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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최고 기쁨 긴 가뭄 끝 단비

1942년부터 2년 동안 중국 허난(河南)을 휩쓸었던 가뭄의 와중에 나무껍질을 벗기는 농민들. 뉴욕 타임스사진 기자가 촬영한 사진이다.


중국인들이 흔히 말하는 네 가지 ‘인생의 기쁨’이 있다.?


오랜 가뭄 끝에 내리는 장맛비 만날 적久旱逢甘霖머나먼 타향에서 고향 친구와 조우할 때他鄕遇故知신혼 첫날 방에서 촛불이 타오르는 밤 洞房華燭夜과거 급제의 명단에 이름이 올랐을 때 金榜題名時


송대(宋代) 문인 홍매(洪邁)의 유명 작품 『용재수필(容齋隨筆)』에 처음 등장한 뒤 지금까지 중국인들이 즐겨 입담에 올리는 말이다. 공감이 가는 부분이다. 그러나 어쩐지 조금은 낯설기도 하다. 혈연과 각종 인연을 씨줄과 날줄로 삼아 이루는 사회의 구성방식이 우리와 비슷함에도 조금은 어딘가 미심쩍어 들여다보는 내용이기도 하다.


셋째 항목인 신혼 첫날의 기쁨이야 동서(東西)와 고금(古今)이 다를 리 없다. 그 다음의 과거 급제 역시 마찬가지다. 명예와 부를 함께 쥘 수 있는 기회를 차지한 희열, 그 역시 공감의 폭이 크다.


둘째 항목이 조금 미심쩍다. 머나먼 타향에서 고향의 아는 이를 만나는 경우가 인생의 4대 즐거움에 든다니 그렇다. 그러나 넓고 크기가 한반도에 비견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중국이니 이마저도 어느 정도는 수긍할 만하다. 아무래도 우리의 눈길은 첫째 즐거움으로 향한다.


오랜 가뭄 끝에 만나는 비. 농사를 삶의 근간으로 여겼던 과거 동양사회에서는 역시 반갑기 짝이 없는 대상이다. 그러나 인생 네 가지 기쁨 중 첫 손가락에 꼽는 일에는 선뜻 공감하기가 쉽지 않다. 어떤 가뭄이 이 거대한 땅에 내렸길래 중국인들은 가뭄 끝에 만나는 비를 인생 최고의 즐거움으로 꼽는 것일까.

중국의 참혹했던 가뭄·홍수·인구 이동을 감동적으로 그렸던 펄 벅의 『대지』 영문판 표지 사진.


단비가 신혼 첫날, 과거급제보다 더 큰 기쁨오늘 ‘중국의 재난’이라는 작은 제목으로 풀어갈 내용은 중국의 가뭄이다. 앞에서 이미 설명했듯 중국의 북부 최대 하천인 황하(黃河) 중하류 지역의 강수(降水) 변동률은 유럽 일반 지역의 3배에 이른다. 게다가 종잡을 수 없는 계절풍의 영향을 받는 지역이라 강우 변동 폭은 더 심해진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펄 벅 여사의 세계적인 문학작품 『대지(大地 The Good Earth)』에는 인상적인 장면이 많다. 거대한 땅, 시도 때도 없이 달려드는 혹심한 가뭄과 홍수, 그리고 먹고 기댈 데 없어 이동하는 사람들이다. 그 중에서도 주인공 왕룽(王龍) 일가의 고난과 핍박의 시작은 가뭄과 함께 벌어진다.


땅이 타들어가고 갈라진다. 곡식을 매단 줄기는 힘없이 고개를 떨어뜨린다. 여물지 못한 낟알은 그저 푸석거리는 메마른 잡초에 불과하다. 굶주림이 이어지고, 사람은 창백한 얼굴로 이곳저곳을 헤매다 쓰러진다. 겨우 살아남은 사람들은 굶어 죽은 이의 육신(肉身)에 급기야 헐벗은 눈길을 모으고 만다. 그 뒤 이어지는 것은 참혹한 식인(食人)의 광경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러나오는 감정은 자연스레 커다란 두려움이다. 각종 재해, 그 중에서도 가뭄이 자주 찾아들었던 중국 땅 위의 사람들은 그런 상황에 겁을 집어 먹을 수밖에 없었다. 사랑하는 가족이 굶주림에 허덕이다 죽어야 하고, 주변은 식인의 상황으로까지 번져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지경에 닿기 때문이다.


그런 두려움을 표현하는 단어가 한발(旱魃)이다.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이 하나 있다. 황제(黃帝)의 편에 서서 치우(蚩尤)와 싸웠던 여성 캐릭터다. 그녀는 강한 빛과 열기를 지녔다. 수공(水攻)을 펼쳤던 치우에 맞서 싸우다가 기력이 쇠진해 천상의 세계로 다시 돌아갈 수 없었다고 한다.


지상에 남은 그는 골칫거리로 변했다. 몸에 지녔던 강한 빛과 열기가 그대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닿는 곳마다 식물과 곡물은 모두 마르거나 타버렸다. 그 혹독함 때문에 결국 그가 얻은 이름은 발(魃)로 이어졌고, 가뭄(旱)의 의미를 더 얹어 지금의 한발이라는 단어로 자리 잡았다.


중국 재난사(災難史) 영역에서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덩퉈(鄧拓)의 『중국구황사(中國救荒史)』 통계에 따르면 기원전 1766년부터 기원후 1937년까지 중국에서 발생한 가뭄에 의한 대형 재난은 1074차례에 이른다. 평균 3년 4개월에 한 차례씩 혹심한 가뭄이 덮쳤다는 얘기다.


홍수 등 수재(水災)도 그에 견줄 수 있는 정도다. 같은 기간에 벌어진 중국의 대형 수재는 1058차례에 이른다고 한다. 평균 3년 5개월마다 한 차례씩 수재가 발생했다. 거의 같은 수치에 해당한다. 그래서 중국의 재난을 설명할 때는 가뭄과 홍수가 번갈아 등장한다. 특히 남부 지역은 홍수, 북부 지역은 가뭄이 많아 남로북한(南?北旱)이라는 성어식 표현으로 그를 적는다.


그러나 홍수 등은 물줄기인 강을 따라 번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홍수 등은 선형(線形)의 재난이다. 선을 따라 이어지는 모양새다. 그에 비해 가뭄은 면형(面形)이다. 커다란 면적에서 광범위하게 펼쳐진다는 말이다. 따라서 피해의 정도도 훨씬 더 혹심하다.


넓은 면적, 오랜 기간에 걸쳐 벌어지는 가뭄 피해는 많은 인구의 죽음을 부른다. 홍수 등으로 인한 수재, 메뚜기 떼가 덮치는 황재(蝗災), 태풍 등으로 인한 풍재(風災)에 비해 가뭄 속 굶주림으로 죽는 사람의 수는 훨씬 더 많다. 명(明)과 청(淸)에 이르는 500여 년 동안의 각종 재해에서 가뭄으로 인해 죽은 인구의 수는 같은 기간 각종 재난 사망자 전체의 71%에 이른다는 통계도 있다.


사정이 그러하니 가뭄은 중국인에게 가장 무서운 천연의 재해다. 각종 재해가 번갈아 찾아들어 식인의 처참한 상황도 평균 2년에 한 차례씩 벌어졌다는 수치가 등장한다. 식인은 절망(絶望)의 상황이다. 먹을 것을 찾고 또 찾다가 지쳐 넘어진 사람이 마지막으로 택하는 방법이다.


그에 앞서 등장하는 과정이 초근목피(草根木皮)다. 풀뿌리와 나무껍질을 파헤치거나 벗겨서 먹는다. 그러나 곡식이 가져다주는 곡기(穀氣)를 그로써 채울 수는 없는 법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흙까지 먹는다. 중국에서는 먹을 수 있는 흙을 관음분(觀音粉)이라고 했다.


그러나 흙으로 어찌 사람의 배를 채울 수 있을까. 결국 사람들이 선택하는 마지막 방도가 식인이다. “한 식구를 내다 팔면, 열 식구가 살 수 있다”는 말은 그래서 중국 민간에 자주 나돌았다. 제 혈육(血肉)의 몸을 팔아 연명(延命)을 시도하는 일이 지옥(地獄)의 풍경 아니라면 도대체 무얼까.


그런 가뭄을 일컫는 말은 많다. 그 중에서도 기황(奇荒), 대기(大饑) 등이 눈에 띈다. 형용할 수 없는 참혹함을 동반해 뭐라 일컬을 수 없을 정도의 커다란 굶주림을 표현하는 말들이다. 이런 가뭄은 특히 겨울에서 봄으로 이어지는 길목에 자주 등장했다고 한다. 중국 근세의 실제 가뭄 모습도 참혹하다. 1876~1894년에는 옛 중원 지역에 해당하는 화북(華北)에 커다란 가뭄이 들었다. 당시 굶주림에 허덕이다가, 또는 기아(飢餓)로 얻은 병 때문에 죽은 사람의 수는 2000만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1892년에서 2년 동안 가뭄이 잇따른 뒤 중국 중북부 지역에서는 100만 명이 굶어 죽었다. 현대에 들어서도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1942년부터 이듬해까지 이어진 가뭄으로 허난(河南)의 한 성에서만 죽은 사람이 300만 명에 달했다. 1943년 중국 남부 광둥(廣東)에도 가뭄이 찾아들어 50만~300만 명의 사람이 죽었다고 한다.


아마 이런 연유로 그랬을 것이다. 중국인이 세상살이 네 가지 즐거움 중에서 첫 손가락으로 꼽는 “오랜 가뭄 끝에 내리는 비” 말이다. 머나먼 땅에서 제 고향의 친지를 만나는 일, 아리따운 신부와 첫날을 보내는 초야(初夜), 과거급제 명단에 제 이름을 올리는 일에 더 앞서는 기쁨으로 가뭄 끝의 단비를 꼽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겠다.


 

황토 지대에 자리를 잡고 있는 중국 란저우(蘭州) 인근의 마을. [중앙포토]


송강의 별호도 때맞춰 내리는 비 ‘급시우’‘단비’는 사실 중국인만이 그리워하지는 않았다. 하늘만 바라보며 농사를 지었던 우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비를 향한 중국인의 그리움은 참 간절하다. 급시우(及時雨)라는 말도 있다. 우리말로 풀자면 ‘때 맞춰 내리는 비’다. 역시 단비가 아닐 수 없다. 중국의 4대 기서(奇書) 『수호전(水滸傳)』에 등장하는 양산박 108명 두령의 으뜸 두목 송강(宋江)의 별호이기도 하다. 그렇게 때에 맞춰 내려주는 비와 같은 사람을 가리킨다. 단비에 견준 인물의 상(像)인 셈이다. 그렇듯 중국인의 단비를 향한 갈증은 대단하다.


메마른 땅, 중국 북부에 살다가 전란을 피해 서남의 땅으로 내려간 시인 두보(杜甫)가 비를 예찬한 대목이 있다. ‘봄날 밤의 기쁜 비(春夜喜雨)’라는 작품이다. 그 간절함, 표현의 아름다움이 주는 울림이 자못 크다.


좋은 비는 때를 아는가 보다好雨知時節봄에 이르러 만물을 키우네當春乃發生바람 따라 조용히 밤에 들어隨風潛入夜촉촉이 소리 없이 세상 적시네潤物細無聲


봄날 밤의 기쁜 비 희우(喜雨), 때 맞춰 내리는 비 급시우(及時雨), 삶 속 네 가지 즐거움 중의 첫째인 가뭄 끝의 단비…. 펄 벅이 그려낸 황막한 대지(大地)의 사람들에게는 늘 그런 비가 그리웠다. 풀과 흙으로 허기를 채우다 종내는 식인의 처참한 지경에까지 몰렸던 중국인의 마음에 그 비가 내리면 구원의 서광(曙光), 기쁨의 눈물이 가득 차올랐을 테다.


 


유광종 뉴스웍스 콘텐츠연구소장ykj33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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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