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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사상에 갇힌 건륭제 글로벌 변화 감지 못해

1 제임스 길레이 ‘베이징 궁전에서의 외교사절단 접견’ 1793년경.



중국 역사에서 17~18세기 청 왕조의 강희제·옹정제·건륭제가 통치한 134년 기간을 강건성세(康乾盛世)라고 부른다. 강희제부터 건륭제에 이르는 기간이 제국의 영토가 확장되고, 경제와 문화가 번영한 황금기였다는 긍정적 평가를 담은 용어다. 만주족 전성시대라는 의미에서 ‘팍스 만추리아(Pax Manchuria)’라고 부르기도 한다. 확실히 이 시기는 청의 지배력이 커지고 문화적 역량이 발휘된 때였다.



[비주얼 경제사-43-] 황금기 구가한 청 제국 몰락의 시작

그러나 세계사적으로 보면, 유럽이 중상주의 정책을 통해 지구 전역으로 무역망을 확대하고 제도 개혁과 기술 진보를 통해 산업화로 나아갈 토대를 닦고 있던 때였다. 중국산 차와 도자기가 유럽에서 선풍을 일으켰지만, 이 상품들은 유럽의 동인도회사들에 의해 교역되고 있었다. 다시 말해 중국은 여전히 강성한 제국이었지만 점차 유럽에게로 헤게모니가 넘어가고 있었다.



 



매카트니 경, 마차 40대분 선물 들고 방문영국이 세계 최초로 산업혁명이라는 역사적 과정을 진행하던 시점인 1792년, 국왕 조지 3세는 대중국 무역을 확대할 목적으로 외교 사절단을 건륭제에게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유일한 무역항이었던 광저우 이외에 톈진과 닝보 등에서도 교역을 허락하고, 베이징에 영국 외교관이 상주하게 하고, 영국 상인이 거주할 지역을 마련해 달라는 것이 요구의 구체적 내용이었다. 아시아 외교 경험이 풍부한 매카트니 경(Lord Macartney)을 대표로 한 100명의 사절단은 이미 한참 지난 황제의 80번째 생일을 축하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출발해 이듬해에 중국에 도착했다. 이들은 긴 여정 끝에 황제를 알현하는 데 성공하지만, 결국 기대했던 성과를 거두는 데엔 실패한다.



그림 1은 이 역사적 장면을 재현하고 있다. 영국의 유명 만평작가 제임스 길레이가 그린 캐리커처다. 사절단이 가져온 다양한 선물들이 시선을 끈다. 그 중에는 조지 3세의 마차를 재현한 황금색 미니어처도 있고, 영국이 자랑하는 군함의 모형도 있으며, 유럽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던 열기구의 모형도 보인다. 친서를 내미는 매카트니의 당당하면서도 신중한 표정과 고개를 옆으로 살짝 돌린 건륭제의 심드렁한 표정이 대조를 이룬다. 작가는 이를 통해 영국이 세계 중심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국제적 상황을 중국이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고자 했으리라.



그림 1은 현실과 어떤 차이가 있었을까? 첫째, 영국 사절단이 가져온 선물은 그림에 나타난 것보다 훨씬 대규모였다. 기록에 따르면 선물 운반에 마차 40대와 3000명의 인력이 필요했다고 한다. 둘째, 그림 1의 작가는 접견이 베이징의 자금성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알았다. 하지만 실제 장소는 베이징이 아니라 만리장성 너머 열하(熱河)에 위치한 여름철 집무시설인 피서산장이었다. 연암 박지원이 쓴 ‘열하일기’의 배경인 바로 그 열하다. 연암은 1780년 건륭제의 칠순잔치에 참석하기 위해 그곳을 방문했다. 겨우 12년 후에 매카트니가 그곳을 찾았으니 그와 연암이 본 열하의 모습은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2 ‘매카트니 사절의 중국 방문’ 1793년.



의례적인 조공국의 방문으로만 취급중국 측에서 매카트니 사절단을 묘사한 작품도 있다. 그림 2는 비단으로 만든 태피스트리인데, 영국 사절단이 선물들을 운반하는 모습이 수놓아있다. 그러나 이 그림도 실제와는 거리가 있다. 무엇보다 그림 속 영국인들이 19세기가 아닌 16세기 복장을 하고 있다. 또한 운반 중인 선물들은 영국에서 가져온 게 아니라 당시 베이징의 관상대에 설치되어 있던 관측 장비다. 일찍이 예수회 선교사들이 중국으로 들여와 황제의 허락을 받아 설치한 기구들이다. 오른쪽의 커다란 구형 물체가 천체의(天體儀)고 중앙에 있는 궤도가 조금 작은 물체는 황도의(黃道儀)다. 이런 비역사성으로 미루어볼 때 이 그림은 작가가 사절단을 직접 보고 그리지 않은 게 분명하다. 그저 영국 사절단이 많은 선물을 황제에게 헌상했다고 강조하는 작품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중국을 방문한 외교 사절은 매우 특별한 난제에 직면해야 했다. 삼궤구고두(三?九叩頭), 즉 황제 앞에서 세 번 무릎을 꿇고 아홉 번 머리를 땅에 닿게 조아리는 의례를 행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이 의례를 따르라는 중국 측 주장을 매카트니는 완강하게 거부했다. 중국은 조공국의 방문이라고 여겼지만 영국은 양국의 일대일 접촉이라고 봤기에 발생한 갈등이었다. 다행히 건륭제가 의례를 면제해 주는 바람에 난감한 교착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매커트니는 한쪽 무릎을 꿇고 깊게 허리를 숙이는 인사법으로 고두 의례를 대신했다.



청의 입장에서 볼 때 영국 사절단은 조공을 바치러 온 대표단의 하나에 불과했다. 청은 이미 포르투갈·네덜란드·로마 교황청에서 온 사절을 상대해 본 경험이 있었고, 그 중 누구건 다른 이들과 차별화해서 대해 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뿌리 깊은 화이사상(華夷思想)이 건륭제 시대에도 여전히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세상의 중심에 중국이 있고 서구 국가들은 문명 수준이 낮은 오랑캐일 뿐이었다.



서구 국가들을 화이사상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중국의 태도는 무역정책에도 반영되고 있었다. 청 왕조는 초기인 1680년대에 반청운동 세력을 진압한 이후 해금(海禁) 정책을 풀고 여러 항구에 해관을 설치해 무역을 인정했다. 대표적 항구였던 광저우의 상인들은 1720년 서양 상인들과의 교역에서 지나친 경쟁을 피할 의도로 공행(公行)이라는 상인조합을 결성했다. 한편 1757년 건륭제는 서양과의 교역 창구를 광저우 하나로 제한하는 조치를 취했다. 그 결과 이른바 ‘광둥 체제’라고 불리는 통제적 무역시스템이 만들어졌다.



 

3 ‘광저우의 외국인상관들’ 1790년경.



“청, 난파돼 떠돌다 마침내 가라앉을 운명”외국 무역선은 반드시 광저우로만 들어와야 하고 청 정부가 지정한 보상(保商)이 지시하는 대로 입출항 절차를 밟아야했다. 광저우의 상관에 거류할 수 있는 기간도 제한되었다. 예를 들어 영국 동인도회사의 화물 관리인은 10월에서 이듬해 3월까지만 상관에 머무를 수 있었고 나머지 기간에는 멀리 마카오에 나가 지내야 했다. 그림 3은 매카트니가 중국을 방문할 무렵 광저우 상관들의 모습을 묘사한다. 긴 부두를 따라 서양 각국의 상관들이 줄지어 자리 잡고 있다. 이렇게 제한된 공간에서 중국 정부의 통제를 받으며 교역을 해야만 했던 서양인들은 무역의 확대와 자유로운 활동을 간절히 원했다. 영국이 매카트니를 파견한 목적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건륭제는 영국의 요청을 단호하게 거부했다. 외교사절의 베이징 주재도, 무역항의 확대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나아가 황제는 조지 3세에게 보내는 친서에서 지구 반대편까지 미치는 자신의 은덕에 감사를 느끼고 충의를 다하라고 조언했다. 어떤 역사가는 사절단이 고두를 거부한 탓에 황제가 사절단의 요구를 내쳤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거리가 멀다. 근본적인 이유는 번영의 끝자락에 아슬아슬하게 선 청나라가 기존의 관념과 질서를 변화시킬 의향이 없었다는 데 있었다.



빈손으로 귀국길에 오른 매카트니는 청을 낡은 전함에 비유했다. 지난 150년 동안 이 배가 침몰하지 않고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유능하고 경각심 있는 관리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이런 인물들이 부족해지면 전함은 ‘바로 가라앉지는 않겠지만 한동안 난파되어 떠돌다가 마침내 산산조각이 날’ 운명이라고 그는 말했다.



반세기 후인 1840년 중국에 영국인들이 다시 찾아온다. 그러나 이번에는 외교 사절이 아닌 중무장한 군대의 모습이었다. 영국이 산업 대국이자 군사 강국으로 등장하는 글로벌한 변화를 화이사상에 갇혀 감지하지 못한 중국은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중국이란 배는 결국 아편전쟁을 통해 난파당하고 강압에 의해 자유무역을 받아들이는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송병건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bks21@skku.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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