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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서 세우려는 마음, 바둑·주역 이해에 큰 영향

1976년 4월 27일 일본 도쿄 데이코쿠호텔에서 조치훈(왼쪽) 7단과 서봉수(오른쪽) 6단이 대국하고 있다. 이 대국은 한국일보사 장기영 사장이 후원해 이뤄진 것이다. [사진 한국기원]


바둑은 예(藝)인가, 기(技)인가. 집을 다투는 게임인가, 돌을 다투는 게임인가. 병법이 통하는 세계인가, 모든 정보가 드러나는 완전 정보의 세계인가.


한·중·일 삼국의 서로 다른 모형도 살펴봤는데, 과연 반상은 문화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도샤쿠의 패러다임은 일본의 불교문화, 우칭위안의 패러다임은 도교의 영향을 받았다. 사회적 시스템의 역할도 컸다. 일본기원과 한국기원의 탄생, 일본 바쿠후 시대 4대 가문이 전문가를 양성하고 덤과 제한시간을 조정한 것이 그 예다. 무대도 중요했다. 한국 바둑의 성장은 관철동이라는 무대에서 문학과 언론의 손을 잡았기에 가능했다.


바둑은 인간의 손길을 벗어나 존재할 수는 없었다. 그러니 이런저런 이야기가 끝없이 덧붙여진다. 미처 다루지 않은 주제도 많다. 신문 관전기의 탄생, TV와 인터넷의 충격, 기보와 바둑책의 변천 등등.


바둑에 끝없는 변천이 있었다. 그 때문인가. 바둑은 실망감을 안겨주기도 했다. 끊임없는 변화는 변치 않는 것을 찾게 하지만, 막상 찾아보면 그 역시 오해임을 알기 때문이다.


 

한국 바둑 70년을 기념해 만난 서봉수와 조치훈.


서봉수 “바둑은 나무 위에 돌 놓는 행위”1975년 20대 초반의 명인 서봉수가 말했다. “바둑 두는 것은 나무 위에 돌을 얹는 행위다.” 바둑의 본질을 직관한 것일까. 자만으로 뱉은 말일까. 우칭위안은 ‘조화’, 사카다는 ‘슬픈 드라마’라고 답한 적이 있었다. 자만은 있었지만 그는 곧 겸손해졌다. “제한시간을 다 쓰지 않고 끝내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초읽기에 몰리면서까지 최선을 다하겠다.”


최선은 소명을 자각해야만 할 수 있는 말. 제한시간을 다 쓰기로 말한다면 조치훈이다. “목숨을 걸고 둔다”는 다짐은 바둑에는 인생을 던질 만한 ‘그 무엇’이 있다는 인상을 대중들에게 심어줬다. 하지만 뒷날 나이 쉰을 넘어섰을 때다. 그는 말했다. “그래봤자 바둑, 그래도 바둑.” 술도 마셨다. 많이 마셔 울 때도 있었다. 바둑이란 인생을 던질 만한 ‘그 무엇’이 아니었던가.


모호한 용어로 질서를 잡은 세계바둑은 머리를 쓰는 놀이. 그래서인가. 교수들 중에는 애기가가 많다. 재미있는 것은 바둑의 수준을 높이 평가하는 분은 드물다는 점이다. “바둑 이론은 왜 그리 모호해” 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나라면 이론을 잘 구성해서 누구나 1급까지 쉽게 도달할 수 있게 할 텐데 말이야.” 바둑의 이론을 시원찮게 평가한다.


초반, 반상은 텅 비었다. 돌 몇 개 놓인다고 해서 뭔가가 뚜렷이 잡히는 것도 아니다. 감(感)마저 떠오르지 않는다. 그렇게 모호하니 이론이 구체적일 수가 없다. 구체적이지 못하니 적용하기가 애매하고 적용할 수 없으니 있으나마나다. 이론은 낮은 수준으로 비춰진다.


하지만 간과한 게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전문 분야는 다 자기만의 세계를 갖고 있다. 수학은 수학의 세계, 정치학은 정치의 세계. 쓰는 용어 또한 전문용어(jargon)다. 다른 분야의 사람들은 알 수 없는 언어로 자신들의 세계를 만든다.


그러니 바둑 이론에 대한 비평은 오해에서 온 것이다. 사람들의 희망과 달리, 바둑의 이론은 모호한 수준이어야만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기보 하변 흑1은 철주(鐵柱) 행마, 상변 백2는 두점 머리 급소.


초반은 썰렁한 들판과 같다. 그런 곳엔 어떤 언어가 발달할까. 먼저 들판을 감지하는 용어가 필요하다. 원시인이 위는 하늘, 아래는 땅으로 인식하듯이 우리도 그렇다. 변은 땅으로 중앙은 하늘로 인식해 제일 가운데 점(点)을 ‘천원(天元)’이라 부른다. 원(元)은 시초. 변이 땅이기에 기보의 하변 흑1을 두고 “철주(鐵柱)를 내린다”고 표현한다.


돌의 인식 방식도 독특하다. 몸을 다루는 것처럼 돌을 다룬다. 기보의 상변 백2를 두고 “두점머리를 때린다”고 표현한다. 상대는 “두점머리를 맞는다.”


요약하면 반상의 속성에 맞추어서 반상을 인식하고 표현한다. 그러니 초반엔 모호한 속성을 지닌 용어와 이론을 사용한다. “마주보는 중앙이 큰 곳.” “상대 두터운 곳에 가까이 말라.”


실력이 높아질수록 몸과 반상은 감성적으로 밀착된다. 프로 수준이 되면 웬만한 사활 문제는 감각적으로 답이 온다. 계산이 중요하지만 사실은 감성적인 측면이 압도적이다.


그렇다. 반상은 우리 몸의 활동 공간이고 돌은 우리 몸의 일부다. 바둑을 둘 때 생동감을 느끼고 승패에 감정이 격해지는 이유다. 삶의 비유로 반상을 받아들이는 까닭이다. 2013년 서울대병원 권준수 교수팀이 프로의 경우 일반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우뇌가 더 발달했음을 밝힌 것은 간접적인 증거다. 우뇌는 언어보다는 공간, 논리보다는 감성을 관장하는 곳. 바둑의 실제 조건과 부합한다.


 


심오한 비밀 숨어 있을거라는 환상 여전1960년대 서구의 지식인들은 자만에 차 있었다. 레비스트로스(C. Levi-Strauss)가 『야생의 사고』에서 문명의 자만과 통념을 비판했다. 원시인은 무지하지 않다. 그들도 자연을 논리를 이용해 질서 지우고 사회적 질서 또한 논리적으로 재편한다. 질서를 찾아 헤매는 것은 문명사회나 원시사회나 다를 바가 없고 현인이나 철학자도 우리와 다르지 않다. 문제는 그 질서를 확인하고 또 상대의 질서를 인정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에 있다.


이론과 질서는 통용된다. 이론은 질서를 찾아내는 방정식. 세상은 질서로 덮여 있어야 한다. 무질서는 불안하니 교수들이 바둑 이론에 불만을 드러낸 것은 곧 불안을 토로한 것이다. 세상 그 무슨 분야든 질서는 인식되어야만 한다. 질서가 없다면 적어도 자신이 납득할 만한 뭔가는 찾아야만 한다. 맞든 틀리든 질서라고 느끼기만 하면 무엇이든 괜찮다.


질서를 세우려는 마음은 역사적으로 바둑과 주역을 이해하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바둑과 주역을 성인이 만들었고, 그러기에 뭔가 심오한 비밀이 숨어 있으리라는 희망이 대표적이다. 100년 전만 해도 그런 환상은 거의 절대적이었다. 아니, 주역은 지금도 그 속에 있다.


처음 대하는 분을 위해 간단한 설명을 하자. 주역은 역경(易經)과 역전(易傳), 두 부분으로 나뉜다. 역경은 주나라 BC 10세기경에, 역전은 역경에 대한 주석 같은 것으로 전국 시대에 완성됐다. 핵심은 역경이다. 역경은 64개의 괘사(卦辭)와 386개의 효사(爻辭)로 이뤄졌다. 합해서 450개의 점사(占辭)다. 점을 침으로써 얻어진다.
주역의 철학적 기초를 놓은 역전 계사전(繫辭傳)엔 점치는 법이 상세히 나와 있다. 그 본질은 주사위 던지기와 같다. 점을 쳐서 얻은 숫자의 홀짝에 따라 음양(陰陽) 부호(그림1)를 차례대로 여섯 번 그리면 그림이 얻어진다.?그것은 (그림2)와 같은데 괘상(卦象) 또는 괘획(卦劃)이라 한다. ??


구조적으로 보면, 1)역경은 점을 쳐서 얻은 괘상과 2)그것에 붙은 문장 즉 점사(占辭)가 전부다. 그러니 문제는 두 가지다. 1) 점이란 무엇인가 2) 점사는 어떤 속성을 가진 글인가. 두 문제만 풀면 주역은 전부 해결된다.


점을 친 다음 얻은 점사를 해석하는 것, 그 해석에서 뜻을 중시하면 의리학(義理學)이요, 뜻이 나온 까닭을 궁구하면 상수학(象數學)이다. 매우 간단한데도 주역을 처음 대하면 누구나 당혹해한다. “이게 무슨 말이야!”


다음 글은 주역의 일부로 64괘 중의 하나인 정괘(鼎卦)다. 첫 줄은 괘사, 나머지 여섯 줄은 효사라 부른다.


 


鼎 元吉 亨.


크게 길하다. 형통한다.


初六 鼎顚趾 利出否 得妾以其子 无咎.


솥을 뒤집으니, 나쁜 것들이 쏟아져 이롭다. 첩을 얻어 아들을 낳으니, 허물이 없지는 않다.


九二 鼎有實 我仇有疾 不我能卽 吉.


솥이 가득 차 있다. 나의 적이 병이 있어 나를 공격할 수 없으니, 길하다.


九三 鼎耳革 其行塞 雉膏不食 方雨虧悔 終吉.


솥의 귀가 떨어져 들기가 어렵다. 꿩고기도 못 먹고 비도 내려 안타깝다. 하지만 끝이 좋으니 길하다.


九四 鼎折足 覆公? 其形渥 凶.


솥 다리가 부러져, 끓이던 왕공의 죽이 쏟아졌다. 형색이 말이 아니다. 흉하다.


六五 鼎黃耳金鉉 利貞.


솥의 귀가 황색이고 금으로 된 현(鉉)이다. 바르니 이롭다.


上九 鼎玉鉉 大吉 无不利.


솥의 현이 옥이다. 크게 길하고, 이롭지 않음이 없다.


 


이런 글을 처음 읽으면 누구나 당황한다. “200번 넘게 읽었는데 여전히 모르겠어.” 주역 가르치는 교수에게서 2001년 들었던 얘기다. 그분은 솔직했다.


왜 당황할까. 이유가 있다. 읽는 사람은 질서를 찾고 있는데, 저 글 속에서는 질서가 전혀 안 보이기 때문이다. 주역은 유교의 경전 아닌가. 경전인데 질서도 없고 합리적인 이해도 어렵다니? 답은 이렇다. 세간에 알려진 합리성으로 주역을 이해하려 해서는 안 된다. 질서는 있다. 다만 우리의 선입견 때문에 보이지 않는다.


선입견은 점의 본질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를 하지 않은 데서 오는 것이 보통이다. 점서이지만 경전으로 받들어지기에 뭔가 철학적 질서가 앞서리라고 미리 믿는 것이다.


해결책은 둘로 나뉜다. 1) 저 문장들은 서로가 연결되어 있지 않다. 그러니 전체를 통일적으로 이해하려고 하면 안 된다. 2) 저 문장에 쓰인 언어는 은유가 본질이다. 그러니 시(詩)를 읽듯이 읽어야 한다.


주역은 한마디로 한자로 쓰인 점서다. 그러니 점의 본질을 알면 주역의 반(半)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언어의 본질을 꿰뚫을 수 있다면 나머지 반도 알 수 있다. 그뿐이다.


 


 


문용직 객원기자·전 프로기사moonr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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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