 위해 만나는 사람들에게 이유를 설명해주어야 한다. 각자의 자각과 작은 실천이 지구를 살리는 커다란 행동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



 



 



윤광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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