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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분명한 지휘 체계와 복잡한 계획이 부른 비극

1944년 9월 마켓가든 작전에서 영국 1공수사단 병사들이 네덜란드 아른헴을 점령하기 위해 낙하산을 펴고 내려가고 있다.[National Archives]


‘하늘에서 쏟아진 공수부대가 적의 허점을 찌른다. 이들이 확보한 거점을 징검다리 삼아 기갑부대가 차근차근 적진을 돌파해나간다. 힘이 빠진 데다 기습까지 당한 적군은 전의를 상실한다. 잘하면 라인강을 건너 석달 안에 전쟁을 끝내고 장병들이 크리스마스를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다. 물론 작전을 총지휘한 사람은 천재적 전략가로 기억된다.’


1944년 9월 영국군 총사령관 버나드 몽고메리 원수는 이런 꿈을 꾸고 있었다. 남자라면, 군인이라면 한번쯤 상상했을 달콤한 꿈이다. 그는 2년 전 북아프리카 엘 알라메인 전투에서 ‘사막의 여우’ 에르빈 롬멜을 격파하며 영국의 희망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공명심이 강하고 고집이 센 그에게 이 승리는 여러 모로 부족했다. 뛰어난 전략보다는 압도적인 물량으로 이긴 전투였다. 독일의 전격전처럼 단기간에 적을 섬멸한 것도 아니었다. 자신이 진정한 전략가임을 보여주고 싶었던 그에게 노르망디 상륙작전 석달 뒤 기회가 찾아온 듯 보였다.


당시 연합군은 독일 본토를 눈앞에 두고 발이 묶여 있었다. 독일군이 아니라 보급 때문이었다. 독일군은 좁은 길과 수로로 얽힌 네덜란드 저지대와 프랑스 국경에 건설해 둔 지그프리트 라인에서 연합군을 막기 위해 독일 국경으로 후퇴했다. 몽고메리가 이끄는 영국군과 조지 패튼이 선봉에 선 미군은 독일군이 떠난 프랑스 땅에서 하루 수십 ㎞씩 진격했다. 하지만 늘어난 보급선이 버티지 못했다. 연료 문제가 특히 심각했다. 북프랑스에 있는 항구들은 독일군이 철저하게 파괴해 노르망디에 설치한 인공부두만 쓸 수 있었다. 연합군의 공습과 프랑스 레지스탕스 활동, 독일군의 파괴로 철도망도 누더기가 돼 있었다.


하지만 가장 큰 갈등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가 지휘하는 연합군 최고사령부 내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다음 공격의 주역을 누가 맡을 지가 문제였다. ‘독불장군’ 패튼은 자신의 기갑부대에 독일과 프랑스 국경을 돌파할 우선권을 달라고 요구했다. 몽고메리는 영국군이 맡은 네덜란드 전선을 통해 베를린으로 가는 진격로를 열겠다고 주장했다. 그는 시칠리아에서 패튼에게 요충지 메시나를 점령하는 영광을 빼앗겼던 아픔을 반복할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고심하던 아이젠하워는 영국과의 관계를 고려해 몽고메리의 ‘마켓가든 작전’을 선택했다.



연합군 30만명, 독일군 기습 때마다 발 묶여계획으로만 보면 작전은 명쾌했다. 벨기에에서 출발한 영국 제30군단(마켓)이 네덜란드 동남부의 아인트호벤과 네이메헨·아른헴을 순차적으로 점령할 예정이었다. 도시마다 있는 다리는 영국 제1공수사단과 미국 82·101공수사단(가든)을 낙하산으로 투입해 미리 확보하기로 했다. 작전이 성공하면 연합군이 라인강이라는 천연 장애물을 건너 지그프리트 라인에 매달려 있는 독일군의 옆구리를 찌를 수 있을 터였다.


9월 17일 일요일 아침 3만5000명의 공수부대가 수송기와 글라이더를 타고 영국에서 출발했다. 전선에서 가장 가까운 아인트호벤에 강하한 미국 101공수사단은 다리 하나를 점령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다른 두 도시에선 일이 꼬였다. 82공수사단은 네이메헨에 낙하했지만 다리 점령에 실패하고 독일군과 대치했다. 영국 제1 공수사단이 투입된 아른헴은 알고보니 호랑이굴이었다. 독일의 2개 무장 친위대(SS) 기갑사단이 하필 이곳에서 재편성 중이었기 때문이다. 이들 독일군은 노르망디에서 큰 타격을 입고 소수의 탱크와 병력만 갖고 있는 상태였지만 중화기가 전무하다시피한 공수부대에겐 대적하기 버거운 강적이었다.


지상군의 진격도 계획과 거리가 멀었다. 최종 목표인 아른헴으로 가는 길은 세 갈래의 좁은 제방길뿐이었다. 대전차포로 무장한 소수의 독일군이 매복해 기습할 때마다 길게 늘어선 영국군 전차들은 정체를 일으키며 멈춰섰다. 이 사이 뿔뿔이 흩어져 지상군을 기다리던 공수부대는 차례차례 독일군에 소탕됐다. 결국 9월 21일 영국 공수부대가 아른헴 다리에서 후퇴하고 25일엔 라인강 건너에 있는 모든 거점을 포기하면서 작전은 처참한 실패로 끝났다. 이 과정에서 투입된 공수부대의 절반 이상을 포함해 1만8000여 명이 죽고 다치거나 포로가 됐다.


 

네덜란드에 강하한 연합군 병사들은 예상과는 달리 전차와 장갑차로 중무장한 독일군 방어 병력과 마주쳐 큰 피해를 입었다. 1976년 영화 ‘머나먼 다리’촬영 중 독일군으로 분장한 배우들이 기갑차량을 타고 다리를 지나고 있다. [사진 Nationaal Archief]


돌이켜보면 이 작전의 성공 가능성은 애초부터 희박했다. 연합군은 완벽한 제공권을 쥐고 샅샅이 항공 정찰을 했지만 그 지역에 있는 독일군의 규모를 제대로 판단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계획이 너무 복잡하고 비현실적이었다. 연합군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수천 명의 공수부대를 독일군 후방에 낙하시킨 경험이 있었다. 마켓가든의 규모는 훨씬 컸다. 수천 대의 항공기를 동원해 3만 명 이상을 낙하시키는, 차원이 다른 작전이었다. 혼란과 차질이 뻔히 예상됐지만 몽고메리는 이를 무시했다. 이 결과 많은 수송기가 길을 잘못 들어 엉뚱한 데 부대와 보급품을 떨궜다. 이 작전을 다룬 영화 ‘머나먼 다리(A Bridge Too Far)’에선 한 병사가 목숨을 바쳐 끌고온 보급품 상자에 쓸모 없는 베레모가 가득 담겨 있는 장면이 나온다.


공수부대를 구원할 지상군의 진격도 예정보다 훨씬 지체됐다. 지도에 반듯하게 그려진 제방도로는 독일군의 대전차포에게 최상의 지형이었다. 기습을 받을 때마다 수만 대의 차량이 앞의 상황을 모르고 뒤엉켜 정체됐다. 30만명이 훨씬 넘는 육군과 공군, 공수부대가 시시각각 변하는 날씨와 전황을 극복하고 착착 호흡을 맞추기는 애초부터 불가능했다.


마켓가든 작전의 실패는 전략적으로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1944년 크리스마스 종전이라는 연합군의 기대는 신기루가 돼 날아갔다. 쓸데없이 전력을 소진한 연합군은 사실상 모든 전선에서 진격을 멈췄다. 벌지전투라는 최후의 반격을 시도할 시간을 히틀러에게 벌어준 셈이다. 반면 그해 여름 바그라티온 작전을 시작한 소련은 물밀듯이 독일의 동부 국경으로 쇄도하고 있었다. 마켓가든 작전의 실패는 결과적으로 소련이 베를린 점령이라는 정치적 승리를 거두는 데 일조했다.


 


호텔롯데 상장 통해 투명한 지배구조 필요명확하지 않은 지휘 체계에 복잡한 작전이 얽히면 예상치 못한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은 기업도 마찬가지다. 형제 간에 경영권 분쟁을 겪고 있는 롯데그룹이 대표적인 사례다. 신격호(94)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장남인 신동주(62) SDJ코퍼레이션 회장과 신동빈(61) 롯데그룹 회장은 25일 일본 도쿄의 롯데 본사에서 열린 롯데홀딩스 주주총회에서 또다시 표대결을 벌였다. 지난해 7월, 올 3월에 이어 세 번째다. 전과 마찬가지로 신동빈 회장이 어렵지 않게 이겨 경영권을 지켰지만 신동주 회장은 롯데 탈환의 의지를 버리지 않고 있다.


롯데의 문제는 신격호 총괄회장이 명확한 후계 구도를 정하지 않은 데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신동주 회장, 한국은 신동빈 회장이라는 두리뭉실한 체제를 이어오던 롯데그룹은 지난해 1월 신동주 부회장이 롯데홀딩스 부회장 직에서 갑자기 해임되면서 격변기를 맞이한다. 이어 7월에는 신동빈 회장이 롯데홀딩스 회장으로 선임되면서 순조롭게 경영권을 장악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신동부 회장을 해임한 것으로 알려졌던 신격호 총괄회장이 7월 27일 롯데홀딩스 이사를 모두 해임하는 일이 벌어졌다. 밀려난 신동주 회장이 신격호 총괄회장을 앞세워 반란을 일으킨 셈이다. 신동빈 회장은 이사회를 열어 해임 결정이 절차상 불법이라고 선언하고 신격호 회장을 해임하는 강수로 맞섰다. 이후 주총 표 대결에서 잇따라 승리하며 경영권을 지키고 있다.


오락가락하는 신격호 회장이 지휘 체계를 흔든 근본 원인이라면 명확치 못한 롯데그룹의 지분 구조는 경영권의 혼란을 부채질하는 요소다. 롯데그룹의 지주사 격인 일본 롯데홀딩스의 지분 구조는 광윤사(光潤社)가 28.1%, 종업원지주회 27.8%, 관계사 20.1%, 임원지주회 6% 등이다. 신동빈 회장은 종업원지주회, 관계사 지분 일부, 임원지주회 등 3대 주주군의 지지를 바탕으로 경영권을 지키고 있다. 반면 광윤사를 바탕으로 한 신동주 회장의 지지 세력도 만만치 않다. 롯데홀딩스는 한국 롯데그룹 지주사 역할을 하는 호텔롯데의 지분 19%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최대주주다.


신동빈 회장이 검찰 수사를 받는 중에도 롯데호텔의 조기 상장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상장을 통해 롯데홀딩스 등 일본 계열사의 지분을 낮추고 자신의 지분을 확보해야 반격의 여지를 봉쇄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한국 롯데 계열사들이 거미줄처럼 복잡한 67개의 순환 출자 고리로 얽혀 있고, 36개 일본 계열사와 86개 한국 계열사 가운데 단 8개사만이 상장돼 있다는 불투명성도 개선할 필요가 있다.


마켓가든 작전 계획서를 본 한 연합군 장교는 “이건 실 한가닥으로 바늘귀 7개를 단번에 꿰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하나만 어긋나도 모든 것이 실패하는 위험한 도박이라는 의미다. 롯데그룹의 복잡한 지분 구조를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다면 신동빈 회장의 앞날은 마켓가든 작전에 투입된 공수부대 병사들만큼이나 고단해질 것이다.


 


나현철 논설위원tigerac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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