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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이 없어도 괜찮아

루마니아 태생 피아니스트 디누 리파티. 33살에 요절했다.


피아니스트는 연주를 멈췄다. 얼굴은 창백하고 몸은 금세라도 허물어질 것 같다. 청중은 안타까운 침묵에 빠져들었다. 큰 병을 앓고 있지만 무대에 오른 피아니스트는 프로그램을 잘 소화했다. 바흐의 파르티타 1번,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8번, 슈베르트 즉흥곡 D.899의 3,2번, 그리고 마지막이자 연주회의 백미인 쇼팽의 왈츠들까지. 그는 한 차례 미세하게 흔들렸을 뿐 자신이 평생 즐겨 치던 곡들을 잘 연주해 냈다. 그런데 마지막 곡 왈츠 2번 ‘화려한 왈츠’를 남겨두고 손이 건반에서 미끄러져 내렸다.


청중은 그제야 피아니스트가 생명의 마지막 기운을 다해 연주했음을 깨달았다. 새삼스런 충격에 콘서트홀은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긴 손가락들이 다시 건반을 천천히 짚어 나간다. 그것은 쇼팽이 아니라 바흐다. 칸타타 147번의 코랄 ‘예수는 나의 기쁨(Jesu bleibet meine Freude)’. 피아니스트가 콘서트 마지막에 즐겨 연주하던 곡이다. 왈츠와 달리 한없이 평온하다. 이 곡을 끝으로 현대 피아노 연주사의 가장 극적인 장면이 완성되었다. 1950년 9월 16일, 스위스 브장송에서 있었던 일이다. 피아니스트는 루마니아 태생의 디누 리파티. 그는 연주회 두 달 반 뒤에 죽었다. 서른 세 살, 백혈병이었다.


최근 클래식에 입문한 친구가 말했다. “디누 리파티는 달라.”


누구와 어떻게 다르냐고 물었다. “글렌 굴드의 연주는 기계적 완벽함이 느껴져서 숨쉬기 힘들어. 리파티도 완벽하지만 그에게선 여백이 느껴져. 연주를 들으면 희망이나 기대와 같은 말이 떠오르지. 아침에 들으니까 더욱 좋더라.”


친구는 평론가와는 다른 언어로 이야기했지만 리파티를 정확히 이해했다. 누구보다 맑고 순수한 소리. 하지만 그런 소리는 가혹한 자기수련으로 완벽한 기교를 터득하고, 악보에 숨은 음악의 본질을 꿰뚫어야 하며, 무한한 에너지까지 있어야 낼 수 있다. 리파티는 그런 피아니스트였다.


앰프에 불을 붙여놓고 음반을 고르다가 손이 이리저리 헤매는 일이 종종 있다. 2000장을 헤아리는 음반이 천장까지 닿아 있지만 이 순간 무엇을 듣고 싶은지 확신이 서지 않는 경우다. 그러다 손길이 닿는 곳은 결국 ‘바흐’다. 그 중에서도 디누 리파티가 연주한 파르티타 1번을 자주 뽑게 된다. 위게트 드레퓌스 여사가 연주한 프랑스모음곡과 함께 많이도 들었다. 친구와 다른 점은 프랑스모음곡은 아침에, 파르티타는 저녁에 주로 듣는다는 것이다. 리파티의 피아노는 맑지만 그래서 한없이 쓸쓸하기도 하다.


그는 음악가로서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다. 어머니는 루마니아에서 가장 뛰어난 피아니스트였고 아버지는 사라사테와 동문수학한 바이올리니스트였다. 대부는 루마니아의 국민음악가 에네스쿠였다. 열여섯 살에 비엔나 피아노 콩쿠르에 참가해 2등을 했는데 이것이 오히려 전기가 되었다. 심사위원으로 참가한 알프레드 코르토가 심사 결과에 항의하며 사임했기 때문이다. 코르토는 19세기 유럽 피아노계의 권력이었다. 그는 리파티를 파리로 초청해 파리고등음악원 입학을 주선했다. 루마니아 청년은 유럽의 수도에서 원숙한 음악가로 성장해 아직 20대였던 1944년에 스위스 제네바 음악원의 교수로 취임한다. 그러나 순탄한 삶은 그때까지였다.


전쟁이 끝나자 리파티는 미국 순회공연을 준비했는데 그 무렵 백혈병 증세가 나타났다. 투어는 취소되었다. 그의 재능을 아낀 당대의 음악가들, 스트라빈스키·샤를 뮌시·메뉴힌 등이 거액을 모아 치료에 전력을 기울였으나 병은 회복세를 보이다 다시 심해지곤 했다.


생명의 불꽃이 꺼져가던 리파티는 EMI 프로듀서 발터 레게를 만나 몇 차례 녹음을 했다. 죽음과 마주한 인간이 남긴 이 시기의 녹음들은 영성(靈性)이 깃들어 있다. 바흐의 파르티타 1번도 그렇다. 알레망드, 쿠랑트에 이어 사라방드를 연주할 때 삶의 무게를 다 내려놓은 듯한 선율을 들으면 서른 살 청년의 절대적 고독이 생생해 긴 한숨을 쉬게 된다.


건강이 호전되었을 때 리파티는 협주곡의 명작들인 차이콥스키나 베토벤을 녹음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완벽주의자였던 그는 차이콥스키는 3년, 베토벤의 ‘황제’는 적어도 4년의 공부가 필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남은 시간은 길지 않았다. 결국 협주곡은 모차르트 21번, 쇼팽 1번, 슈만, 그리그 정도가 남았다. 그 많은 베토벤 소나타도 한 곡도 녹음하지 못했다.


1950년 가을, 브장송 무대에 오를 때 프로그램은 길지 않은 그의 삶에서도 여러 번 연주하던 곡들로 채워졌다. 바흐·모차르트·슈베르트·쇼팽. 그걸로 충분했다. 나는 그의 베토벤이 궁금하지 않으며 굴드의 전집음반을 가지고 있는 친구도 리파티의 쇼팽만 반복해서 듣는다. ●


 


 


글 최정동 기자 choi.jeongd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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