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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주·경영진 ‘도덕적 해이’ 방치 한 채 구조조정 할 수 있나

부실이 쌓인 기업과 산업에 대한 구조조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총선이라는 정치적 불확실성이 사라진 가운데 각각 원내 제1당이 된 더불어민주당과 캐스팅 보트를 쥐게 된 국민의당이 적극적인 협조 의사를 밝혔다. 한국 경제의 해묵은 과제가 모처럼 탄력을 받게 된 건 반가운 일이다.



정부는 지난달 26일 임종룡 금융위원장 주도로 3차 산업경쟁력 강화 및 구조조정 협의체 회의를 열고 조선과 해운 업종을 먼저 손보기로 했다. 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 등 ‘조선 빅3’와 한진해운·현대상선 등 양대 해운사에 보다 강도 높은 자구안 마련을 요구했다. 이 결과를 보고 인수합병(M&A)과 같은 2차 구조조정의 방향을 정하겠다고 한다. 해당 기업과 채권단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걸 보면 구조조정의 첫발은 잘 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사설

하지만 큰 복병이 남아 있다. 대주주와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다. 당장 해운업계에서부터 의심 사례가 불거졌다. 최은영 전 한진해운 회장은 두 딸과 함께 갖고 있던 한진해운 주식 97만 주(약 27억원어치)를 자율협약 발표 하루 전인 지난달 21일까지 모두 팔아치웠다. “상속세를 내기 위해 원래 예정했던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석연치 않다. 다음 날 한진해운 주가는 7.5% 급락했다. 가뜩이나 최 전 회장은 남편인 조수호 전 회장이 타계한 뒤 회사를 경영하며 무리한 확장으로 부실을 키웠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그런데도 한진해운이 1조1000억원의 적자에 허덕이던 2013~2014년 보수·퇴직금으로 97억원을 챙겼다. 한진해운에서 손을 뗀 뒤에는 외식업에 진출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활동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전 경영진들은 고의적인 분식회계라는 악성 불법행위를 저질렀다. 조선 빅3 가운데 유일하게 흑자를 내고 있다고 자랑해오던 회사가 지난해 7월 갑자기 부실덩어리로 전락했다. 수년간 감춰온 적자액이 5조5000억원에 달했다. 흑자라던 2013~2014년도 장부도 각각 7000억원이 넘는 대규모 적자로 수정됐다. 그런데도 이 기간 중 최고경영자(CEO)였던 고재호 전 사장은 1년에 많게는 9억원의 보수를 챙겼다. 전임 남상태 사장도 퇴임 뒤 2년간 고문 자격으로 사무실 임대료와 급여, 차량 운영비 등 5억원 이상을 지원받았다.



해운과 조선업이 어려워진 데는 경기 요인이 컸다는 점은 분명하다. 두 업종 모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8년째 이어진 불황으로 큰 타격을 받았다. 글로벌 해운 수요가 줄어들며 해운사 매출이 줄어든 데다 이전에 계약한 용선료는 높아 빚을 빚으로 갚는 악순환이 해마다 되풀이됐다. 조선업에서도 선박 수주가 급감하고 이미 주문한 선박 인도를 미루는 선주들이 속출했다. 이 때문에 조선 빅3는 지난해에만 8조5000억원의 손실을 기록했다.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의 부채도 각각 4조8000억원, 5조6000억원에 달한다.



하지만 부실이 커진 데는 경영진의 무능과 도덕적 해이가 작용했던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조선 빅3는 금융위기 뒤 선박 주문이 급감하자 앞다퉈 해양플랜트 사업에 나섰지만 기술 부족 등으로 건조 기간이 길어지면서 오히려 회사를 위기에 빠뜨리는 결정적인 원인이 됐다. 이들의 지난해 적자 중 7조원이 해양플랜트에서 비롯됐다. 해운사들도 자구노력을 소홀히 한 채 정부 지원만 재촉했다.



주식회사 시스템에서 대주주에게 무한 책임을 강요할 순 없다. 하지만 법적 책임 못지않게 도덕적 의무도 중요하다. 구조조정엔 엄청난 고통과 희생이 따른다. 노동자는 해직을 강요받고 국민의 혈세가 기업과 실직자를 돕는 데 들어가게 된다. 사태를 여기까지 오게 만든 데 대해 대주주가 열과 성을 다해 사죄하고 고통 분담을 호소해도 모자랄 판에 거꾸로 대주주가 막판 ‘먹튀’에 나서고 경영진은 ‘경영 판단’이라며 발뺌한다면 구조조정의 정당성을 찾을 길이 없게 된다. 이런 분위기에서 어떻게 노조에 희생과 양보를 요구하고 주가 급락으로 고통받는 소액주주를 설득할 수 있겠는가. 오히려 ‘회사를 살려봐야 대주주 좋은 일만 시킨다’는 냉소만 사회에 확산될 수 있다.



현재 최은영 전 회장과 대우조선 전 경영진에 대한 금융당국과 감사원의 조사와 감사가 진행되고 있다. 검찰도 수사에 착수했다. 반 기업 정서에 기댄 과잉 수사도 안 되지만 어물쩍 넘어가서는 더더욱 안 된다. 철저히 조사해 잘못이 드러나면 엄정하게 처벌해야 한다. 단물만 빨아먹고 손실은 사회에 떠넘겨도 된다는 선례와 인식을 남겨선 안 될 것이다. 그랬다간 구조조정이 아니라 우리 경제 전체가 위협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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