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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 고통 덜어줬던 ‘풍류의 선비’ 정여창

1 경남 함양의 남계서원 정문에 해당하는 누각에 ‘풍영루’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가운데 공간이 강학공간, 가장 뒤쪽에 있는 건물이 제향공간으로 조선시대 서원건축의 초기 배치 형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서원이다.



신라의 대학자 최치원 선생은 한국문화의 특징을 풍류라 했다. 『삼국사기』의 ‘신라본기’ 진흥왕 37년(576년)조에 다음과 같은 최치원의 ‘난랑비서’가 실려 있다.



[한국문화의 뿌리를 찾아서 -3-]남계서원

“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으니, 풍류라 한다. 가르침을 실시한 근본정신은 선사에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실로 세 가르침을 포괄하면서 뭇 생명들을 접하여 감화시킨다. 또한 집에 들어오면 가정에서 효도하고 밖에 나가면 나라에 충성토록 하는 것은 노나라 사구의 뜻이고, 함이 없는 일을 하고 말없는 가르침을 행하는 것은 주나라 사관의 종지이며, 모든 악을 짓지 않고 모든 선을 받드는 것은 인도 태자의 교화이다.”



포함하는 것은 초월할 때 가능하다. 유교에 갇혀있으면 유교를 초월할 수 없으므로 유교를 포함할 수 없는 이치다. 불교도 마찬가지다. 오늘날의 기독교 또한 마찬가지리라. 유교를 공부하면서도 유교를 초월하여 유교를 포함할 수 있으면 동시에 불교·기독교 등을 포함할 수 있다.



초월하지 못하면 풍류가 없다. 풍류란 초월하여 전체를 포함할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풍류의 연원은 까마득한 옛날 고조선의 개국(開國) 역사와 닿아있다. 환웅이 하늘에서 내려오면서 시작되는 한반도의 역사 말이다. 하늘나라에서 왔다는 것은 우주에서 내려왔다는 뜻이 아니다. 지상세계를 초월한 상태에서 모든 것을 포함할 수 있는 한국인의 정신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2 풍영루를 들어서면 좌우 양쪽에 연꽃을 심어 놓은 연지가 나온다. 연지 뒤 왼쪽 계단이 보이는 건물이 강학공간인 명성당이다. 김경빈 기자



과거 급제해 동궁이었던 연산군 보필오늘날 최치원의 흔적은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쌍계사·해인사·해운대·태인·서산·함양 등지에 걸쳐 광범위하게 남아 있지만 그중에서도 경남 함양이 성지격으로 꼽힌다. 최치원이 수해를 막기 위해 조성한 것으로 알려진 함양의 상림이 지금도 함양 사람들에게 사랑을 듬뿍 받고 있어서다.



함양이 낳은 걸출한 인물 중에 일두(一?) 정여창(鄭汝昌, 1450~1504) 선생이 있다. 정여창의 초명은 백욱(佰勖)이었는데, 어릴 때 그를 눈여겨본 중국의 사신이 “너는 커서 집을 크게 창성하게 할 것이므로 이름을 여창(汝昌)으로 하라”고 했다고 전한다.



정여창은 사화(士禍)의 인물이다. 두 차례의 사화 끝에 부관참시되는 불운을 겪었다. 그런 정여창과 최치원의 풍류가 어떻게 연결되는 것일까. 지금부터 과거로 시간 여행을 떠나보자.



정여창은 함양군수로 와 있던 김종직 선생의 문하에 들어가 학문을 연마해 성리학에 밝았다. 1480년 성종이 성균관에 유서를 내려 행실이 돈독하고 학문에 밝은 사람을 구하자 성균관에서 가장 먼저 천거한 인물이 정여창이다. 1490년 과거에 급제하여 당시 동궁이었던 연산군을 보필했지만 뜻이 맞지 않았다. 연산군 1년(1495년) 안음현감이 됐다. 공정한 일처리로 백성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데 앞장섰다. 원근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옥사와 판결이 있으면 반드시 그를 만나서 물어본 뒤에 시행했으므로 백성들의 칭송이 자자했다. 조선왕조의 정치 이념인 유학정신과 실지의 정치가 결합된 이상형이었다.



거슬러 올라가면 이런 유학적 이상 정치가 만개하던 시절은 세종 때였다. 그러나 세종 사후 세조 때 균열이 일어난다. 조카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르자 유학자들 중에서 반발이 일었다. 1차적인 저항은 권력에 가까이 있었던 사육신에 의한 단종복위 운동으로 나타났으나 실패로 돌아갔다. 그러자 유학자 중에서 권력의 핵심에서 벗어나 있으면서 프로 정치인들을 꾸짖는 그룹, 이른바 사림(士林)이라고 하는 독특한 그룹이 생겨났다.



훗날 사림의 화, 사화를 불러온 이가 김종직이다. 그 시작이 조의제문(弔義帝文)이다. 조의제문은 항우(項羽)에게 죽은 초나라 의제(義帝)를 위로하는 글의 형식을 띠었지만 실상은 세조에게 죽임을 당한 단종(端宗)을 위로하고, 단종의 왕위를 찬탈한 세조를 은근히 비난한 글이었다. 이 글을 빌미로 이극돈을 위시한 프로 정치인들이 견제 세력이었던 사림을 제거한 것이 무오사화(1498년) 때다. 무오사화 때 김종직은 부관참시를 당했고, 김일손·권오복·권경유·이목·허반 등의 사림파들이 참수됐다. 정여창은 무오사화 때 함경도 종성에 유배됐다가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으나 뒤이은 갑자사화(1504년)에 연루되어 부관참시 당했다. 그 뒤 중종 때 신원이 되어 우의정에 증직되었고, 1610년(광해군 2년)에 문묘에 배향되었다.



풍류정신은 ‘중용적 사고’에서 나온다.



『중용』은 사람의 마음이 바르게 되기만 하면 그 순간 세상은 바로 평화로워진다고 가르친다. 이 세상이 이미 평화롭다는 것을 안다면 굳이 세상을 바로잡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증점



하나의 에피소드가 있다. 공자가 어느 날 제자들에게 정치를 담당하게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 물었다. 제자들은 빠른 시일 안에 정치와 경제를 안정시키겠다고 대답했다. 그때(曾點)은 “늦봄에 봄 옷이 만들어지면 갓을 쓴 사람 5, 6인과 동자 6, 7인을 데리고 기수에 가서 목욕하고 무우에 가서 바람 쐰 뒤 노래하면서 돌아오겠다.(莫春者 春服旣成 冠者五六人 童子六七人 浴乎沂 風乎舞雩 詠而歸)”고 답했다. 공자는을 칭찬했다. 당시 극도로 혼란했던 춘추시대였지만, 마음이 바르게 되면 어지러운 세상에서도 초연한 상태로 풍류를 즐길 수 있다는 풍류 정신이야말로 유학의 정수라고 여긴 것이다.



정여창에게도 그런 풍류가 있었다. 1486년 어머니의 상을 당해 3년 동안 시묘를 한 뒤, 지리산 자락에 있는 섬진강 강가에 집을 짓고 대와 매화를 심으며 유유자적하게 지내려 했다. 과거에 합격하여 벼슬길에 나가기도 했지만, 풍류를 즐기며 살려 했던 정여창의 혼이 느껴지는 곳이 바로 남계서원이다.



경남 함양군 수동면 원평리에 있는 남계서원은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도 훼철되지 않아 오늘에 전해지고 있다. 앞쪽으로 남계천이 흐르고, 들판 너머로 백암산이 서원을 마주보고 있다. 서원의 정문에 해당하는 누각에는 ‘풍영루(風詠樓)’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영(?)은 영(詠)과 같은 글자이므로 풍영(風?)이란 풍영(風詠)이란 뜻이다. 풍(風)은이 무우에서 바람 쐬겠다고 한 풍이고, 영(?)은 노래를 하며 돌아오겠다고 한 영이다.



풍영루는 남계서원 외에도 몇 군데 더 있다. 양산향교에도 있고, 이천향교에도 있었으며, 백학서원에도 있었고, 경북 상주에도 있었다. 상주에 있던 풍영루에 대해 김종직의 ‘풍영루중영기’가 남아 있다. 청도에 있는 자계서원에는 영귀루(詠歸樓)가 있다. 영귀란이 노래하며 돌아오겠다고 한 그 영귀이므로 풍영루와 통한다. 자계서원은 정여창의 친구인 김일손 선생을 모신 서원이므로 남계서원의 풍영루와 하나로 통한다.



 



유학의 영향 받아 풍류 상징 누각 많아이처럼 우리나라에 풍류를 상징하는 누각이 많은 이유는 공자의 유학에서 영향을 받은 탓도 있지만, 단군이래의 풍류정신이 최치원을 거치면서 유유히 내려오는 한국 고유의 정신을 잇고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풍영루를 지나면 좌우 두 곳에 연꽃을 심어 놓은 연지가 있고, 연지 너머에 애련헌과 영매헌이 있다. 애련헌은 연꽃을 사랑하는 집이란 뜻이고 영매헌은 매화를 읊는 집이란 뜻이다. 옛 군자들이 연꽃과 매화를 유난히 사랑한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애련헌과 연결되어 있는 동재에는 양정재(養正齋)라는 이름이 붙어있고 영매헌과 연결되어 있는 서재에는 보인재(輔仁齋)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양정이란 바른 마음을 기른다는 뜻이고 보인이란 친구끼리 모여 인을 얻기 위한 공부를 함께 한다는 뜻이다. 동재와 서재를 지나면 강학공간이 나오는데 명성당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명성(明誠)이란 『중용』에서 따온 말로 공부를 하여 현명해지면 성실해진다는 뜻이다. 명성당 뒤에는 다른 서원과 마찬가지로 사당이 위치하고 있다.



남계서원을 돌아본 뒤에는 함양에 위치한 정자들을 둘러보면 좋다. 풍류에 흠뻑 취하다 보면 어느새 세속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훌훌 털어버릴 수 있다.



 



이기동성균관대 동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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