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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만 파고들면, 간절히 원하면 꿈은 이뤄집니다”

송봉근 기자



지난달 29일 부산시 사하구 장림공단 내 줄자 제조업체인 코메론 공장. 돌돌 말아진 0.115㎜ 두께의 강판 수십 개가 공정 라인을 따라 돌아가고 있다. 하얀색을 입힌 후 열처리 과정을 거치고 한쪽 면만 형광색을 한번 더 씌운다. 다음엔 인쇄 공정으로 넘어가 앞뒤 일정한 간격으로 검은색 눈금이 새겨진다.



줄자 하나로 ‘글로벌 빅3’ 오른 강동헌 코메론 대표

강동헌(59) 코메론 대표는 “일정한 두께의 강판에 정확한 인쇄 기술이 합쳐져야 ‘스르륵 풀리고 착착 감기는’ 1급 줄자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1m 길이의 줄자에서 0.3㎜ 눈금의 오차라도 생기면 불량품으로 폐기한다”고 덧붙였다. 코메론이 생산하는 줄자는 250여 가지에 이른다. 회사 이름 자체가 브랜드다. ‘한국에서 만든 대표적인 줄자’라는 뜻을 갖고 있다. 실제 한국 시장 점유율 1위다. 이뿐만 아니라 미국의 스탠리와 일본의 다지마에 이어 세계 3위의 줄자 제작업체로 인정받고 있다. 미국과 유럽은 기본이고 아프리카, 브라질, 호주 등 세계 80여 개국에 수출한다. 수출액은 지난해 매출액(679억원)의 44%를 차지한다. 경영을 맡은 이후 30년 가까이 줄자 외길을 걸어온 결실이다.



서른두살에 아버지 대신 경영 일선에코메론은 1963년 부친 강의조(96) 명예회장이 창업한 한국엠파이어공업사가 모태다. 이곳은 고무나 비닐 소재로 전선을 감아 전기 누출을 막는 절연테이프를 주로 생산했다. 당시 절연테이프 소재 중 하나가 유리실을 뽑아 만드는 유리섬유였다. 유리섬유는 전기가 통하지 않을 뿐 아니라 고온에도 늘어나지 않았다. 이런 특성에 착안해 강의조 회장은 유리섬유를 폴리염화비닐(PVC)로 한번 더 코팅한 파이버 글라스(유리섬유) 줄자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기존 철 구조물 등 산업 현장에서 쓰던 플라스틱이나 천 소재의 줄자를 대체할 수 있는 혁신 제품이었다. 부친은 74년 상호를 한국도량기공업사로 바꾸고 줄자 제조 기업으로 첫걸음을 내디뎠다.



부친이 줄자시장을 개척했다면 꽃을 피운 것은 강동헌 대표다. 부친이 사업을 시작했을 당시에는 수요가 턱없이 부족했다. 줄자는 가구를 직접 조립하고 만드는 DIY(Do It Yourself) 문화가 확산된 후 시장이 개화하는 선진국형 상품이기 때문이다. 회사 사정은 갈수록 어려워졌고 건강까지 악화된 아버지는 86년 일선에서 물러났다. 2남3녀 중 장남인 고(故) 강동민(전 한민족문화연구원 이사장) 전 대표가 회사를 맡았다. 하지만 학자풍이었던 형님마저 제조업은 자신과 맞지 않는다며 경영을 맡은 지 3년 만에 백기를 들었다. 결국 차남인 강동헌 대표가 89년 32세의 나이에 경영 일선에 섰다. 그는 “형님까지 못하겠다고 하니 내 업(業)인 거 같았다”며 “무엇보다 아버지께서 어렵게 개발한 줄자 기술을 포기할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자석 부착, 자동 잠금 등 아이디어 제품 개발그는 회사 이름을 코메론으로 바꾸고 창의적인 아이디어 줄자 개발에 나섰다. 당시만 해도 줄자 같은 공구는 기능만 따졌기 때문에 세계적인 공구업체들도 디자인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공구 색상도 검정이나 무채색이 대부분이었다. 강 대표는 공구에 대한 고정관념을 과감히 깼다. 무채색 대신 노랑·빨강·파랑 등 다채로운 색상과 세련된 디자인으로 해외 소비자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사용자 눈높이에 맞춰 기술도 개발했다. 2001년 코메론이 줄자 테이프 끝 부분(훅)에 자석을 부착한 제품은 세계 줄자 업계에 신선한 충격을 줬다. 줄자를 배관이나 쇠로 된 소재에 고정할 수 있어 혼자서도 편리하게 길이를 잴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제품은 세계 특허를 따냈다. 또 물이나 습기가 많은 작업장에서 사용해도 녹이 슬지 않는 스테인리스 소재의 줄자도 개발했다. 코메론은 줄자 등 공구 관련 특허만 150여 개를 보유하고 있다. 이 중에서도 소비자에게 가장 인기가 많은 제품이 2003년 선보인 셀프락 줄자다. 줄자 테이프를 당기는 만큼 저절로 잠금장치가 작동하고 버튼을 누르면 줄자가 감기다가 멈추는 기능이 있다. 이 제품은 현재까지 2400만 개가 팔렸다.



200만 마일. 경영을 맡은 이후 강 대표가 10년간 약 1500회 비행기를 타면서 쌓은 항공 마일리지다. 그는 미국과 유럽·남미 등 줄자 공장이 있는 곳은 어디든지 다녔다. 해외 시장에서 수요가 많은 금속 소재의 줄자를 제작하기 위해서다. 해외 출장을 다녀오면 직원들과 밤을 새워가며 공장 설비를 다듬는 과정을 4~5년간 반복했다. 95년엔 인천 남동공단에 특수강을 얇게 펴는 압연공장도 세웠다. 마침내 소재 생산부터 제품 디자인·생산까지 세계 유일하게 수직적 통합 시스템을 갖췄다.



강 대표가 90년 초반 처음 진출한 곳이 미국이다. 초기엔 미국 한 줄자업체의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납품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갈수록 미국 업체는 중국이나 대만의 값싼 제품과 비교하며 가격을 깎아 달라고 요구했다. 그는 당장 수익보다 미래에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400만 달러(약 45억원)의 OEM 계약을 포기하고 자체 브랜드를 붙여 수출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97년 미국 위스콘신주 밀워키에 현지 법인을 세우고 영업에 나서자 뜻밖의 일이 발생했다. 월마트·로즈 등 대형 유통업체의 주문이 이어졌다. 강 대표가 OEM으로 납품할 때 꾀를 낸 게 통한 것이다. 겉에는 주문자 상표를 붙이지만 줄자 테이프를 당겼을 때 나타나는 눈금 아래에 1㎝ 크기로 ‘KOMELON’이라는 상호를 영어로 새겨놨다. 덕분에 상당수 유통업체나 줄자 도매업체 사이에선 코메론이 미국 제품에 비해 30~40% 저렴한 데다 품질이 뛰어난 회사로 입소문이 났던 것이다.



고비도 있었다. 미국 법인을 세운 지 6개월 후 거대한 토네이도가 창고에 보관해 뒀던 제품을 모조리 휩쓸고 지나갔다. 강 대표는 월마트와 계약하다가 TV 뉴스로 이 소식을 접했다. 뜻하지 않은 악재가 오히려 기회가 됐다. 피해 지역을 취재하던 미국 방송사 CNN 촬영 헬기에 코메론 법인이 수차례 잡히면서 미국 전역에 회사가 홍보가 됐다. 월마트는 납품 기한을 연장하는 것은 물론 계약 규모도 늘렸다. 지난해 말 기준 미국 수출액은 1779만 달러로 4년 전에 비해 33% 늘었다.



“작지만 존경받는 장수기업 됐으면”최근 강 대표는 줄자전문 회사에서 종합공구기업으로 사업 다각화에 나서고 있다. 2012년엔 톱 전문회사 구주금속공업사를 인수했다. 톱은 기존 코메론의 줄자 공급처인 로즈·월마트를 통해 본격적으로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2001년 코스닥에 상장한 코메론의 현재 주가는 8570원(7월 1일 기준). 이정기 하나금융투자연구원은 “미국 주택경기가 회복되면서 줄자 수요가 늘고 국내 DIY 인구가 증가하면서 연간 약 9% 이상 매출이 늘 것”이라며 “배당성향이 높다는 점도 투자 매력도를 높인다”고 말했다. 코메론은 10년 이상 10~15% 수준의 배당성향을 유지하고 있다. 최대주주보다 소액주주에게 더 많은 배당을 실시하는 차등 배당제를 수년간 실시했다.



강 대표는 “미국과 유럽 출장을 다니며 회사 규모는 작지만 지역사회에서 존경받는 장수 기업을 보며 부러움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래서 100년 넘게 지역 주민의 사랑을 받고, 직원이 회사에 자부심을 느끼고, 주주 중시 경영을 실천하는 회사를 꿈꾼다. 실제 적극적인 배당 정책뿐 아니라 직원의 복지 수준을 높이고 지역사회를 위한 나눔활동을 펼치고 있다. 지난 9년간 매일 본사 구내식당에서 독거노인 100여 명에게 점심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또 가정 형편이 어려운 청소년을 위해 장학금을 기부하고 있다. 시간을 쪼개 대학생들에게 무료로 강의하기도 한다. 강의 주제는 창업이다.



“직원 6명의 영세 업체가 줄자 하나로 세계 3위의 회사로 성장했습니다. 성공의 비결은 절실함이었습니다. 하나만 집중해 파고든다면, 이 일을 간절히 원한다면 꿈은 이뤄집니다.”



 



 



부산=염지현 기자 y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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