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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연인’으로 산 미국인

반 클라이번이 연주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3번 음반.



반 클라이번(Van Cliburn·1934~2013)은 ‘미국의 영웅’ 칭호를 듣는 피아니스트지만 나는 오랫동안 그를 할리우드의 연예인 정도로만 생각해 왔다. 당연히 연주는 들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뒤늦게 음반을 뒤져 보니 쇼팽의 피아노 소나타 두 곡을 담은 것과 폴로네이즈와 연습곡을 수록한 음반 등 두 장이 모습을 드러냈는데 오랫동안 거들떠보지 않아서 먼지가 잔뜩 끼어 있다.



[음악 나의 동경 나의 위안] 피아니스트 반 클라이번

무지는 시야를 가리고 청각을 오도한다. 그래도 음반이 있는 걸 보니 23살 새파란 청년 클라이번이 1958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일으킨 소동이 대단하긴 했던가 보다. 한 피아니스트에겐 고금을 통해 두 번 있기 힘든 큰 소동이었다고 기억된다. 만년 청춘일 것 같던 그도 2013년 찬미자들의 곁을 떠났다.



반 클라이번 연주를 찾아 듣게 된 것은 흐루쇼프 때문이다. 그는 쇼팽 곡을 좋아한다. 60년대 초 유엔총회장 연단에서 구두를 벗어 탁상을 친 것으로 악명을 떨친 이 공산당서기장이 클라이번이 쇼팽의 ‘Fantasy in F minor Op. 49’를 연주할 때 연주장 발코니에 앉아 조용히 감상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유쾌한 일이다. 이 곡은 쇼팽 유일의 환상곡이다. 조르주 상드와 함께 지내던 시기의 마지막 무렵 갈등에 시달리던 자신의 상태를 드러내는, 쇼팽 곡으로는 이해가 쉽지 않은 작품이다.



이 연주는 콩쿠르 4년 뒤인 62년 러시아를 다시 찾은 클라이번이 러시아 청중을 위해 마련한 것인데 흐루쇼프가 나타나 조용히 감상한 걸 보면 그가 쇼팽의 애호가이자 클라이번의 열혈 팬이란 걸 알 수 있다. 흐루쇼프가 그토록 좋아하고 즐겼던 반 클라이번의 연주는 어떤 연주일까.



클라이번 연주에는 많은 찬사가 따른다. 콩쿠르 심사위원이던 에밀 길렐스와 스비아토슬라브 리히터의 평가가 시발점이다. 길렐스는 “천부적 예술성과 매우 섬세한 음악성이 그의 연주를 격조 높게 이끌었다”고 언급했다. 리히터는 아예 러시아 참가자를 포함한 다른 연주자들 모두에게 0점을 매기고 오직 클라이번에게만 만점을 주었다.



그러나 러시아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마련된 잔치인 만큼 적국 청년에게 승리를 안겨주는 데는 서기장의 윤허가 필요했다. “그가 러시아인보다 더 탁월하게 러시아 음악을 연주합니다.” 서기장에게 보고했다는 내용이다. 흐루쇼프의 클라이번에 대한 관심이 여기서부터 비롯된 것 같다.



반 클라이번의 연주는 연주 모습 자체가 볼거리다. 190cm의 큰 체구, 조각상처럼 잘 생긴 얼굴, 거기에 바닷게의 다리처럼 긴 손가락을 활용해 스케일 큰 협주곡을 연주하는 모습은, 내용은 접어놓더라도 그 자체로 멋진 그림이 된다. 러시아의 열광적 청중 가운데는 유독 여성이 많고 그 중에는 오페라그라스를 들고 연주자 모습을 감상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그들이 열광하는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연주 뒤 무대 위엔 꽃다발이 산처럼 쌓인다. 꽃을 든 여성들이 쏟아져 나와 연주자와 눈을 맞추려고 기를 쓰지만 좀처럼 기회가 닿지 않는다. 그들이 그토록 열광하는 이유는 ‘악마의 나라’에서 건너온 이 천사 같은 청년이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을, 러시아인들의 오랜 좌절과 슬픔, 그것을 딛고 꿈을 향해 도약하려는 처절한 과정을 자기네보다 더 절실한 감정을 실어 들려주었기 때문이다. 러시아 출신 로지나 레빈의 세심한 지도를 받아온 클라이번은 러시아인들의 감성과 상통하는 음악을 들려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20세기 최고 인기곡이라는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두 곡, 큰 명성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다지 큰 감흥을 못 느꼈다. 작곡가 자신의 2번 연주도, 호로비츠의 3번 연주도 만족감을 주지 않았다. 심하게 말하면 ‘지루한 러시아인들의 흐느낌’으로만 들렸다. 구조가 복잡한 3번은 더 그런 느낌을 준다. 현대인들이 열광하는 이 협주곡들에 쉽게 끌리지 못한 이유가 뭘까.



클라이번의 연주를 듣고 어렴풋이 깨달았다. 그의 연주는 솔직하고 담백하다. 섬세한 면을 십분 살리면서도 발성이 투명하다. 3번 첫 악장의 카덴차를 쉽고 간명한 버전으로 바꾼 것도 곡의 분위기를 살리는 데 도움이 되었다. 나는 3번 2악장 아다지오와 빠르고 힘찬 연주로 진행된 피날레에서 몇 차례나 전율을 느꼈다.



클라이번은 ‘미국의 영웅’보다 ‘러시아의 연인’이란 호칭이 더욱 걸맞는 것 같다. 콩쿠르에서 라흐마니노프를 연주하던 그 시간이 생애의 가장 빛나는 순간 아닐까. 2008년 한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이 20년간 그 순간에 머물렀던 것 같다고 고백했다. 한 순간에 다가온 너무나 큰 영광이 도리어 불행으로 작용한 것이다.



그는 러시아라는 무대에 갇혀버렸다. 1978년 이후 사실상 은둔생활로 들어갔고 연주자의 존재감을 잃었다. ●



 



 



글 송영 작가 mdwr315@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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