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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이국의 호텔서 서로를 ‘발견’한 남녀

일러스트 김옥


명동의 한 호텔에서 지낸 적이 있다. 예술가를 지원하는 레지던스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호텔에 머물며 소설을 쓴 것이다. 온 나라에 메르스가 창궐하던 2015년 여름, 나는 그렇게 트렁크에 잔뜩 책을 담고 호텔에 들어왔다. 당초 중국인·일본인 관광객들로 풀 부킹이었던 방들은 메르스 탓에 대부분 비어 있었다. 며칠, 호텔에서 두꺼운 책만 골라 읽었다. 한낮의 명동 거리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휑해서, 명동 전체에 검은색 블록을 씌워 딜리트(delete) 키로 관광객들을 지워 버린 듯했다. 가끔 눈에 띄는 사람들은 얼굴의 반 이상을 가리는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서울에서 가장 복잡했던 명동을 낯선 여행자처럼 바라보는 기분이었다.


호텔 생활자로 지낸다는 건 일상이 제거된 풍경 속에 놓인 것과 같다. 쓰레기통 하나, 쓰다 만 타월 하나 치울 일없이 지내는 것이다. 살갑게 인사하는 호텔리어들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빳빳하게 정리된 침대 시트에 앉아 책을 읽을 때마다, 현실에서 멀리 떨어져 와 있는 기분이었다. 내 방에선 남산 타워가 보였고, 밤이 되면 그곳에선 믿기 힘든 불빛들이 네온처럼 쏟아져 내렸다. 전형적인 서울의 한복판에 와 있다는 실감 때문에 밤이면 자주 멜랑콜리해지곤 했다.


소피아 코폴라의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를 봤다. 이 영화는 그녀의 영화 ‘섬웨어(Somewhere)’와 함께 내가 몇 번이고 반복해서 보는 영화이기도 하다. 두 영화의 공통점은 주인공이 모두 호텔 생활자라는 것이다. 이들은 호텔에 머물렀던 어떤 사람과 사랑에 빠지거나 격렬한 정사를 치른다. 텅 빈 호텔에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지만, 나 역시 호텔에 머무는 동안 어떤 남자를 ‘바라보게 되는 일’이 생겼다. 좁은 엘리베이터에서, 조식을 먹는 레스토랑에서, 호텔 로비의 소파에서 누군가와 통화하거나 만나는 그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그를 내 멋대로 ‘미스터 콧수염’이라 불렀다.


잠이 오지 않던 밤 호텔 복도에서 마주쳐‘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의 샬럿은 사진가인 남편을 따라 도쿄의 파크 하얏트에 체류 중이다. 밥은 영화배우로 산토리 위스키 광고를 찍기 위해 LA에서 막 도쿄에 도착했다. 여자는 촬영으로 바쁜 남편 때문에 자주 홀로 호텔에 남겨지고, 남자는 익숙지 않은 일본어 때문에 모든 게 영 불편하다. 갓 스물을 넘긴 여자와 결혼 25년차로 쉰 살을 훌쩍 넘긴 남자가 처음 부딪히는 곳은 사람들로 가득 찬 엘리베이터 안. 그렇게 이들은 호텔에서 스치듯 서로를 통과하고, 마침내 서로를 ‘발견’하게 된다. 잠이 오지 않던 밤, 욕실 가운을 입은 채 복도에서 마주친 것이다.


호텔에서 지내면 술 한 잔 마시러 바에 내려가는 일이 생각보다 잦아진다. 여행자의 시선으로 보면, 이들이 겪는 현상은 동일하다. 시차적응 실패! 낯선 언어의 폭우 속에서 긴장하고, 잠을 자야 할 시간에 일어나 밥을 먹는 무리를 지속하다 보면, 어느새 머리는 졸린 듯 멍해지고, 경계는 희미해지고, 생각은 느슨해진다. 어쩌면 그것이 사랑에 빠지기 쉬운 상태인지도 모르겠다. 말하자면, 언어가 통하지 않는 공간 안에선 단지 말이 통한다는 것 하나 때문에 사랑이 이루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이때 ‘언어’는 모국어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해석이 아닌 소통으로서의 기능, 비로소 편안하게 진짜 대화를 하게 된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말은 자신을 표현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기 때문에 낯선 외국어로 더듬더듬 유치원 수준으로 듣고 말한다는 건 어떤 의미에선 정신의 추락을 의미한다. 좋든, 나쁘든, 어린아이처럼 되는 것이다. 예견된 퇴행인 것이다.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낯선 여행지에서의 이런 퇴행을 즐겁게 받아들이는 쪽과 외롭게 받아들이는 쪽. 밥과 샬럿 은 후자다. 이들의 외로움은 낯선 이국의 언어나 서툰 젓가락질, 택시의 운전석이 반대로 바뀌었기 때문에 고향에서보다 훨씬 더 도드라진다. 이때 39층에 로비가 있는 이 은밀한 호텔은 단지 공간이 아닌, 한 인간의 내면을 투명하게 보여주는 풍경이 된다. 그들이 자신의 비장과 췌장과 혈관에 각각 외로움과 고독, 쓸쓸함을 어떻게 분배해 숨겨놓았는지 말이다.


서로의 결핍에 닿는 순간 일어난 화학반응언어와 시차와 공간 때문에 더없이 외로워진 남자와 여자는 일상에선 절대로 하지 않을 이야기를 호텔의 바에서 나눈다. 퇴행한 이들의 대화는 사랑했던 사람들의 사랑이 어째서 식어 가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생활이 어떻게 이어지는 지에 대한 것으로까지 이어진다. 그것은 모두 ‘겨우 존재하는 것들의 쓸쓸함’에 관한 이야기다. 특별한 공간은 사람을 짧은 순간 극적으로 뒤바꾼다. 이들은 누군가에겐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말을 하고, 해줄 수 없던 대답을 하고, 서로의 결핍을 알아본다.


“나이가 들면 사는 게 좀 더 편해질까요?”


“그렇지 않아요. 다만 주변 상황에 자신이 좀 덜 흔들리게 되는 거죠.”


“전 그냥 제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알게 될 거예요. 당신이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게 되면 될수록, 당신을 힘들게 하고 혼란시키는 것들이 줄어들게 될 테니까.”


베드신이 한 장면도 등장하지 않는데도 이 영화가 감각적이라 느껴지는 건, 이들의 대화 때문이다. 밤이 깊어가듯 말이 깊어지고, 끝내 서로의 결핍에 가 닿는 순간, 그것은 삽입과 절정이라는 기묘한 화학 반응을 일으킨다. 대화는 말로 나누는 섹스이기 때문이다. 잠 못 드는 밤, 시차적응에 실패한 한 남자와 여자는, 우연히 사랑에 젖어든다.


삶 밖의 어딘가로 우리를 데려가는 호텔화가 에드워드 호퍼는 줄곧 여행자의 불안한 시선이 머무는 장소들을 그려왔다. ‘홀리데이 인’이나 ‘베스트 웨스턴’ 같은 국도변 호텔들이나 셀프 주유소, 휴게실, 밤의 카페테리아들이 그렇다. 그곳에는 정착하지 못한 유목민 같은 사람들의 고독이 잔존한다. 집에서 떠나온 사람들, 가정으로부터 멀어진 사람들, 뿌리 없이 떠도는 유랑민들…. 호퍼적인 인간들이 집약돼 있는 공간은 아마 공항과 호텔일 것이다. 공항을 떠나는 순간 호텔에 도착한다는 이음새는 내겐 언제나 무수한 상징으로 뒤덮인 연애시처럼 읽혔다.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를 쓸 때, 소피아 코폴라는 LA의 호텔 ‘샤토샤몽’에 머물렀다. 그녀는 오랫동안 호텔을 전전하는 방탕한 영화계 스타의 삶을 쓰고 싶어 했고, 그 결과 ‘섬웨어’를 만들었다. 브루스 웨버가 찍은 침대에 누운 맷 딜런의 사진을 보고 난 후였다.


나 역시 호텔이 배경인 소설을 몇 편 썼다. 왜냐하면 호텔에선 모든 게 가능할 것 같기 때문이다. 24시간 룸서비스로 새벽 2시 15분에 딸기 아이스크림이나 두툼한 치킨 샌드위치를 시켜 먹고 탈이 난다고 해도, 새벽 3시 즈음에 건네받은 소화제와 두통약으로 마음의 평온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호텔은 자주 삶 밖의 어딘가로 우리를 데려간다. 그렇게 데려간 낯선 곳에서 누군가를 기어이 만나게 하는 것이다.


메르스가 지나간 명동의 거리는 여전히 한산했다. 밤의 산책길, 네온만 반짝거리는 텅 빈 명동 거리에서 한 남자를 발견했다. 그였다. 미스터 콧수염. 그의 곁에는 아름다운 여자가 서 있었다. 그가 웃으며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하이~” 내가 대답했다. “니하오~.” ●


 


 


백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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