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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정치’ 막는 길, 양극화 해소·사회안전망 확충이다

지난주 필리핀 대통령에 선출된 로드리고 두테르테 당선자는 “필리핀의 트럼프”로 불린다. 22년간 디바오 시장을 지낸 그는 “범죄자들의 시체를 빨랫줄에 널어버리겠다”는 등의 과격한 발언을 서슴지 않는 막말 파동의 주역이다. 미국에선 숱한 막말로 여론의 비난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널드 트럼프가 유력 후보를 제치고 사실상 공화당 후보로 확정됐다. 브라질에선 아이티 난민을 향해 “쓰레기가 브라질에 들어오려고 한다”고 해 논란이 된 자이르 볼소나루 의원이 유력한 대선 주자로 부상하고 있다.



정치적 배경과 이념은 다르지만 이들 막말 논란의 주인공들이 유권자의 지지를 받고 있는 건 장기적인 경기 침체에 따른 실업과 중산층 붕괴, 이에 따른 양극화의 심화라는 공통점이 작용한 결과다.



사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트럼프 현상에 대해 “중산층 몰락에 따른 양극화 심화가 트럼프 신드롬을 부추기고 있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퓨리서치센터가 미국 내 229개 도시 지역을 대상으로 1999~2014년 자료를 조사한 결과 83%에 달하는 지역에서 중산층의 가계소득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분노한 저소득·저학력·백인 유권자들이 이민자·소수계·여성을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트럼프의 선동 전략에 열광하고 있는 것이다.



필리핀도 비슷하다. 뉴욕타임스(NYT)는 두테르테의 당선을 “코후앙코 가문을 비롯한 유력 40개 가문이 필리핀 국내총생산(GDP)의 76%를 장악하는 현실에 유권자들이 환멸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현재 8600만 명의 필리핀 인구 가운데 4분의 1이 빈곤층이다. 테레사 타템 필리핀대 교수는 “부자는 더 부유해지는 반면 보통 사람들은 망가진 지하철을 두 시간씩 타고 일터로 가는 데 좌절했다”며 “두테르테가 실제로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기대에 지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뿐만 아니라 스페인·오스트리아·브라질 등 지구촌 곳곳에서 양극화에 분노하는 유권자의 감성을 막말로 자극해 기성 질서를 뒤집으려는 ‘분노의 정치’가 확산되고 있다.



양극화에 따른 갈등이 심해지는 현상은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11일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지난달 청년 실업률은 10.9%로 전년 동월 대비 0.7%포인트 상승했다. 관련 통계 집계가 시작된 2000년 이후 4월 기준으로 가장 높은 수치다. 15~29세 청년 실업률은 올해 2월부터 3개월 연속 같은 달 기준으로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어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한국적 불평등의 원인은 재산의 차이도 크지만 이보다 임금·고용의 격차에서 비롯됐다는 게 대체적 분석이다. 중소기업 근로자들의 임금은 대기업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근로자 3명 중 1명은 임금이 2인 가구 최저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중소기업에서는 사람이 없다고 아우성인데 청년 실업률이 사상 최고치를 이어가는 모순이 여기에서 발생한다. “일자리의 4%밖에 만들지 않는 100대 기업이 이익의 60%를 가져가는 승자 독식 구조를 바꿔야 한다”(장하성 고려대 교수)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문제는 양극화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도, 대통령이 바뀐다고 금방 해결되는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21세기 자본?을 쓴 토마 피케티 교수의 지적대로 양극화 심화는 구조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세계 경제가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수록 물려받은 부가 더 많은 부를 낳는 상황은 더욱 확고해지고, 불평등은 역사상 최고 수준으로 심화될 것이라는 것이 피케티 교수의 우울한 결론이다.



무역으로 먹고사는 한국이 트럼프처럼 보호주의를 내세울 수는 없다. 그렇다면 사회안전망 강화를 통해 중산층 붕괴를 막고 갈등을 줄여나가기 위한 정파·계층을 초월한 전 국가적 차원의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복지 확충을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돈이 드는데, 이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도 시작해야 한다. 전체의 1%인 대기업이 법인세의 80% 이상을 내는 상황에서 대기업·고소득층 과세를 강화하는 것만으론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이런 면에서 개원을 앞둔 20대 국회는 첫 의제를 양극화 해소와 사회안전망 강화에 두는 게 순서다. 당면한 청년실업 문제와 중산층 붕괴에 따른 가족 해체를 막을 방책을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진지하게 논의해야 할 것이다. 정치권이 중심이 돼 청와대와 정부·기업·노동자 등이 참여하는 대토론회를 열고 사회적 협약을 이끌어내는 산파역이 되는 모습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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