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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보다는 고통에 가까워. 사랑, 인간을 고독하게 하다

K는 애인과 헤어진 어느 날, 구글에서 폭탄 제조법에 관한 자료들을 찾아 읽었다. 실종되듯 사라진 그로부터 연락이 끊긴 지 6개월이 지난 후였다. K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하지만 곤란한 문제가 하나 있었다. 그의 집에는 고양이가 있었다. 집에서 고양이를 빼내올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아마도 그는 자물쇠를 바꾸지 않았을 것이다. 그 남자의 전 애인이 그의 집에 찾아와 난동을 부렸을 때조차, 그는 자신의 집 자물쇠를 바꾸지 않았다. 그 집의 자물쇠는 바뀌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고양이, 인간의 나이로 치면 백살 가까이 됐다고 하지 않았어? 그럼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거잖아.”



백영옥의 심야극장 -25- 아니 에르노의 소설 『단순한 열정』

내가 K에게 물었다.



“맞아. 어쩌면 죽었을지도 몰라. 무척 아팠거든. 하지만 아무 죄 없는 고양이까지 그런 일을 당하게 할 수는 없잖아?”



사제 폭탄이라도 구해 헤어진 연인을 단죄하겠다는 결의에 찬 K와 죽을 날이 가까운 늙은 고양이만은 반드시 구출해야겠다는 K는 같은 사람이다. 이것은 사랑의 가장 비이성적 풍경이다. 그와 꿈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그녀의 기억 속에 연애는 최악이었다.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인간의 기억은 무척 비합리적이어서, 특정 시간에 겪은 고통의 평균값을 내는 방법이 모순적이다. 가장 좋았던 정점의 기억과 가장 나중의 종점의 기억이 유독 강하게 남는 것이다.



“끝이 좋으면 모든 게 좋다”의 의미이것이 바로 대니얼 카너먼 교수팀이 밝혀낸 ‘정점과 종점 규칙(Peak-End Rule)’이다. 가장 아팠던 순간과 마지막 순간에 느낀 통증의 척도를 평균 낸 것이다. 이런 현상은 경험하는 자아와 기억하는 자아가 다르기 때문에 생긴다. 자신이 응원하던 팀이 내내 이기다가 9회 말 역전 홈런을 당했을 때, 90퍼센트 즐거움을 느꼈던 경험하는 자아는 마지막 고통을 느꼈던 10퍼센트의 기억하는 자아에 굴복하고 만다. 끝이 나쁘면 모든 게 나쁘다! 이 말은 정확히 ‘끝이 좋으면 모든 게 좋다’는 말로 변환될 수 있다. K의 애인은 말없이 사라졌고, 영원히 마침표가 찍히지 않을 책처럼 그녀를 괴롭혔다. 그 비이성적 감정에서 벗어나는 데 2년 가까운 시간이 흘러야 했다.



“어느 날 밤, 에이즈 검사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이 내게 그거라도 남겨놓았는지 모르잖아.”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에서 이 문장을 발견했을 때, 나는 이 책을 다시 한 번 더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한 여자가 아내가 있는 한 남자와 사랑에 빠진다. 여자는 그를 기다린다. 이 소설의 줄거리는 이것이 전부다. 금기는 그들의 사랑에 향신료가 되어 침대 위를 만찬의 식탁으로 바꾼다. 그들은 살을 섞고, 서로가 서로의 맛있는 음식이 되어 준다. 강한 에로스가 파토스로 치닫고, 강한 불꽃이 그녀의 몸을 불태운다. 그녀의 열정은 ‘고통’ 내지 ‘수난’이라는 말로 치환 가능한 무엇이 된다.



“그 사람의 전화만 기다리며 고통을 겪는 일이 너무 끔찍해서 그와 헤어지기를 원했던 적이 수도 없이 많았다. 그럴 때면 나는 그 사람과 헤어지는 순간을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으며 사는 나날들이 되풀이되겠지. 나는 결국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 사람에게 다른 여자, 아니 여러 여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의 곁에 있는 여자가 한 명일 경우 내 고통은 더 커질 것이다) 그 사람과의 만남을 계속하기로 했다.



모든 것이 사라질 것을 예감하면서도, 지금이 오히려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특권일 수도 있는 질투 때문에 미칠 듯이 그 사람과 끝내버리기를 원하는 현재의 상황이, 그런 날이 온다면 그것은 내 의지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람이 나를 떠나는 바로 그날일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아니라 바로 그 사람이.”



삶의 형식이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으로 뒤바뀌어버린 사람에게 시간은 어떤 것일까. 그때부터 시간은 이전의 방식대로 흐르지 않는다. 시간은 냄새와 무게, 모서리와 온도를 갖고 고이거나 썩기 시작한다. 시간은 한때 낭만적인 사랑에 빠지게 만들었던 남자를 한심한 아저씨로 바꿔버릴 만큼 굳건하다. 그토록 단단한 시간이라는 벽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은 별안간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렸을 때다. 그때 시간은 과거의 내가 알고 있던 것과 전혀 다른 것이 되어버린다. 그것은 변덕스런 애인처럼 차갑다가 뜨거워지고, 빨라졌다 느려진다. 블랙홀에 빠진 듯 사라지고, 사람을 순식간에 늙게 한다.



만약 숨 쉬는 방법을 의식적으로 계속 기억해야 한다면, 인간은 절대 제정신으로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만약 시간이 그런 방식으로 변형된다면 어떻게 살 수 있을까. 이런 순간에 내던져진 사람이야말로 비로소 행복의 정의를 새롭게 말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행복은 평온한 순간의 지속이 아니라, 다만 행운이 멈추기 전 상태일 뿐이라고. 이때의 시간은 자신을 늙게 하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



“이젠 사랑의 열정을 느끼는 것 자체가 사치”나는 애인과 헤어진 후, 자신의 하루가 24시간이 아니라 8만6400초에 가까워졌다고 말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고통의 정점에서 고산을 등반하는 산악인들의 생존법을 기억해냈다. 산악인들은 높은 산을 오를 때, 당장 자기 발걸음 앞의 길과 자기 호흡이 머무는 지점까지만 바라본다. 그것이 산악의 가장 중요한 원칙이다. 생각이 미리 산꼭대기나 강 저편 로지(lodge)에까지 머물면, 지금의 고통은 참기 힘든 것으로 걷기도 전에 발끝이 얼어버리기 때문이다. 당장 내 눈 앞의 한걸음 그것이 세계의 전부다. 그것 이외의 세상은 잊어야 한다. 낯선 외국어를 배우는 사람처럼 마음의 고통을 응시한 채 시간을 견디는 법을 익히는 동안, 결국 고통은 조금씩 사그라든다. 그가 지금 이를 악물고 해내려는 일은 자신의 연애를 한 권의 소설처럼 종결짓고자 하는 것이다.



“어렸을 때 내게 사치라는 것은 모피 코트나 긴 드레스, 혹은 바닷가에 있는 저택 따위를 의미했다. 조금 자라서는 지성적인 삶을 사는 게 사치라고 믿었다.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한 남자, 혹은 한 여자에게 사랑의 열정을 느끼며 사는 것이 바로 사치가 아닐까.”



사랑마저 자기계발화되는 세계에선 자신의 시간과 존재를 한 사람에게 투신할 수 있는 행위야말로 가장 큰 사치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단순히 트라우마만을 남기는 시간 낭비인 걸까. 『단순한 열정』에서 여자는 결국 남자와 결별한다. 더 이상 그의 전화를 기다리거나, 그를 질투하지 않게 되었다고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에는 고통의 시간을 넘긴 사람 특유의 담담함이 있다. 누구와도 쉽게 나눌 수 없다는 점에서, 고통은 기쁨이나 행복과 다르다. 고통은 더 큰 고통 이외의 것으로 분쇄되지 않기 때문이다. 두통은 심각한 치통 때문에 잊혀지고, 이명의 고통은 어느 날 찾아온 좌골신경통의 낯선 통증으로 참을 만한 것으로 변질된다. 나는 고통이 기쁨으로 상쇄되는 감정이 아님을 이제 안다.



사랑이 인간을 고독하게 하는 건, 그것의 본질이 기쁨보다 고통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그것은 결국 인간의 끝이 죽음이라는 형식에서 조금도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과 맞닿아 있는 건 아닐까. 결국 우리를 성장시키는 건 찬란한 빛이 아니라 그 때문에 생긴 필연적인 그림자가 아닐까. 그토록 차가웠던 그림자가 어느 날 거대하고 시원한 그늘이 되어 우리의 영혼을 쉬게 하는 걸지도 모른다. ●



 



 



백영옥 ?광고쟁이, 서점직원, 기자를 거쳐 지금은 작가. 소설『스타일』『다이어트의 여왕』『아주 보통의 연애』 , 인터뷰집 『다른 남자』 ,산문집『마놀로 블라닉 신고 산책하기』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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