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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투자은행 아니라 우리가 주도해 거래 성사한 데 의미”

김경빈 기자



# 지난해 6월 세계적인 사모펀드 블랙스톤이 3억 달러(약 3498억원)를 들여 국내 한 기업의 지분 30%를 인수했다. 블랙스톤이 지분 전체가 아닌 소규모 지분 투자를 한 것은 이례적이다. 세계 시장에서 업계의 위상과 역량을 감안한 결정이었다는 후문이다.



네덜란드 랜드마크빌딩 인수한 박은관 시몬느 회장

 # 지난 3일 유럽 부동산 시장의 빅딜 건이 국내에 알려졌다. 네덜란드 로테르담 강변의 랜드마크 빌딩인 ‘드 로테르담’ 빌딩을 국내 자산운용사가 4500억원을 주고 사들였다는 것이다. 드 로테르담은 건축계의 노벨상인 프리츠커상을 받은 세계적인 건축가 렘 콜하스가 설계한 네덜란드 최대 복합빌딩이다.



 시장이 주목한 이 투자 사이에는 공통분모가 있다. 세계적인 핸드백 제조업체인 시몬느다. 블랙스톤은 시몬느 지분의 30%를 인수했다. 드 로테르담 빌딩 매입을 성사시킨 곳은 시몬느의 자회사인 시몬느자산운용이다. 국내 기관투자가가 참여한 이번 거래의 운용(GP)을 맡았다. 시몬느자산운용은 미국 워싱턴 하버 빌딩과 휴스턴 웨더퍼드 빌딩 등을 사들이며 해외 부동산 시장의 큰손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 모든 행보에는 핸드백으로 세계를 제패한 박은관(61·사진) 시몬느 회장의 새로운 꿈이 자리 잡고 있다. 9일 경기도 의왕시 본사에서 그를 만났다.



 

시몬느자산운용이 인수를 주도한 네덜란드 ‘드 로테르담’ 빌딩(왼쪽 3개 동)의 모습. [블룸버그]



핸드백 제조와 부동산 자산 투자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으로 비친다. 박 회장은 “자산운용사는 브랜드 인수합병(M&A)을 위한 창구로 만들었다”며 “부동산 투자와 관련한 자산운용 인가를 받아 그동안 해외 부동산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시몬느자산운용은 유럽 부동산 재간접펀드와 독일 오피스 빌딩 펀드 등을 설정해 자금을 굴리고 있다.



드 로테르담 빌딩의 인수도 이런 투자 중 하나다. 유럽 최대 무역항인 로테르담 마스강 빌헬미나 부두 인근에 있는 이 빌딩은 도시의 얼굴로 자리매김했다. 빌딩 전체 면적이 16만㎡에 이르고 150m 높이의 투명한 타워 3개로 이뤄져 ‘수직 도시’ 개념을 구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호텔과 상업시설, 아파트 등으로 이뤄져 있다. 공실이 거의 없이 장기 임대차 계약을 맺어 안정적인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여기에 네덜란드의 랜드마크로 세계적인 관광 명소로 부각되는 점도 향후 매각 시 상당한 수익을 낼 수 있는 밑바탕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박 회장은 “해외 투자은행(IB)이나 운용사가 만든 펀드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직접 거래를 주도해 성사시킨 것이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시몬느자산운용은 운용수수료나 향후 매각 시 발생하는 차익에 대한 성과보수 등을 얻게 된다.



해외 부동산 투자를 통해 제대로 몸을 풀었으니 이제는 글로벌 패션 회사로 도약하기 위해 해외 IB와 함께 브랜드 M&A에 본격적으로 나서겠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2~3개 브랜드를 눈여겨보고 있다”며 “투자 규모는 3억~5억 달러 정도로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블랙스톤이 시몬느에 러브콜을 보낸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박 회장은 “패션 사업에 투자하기 위한 교두보로 시몬느를 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될성부른 브랜드를 찾아내거나 경영상의 문제 등으로 쪼그라든 브랜드를 인수해 브랜드 가치를 높여 기업공개(IPO)나 매각 등을 함께할 파트너로 시몬느를 택했다는 설명이다.



매출 1조원 핸드백 세계 1위 업체 그 바탕에는 시몬느가 세계 핸드백 업계에서 구축한 막강한 역량이 있다. 시몬느는 세계 핸드백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다. 세계 핸드백 시장의 10%, 미국 시장의 30%를 장악한 1위 업체다. 도나카렌뉴욕(DKNY)과 마크 제이콥스, 마이클 코어스를 비롯한 전 세계 내로라하는 명품 업체가 시몬느의 고객이다. 지난해 시몬느의 매출은 1조원을 넘어섰다. 공장도 가격 기준이다. 시중에 팔리는 소매 가격으로 따지면 7조원에 이른다. 아카이브로 보유한 핸드백 스타일 디자인만 18만 개에 이른다.



이를 가능케 한 것이 자체개발주문생산(ODM)이다. 시몬느는 제품 개발과 생산, 품질관리를 모두 담당한다. ‘풀 서비스드 컴퍼니(Full-Serviced Company)’다. 핸드백 생산을 고민하는 디자이너 브랜드가 시몬느의 문을 두드리는 이유다.



내년이면 창립 30주년을 맞는 시몬느는 체질 개선 작업 중이다. 거함의 뱃머리를 트는 일은 만만치 않다. 하지만 방향만 분명하면 해볼 만한 도전이기도 하다. 그는 “신생 브랜드 인큐베이팅과 브랜드 M&A, 자체 브랜드 육성이 나아갈 세 가지 목표”라고 말했다.



브랜드 인큐베이팅은 새롭게 시작하는 브랜드나 능력·재주는 있지만 자금력이 없는 브랜드를 찾아내 자금과 운영 컨설팅을 맡는 것이다. 시동은 걸었다. 서울 신사동 플래그십스토어에 입점한 이탈리아 액세서리 브랜드 ‘스테파니아 프라마’가 첫 작업이다.



시몬느의 미래 청사진에서 그가 가장 공을 들이고 장기전을 예상하는 것이 바로 자체 브랜드다. 이미 배는 띄웠다. 지난해 10월 자체 브랜드인 ‘0914’를 세상에 내놨다. 그는 “ODM 업체로 시작해 이제 글로벌 패션 회사로 진입하는 단계로 들어섰다. 이제 자체 브랜드로 포트폴리오를 갖춰나갈 때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브랜드를 기르는 것은 긴 여정”이라고 강조했다. 지금은 브랜드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다품종 소량생산을 내건 이유다. 0914 브랜드는 한 모델을 20개만 판매한다. 모든 제품이 한정판(리미티드 에디션)인 셈이다. 한 시즌에 600여 개 제품을 시장에 선보였다. 가장 강조하는 것은 독창성이다. “우리가 만들어 납품한 것과 비슷하게 만들 수는 없다. 제대로 만든다는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도 100년의 역사를 가진 패션 기업이 생겼으면 하는 소망에서 자체 브랜드를 만들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패션 글로벌 브랜드가 생긴다면 그 책임과 권리가 시몬느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코리아는 안 된다”던 명품업체 품질로 설득 사실 그는 핸드백이 자신의 평생 업이 될 줄 몰랐다고 했다. 그의 아버지는 인천에서 조선소와 냉동창고, 원양어업 사업을 하던 ‘황해수산’을 운영했다. 형들은 아버지 밑에서 일했다. 그도 같은 길을 갈 줄 알았다. 하지만 다른 선택을 했다. 1979년 연세대 독문과를 졸업한 뒤 핸드백 제조업체 ‘청산’에 입사했다. 해외 여행이 자유롭지 않던 시절 수출업체라는 말에 끌렸다. 처음엔 3년 정도만 경험을 쌓자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1년의 절반 이상을 이탈리아에 머물며 핸드백의 세계에 눈을 떴다. ‘리즈 클레이본’이라는 미국 브랜드의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제작을 따내며 회사는 눈부시게 도약했다. 회사의 성장을 이끌며 그도 입사 5년 만에 부장으로 초고속 승진했다. 그러다 87년 독립해 시몬느를 세웠다. 회사를 차리겠다는 결심에 사람들은 고개를 저었다. 봉제업이 사양산업으로 여겨질 때였다. 부친도 반대했다. 그의 생각은 달랐다. 저가의 OEM 봉제업이 아닌 고가 디자이너 브랜드로는 승산이 있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회사를 차리고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당시 미국에서 가장 핫(hot)한 브랜드였던 DKNY의 핸드백 7개를 사들고 왔다. 핸드백을 다 뜯어 분해한 뒤 같은 가죽과 원부자재를 이용해 똑같은 핸드백을 만들었다. 그 가방을 들고 DKNY를 찾았다. 30~40% 싼값에, 이탈리아보다 짧은 기간에 가방을 만들겠다고 설득했다. 마케팅팀의 저항은 거셌다. ‘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는 안 된다고 펄쩍 뛰었다. 우선 100개만 만들어 보자고 설득했다.



그의 승부수는 통했다. 한국 장인의 손에서 태어난 핸드백은 잘 팔렸다. DKNY는 시몬느의 손을 잡았고 그 인연은 28년째 이어져 오고 있다.



자체 브랜드를 내놓고 브랜드 M&A를 모색하고 있지만 그는 서두르지 않는다.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있고 시간의 무게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있다. 패션은 시간의 무게가 필요한 분야다. 소나무를 심어도 뿌리를 내리고 새순이 나고 가지를 치고 이끼가 낄 때까지 7~10년이 걸린다. 자체 브랜드의 경우 전통을 쌓고 브랜드의 정체성을 찾을 때까지 15~20년이 걸린다. 다음 세대를 위한 프로젝트다. 꽃은 내가 보지 않아도 된다.”



 



 



하현옥 기자 hyuno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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