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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맛은 심심 담백하죠

경기도 이천 감은사 주지인 우관 스님(53)이 사찰음식 책 『보리일미』를 펴냈다. “몸과 정신의 균형을 깨는 자극적인 맛을 멀리하고, 자연과 교감하며 자연 그대로의 청정한 에너지를 맛볼 수 있는 생명의 맛을 알리고자 했다”는 게 스님의 설명이다. 봄비가 슬며시 내리던 4월 마지막 주에 이천 감은사를 찾았다. 스님이 텃밭을 가꾸며 사찰음식을 연구하는 곳이다. 봄비를 머금은 감은사 주변 지천에선 이름 모를 허브의 신비한 내음이 진동하고 있었다.



 

홑잎밥. 밥물이 끓어오를 때 봄에 돋는 화살나무의 새순인 ‘홑잎’을 넣고 지은 밥. 찬 없이 김치, 장아찌만으로 정갈하게 차려내는 가벼운 밥상이다.



사찰음식계의 '대장금' 우관 스님

‘보리(菩提)’란 산스크리트어로 ‘최상의 진리를 깨우친 지혜의 깨달음’이라는 뜻이다. 그리하여 보리일미(菩提一味)란 ‘깨달음의 한 맛’이다. 우관 스님은 “세상의 모든 물이 바다로 흘러들어가 한 맛이 되듯, 모든 맛을 아우르는 깨달음의 한 맛이야말로 사찰음식이 추구하는 최상의 맛”이라고 설명했다.

연삼정과. 바디나물이라고도 불리는 연삼은 나물을 무치면 그 맛과 향이 뛰어나다. 보통 뿌리는 약재로 사용하는데 스님은 잎과 줄기, 뿌리 그대로 모양을 살려 정과를 만든다.

산양삼 찹쌀화전. 산양삼의 잎과 뿌리를 모두 살려 화전을 부쳤다. 뿌리를 중심으로 잎이 양쪽으로 날개를 펼친 모습이 꽃을 찾아온 나비 같다.



모든 맛 아우르는 깨달음의 맛이 최상의 맛 선재, 대안, 정관, 정문 스님과 함께 한국 조계종 사찰음식전문위원이기도 한 우관 스님은 2009년 ‘대한민국 사찰음식 대향연’에 참가하면서 본격적으로 사찰음식과 연을 맺었다. 그 전에는 특별히 음식을 공부한 적이 없다고 했다. 그저 어려서부터 유난히 맛에 예민했을 뿐.



“어린 시절 우리 집은 손님을 많이 치르는 집이었어요. 늘 마당에선 음식을 만드는 손길이 분주했죠. 그 주위를 기웃거리며 음식 맛과 향을 저절로 배웠던 것 같아요. 게다가 나는 어려서부터 비린내 나는 생선과 고기를 못 먹었어요. 그러니 자연스럽게 생선과 고기가 아닌 재료로 만든 음식 맛에 더 유별났죠.”



24살에 출가해 봉녕사 승가대학에서 수학했던 시절, 학장이시던 묘엄 스님은 사찰에서 만드는 음식에 관한 한 늘 젊은 우관 스님을 먼저 찾았다. “사찰에서 만드는 가을 김장은 1년 동안 먹을 중요한 음식인데, 늘 2000~3000포기 김장 소의 마지막 간을 제게 물으셨죠. 묘엄 스님은 ‘이건 좀 짠데요, 이건 소금을 더 넣어야겠어요’라고 제가 의견을 말하면 그때서야 고개를 끄덕이셨죠.”



승가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서른넷 늦은 나이에 수행을 위해 인도 델리대 대학원에서 6년간 공부했다. 한국으로 돌아와 경기도 화성의 자재성사 양로원에서 할머니와 노스님들을 위해 안살림을 맡으며 2년을 보냈고, 다시 경북 영양의 연화사에서 수행하다 2007년 이천 감은사 주지 소임을 맡게 됐다.



2009년 제1회 ‘대한민국 사찰음식 대향연’을 준비하던 묘엄 스님이 우관 스님을 찾았다. 지금 준비된 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며 우관 스님의 참가를 강력히 추천했다.



“그게 행사 5일 전이었어요. 뭘 만들어야 할지 고민할 시간조차 없었죠. 하루는 텃밭과 산자락을 뒤져 진달래·민들레·질경이를 채취하고, 하루는 시장에 나가 장을 보고, 하루는 그릇을 준비하고 금·토에 행사를 치렀죠.”



그때 스스로 정한 주제가 사계절 밥과 죽이었다. 한 계절에 밥 세 가지와 죽 하나. 총 16가지 음식을 만들었다. 전시를 위해 만드는 사찰음식치고 밥과 죽은 지나치게 평범한 주제였다.



하지만 우관 스님의 생각은 정반대였다. “한국엔 밥과 관련된 속담이 참 많아요. 사찰에서도 밥과 죽은 스님들의 주식이자 영양식이죠. 더욱이 내가 있는 이천은 쌀의 고장이었으니까 밥과 죽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게 좋다고 생각했어요.” 이 생각은 적중했고, 이후 우관 스님은 사찰음식 계에서 주목받는 스타가 됐다.

제피얼갈이김치. 제피는 산초와 유사한 채소로 매콤한 맛과 톡 쏘는 향을 가졌다. 초여름 노지 얼갈이에 제피를 넣어 김치를 담그면 톡 쏘는 알싸한 맛이 일품이다.

시금치두부현미죽. 비타민과 무기질, 단백질의 영양 균형까지 챙긴 순한 죽이다. 두부를 치즈처럼 잘라 식감까지 살렸다. 집 간장으로 간하면 깊은 맛을 더할 수 있다.

토마토비빔면. 제철 토마토를 갈아 양념장에 섞고 면만 삶아내면 되는 간단한 레시피지만, 영양소는 고루 들어갔다. 양념장에는 매실 발효액과 참기름·집 간장·설탕·참깨가루·소금이 들어간다.

생강나무꽃부각. 생강나무꽃을 가지째 찹쌀풀을 발라 말린 후 부각을 만들면 맛과 향이 은은한 별미가 된다. 막대 사탕처럼 들고 가지에서 꽃만 발라 먹는 재미도 쏠쏠하다.



생강나무꽃부각 보니 군침이 절로 돌아 스님은 “요즘 사람들은 하나같이 음식의 모양과 맛에만 치중한다”며 “사찰음식만은 여기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에 『보리일미』를 썼다”고 했다. ‘어디서나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식재료지만 사용법을 몰라 버려졌던 식재료를 이용하고, 누구나 손쉽게 따라할 수 있는 조리법을 알리자’는 게 목표다.



“텃밭과 산에서 얻는 식재료들은 그것이 줄기든 잎이든 열매든 뿌리든, 나물도 국도 밥도 해 먹을 수 있죠. 김치와 장아찌를 담그고 떡과 차도 만들어 먹을 수 있습니다. 다만, 그것을 보는 눈이 없으니 무심히 지나치고 버리는 거죠. 인간은 결국 대자연 속 일부라는 것,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갖게 되면 식재료를 보는 눈도 열리게 됩니다.”



『보리일미』의 5장 ‘한 가지가 통하면 모든 것이 통한다’에는 도라지순 하나로 국·무침·장아찌·김치·강정 만드는 법이 적혀 있다. 돼지감자로 장아찌·깍두기·과자를 만들고 순잎차와 꽃차도 만든다. 우관 스님은 발효액을 만들고 난 매실을 그냥 버리기 아까워 음료를 만든다고 했다. 매일 쏟아지는 음식물 쓰레기로 몸살을 앓는 현대인이 새겨들을 가르침이다.



우리가 몰랐던 아름다운 식재료를 알게 되는 것도 『보리일미』를 읽는 즐거움이다. 노랑 방울이 탱글탱글 맺힌 생강나무꽃, 작은 부케처럼 소담스러운 머위꽃, 가을에 딱 한 번 누릴 수 있는 호사라는 방아꽃 부각들을 보면 절로 입안에 군침이 돈다. 죽과 밥과 국수로 구성된 2장에선 시금치두부현미죽·쑥흰콩죽·브로콜리죽·홑잎밥·산나물비빔국수·참가죽물국수·토마토비빔면 등이 시장기를 돋운다.



우관 스님은 “깨어 있는 마음으로 식재료를 다루고 마음을 담아 긍정의 에너지로 정성들여 음식을 만들면 그냥 음식이 아니라 약식(藥食)이 된다”고도 했다. 어른이신 묘엄 스님께서 편찮으실 때 소화에 이롭도록 기름 한 방울 넣지 않고 채소를 데친 물로 그 채소를 볶아 소량의 집 간장만으로 간을 맞춰 공양하는 마음이 책에서도 잘 드러난다. “요즘 먹방이다 쿡방이다 해서 새로운 음식문화가 유행이라죠. 그런데 모두 혀를 자극적인 맛에 중독시키는 일에만 치중하고 있는 것 같아요. 몸에 이로운 맛은 심심하고 담백해야 하는데, 사람들은 점점 더 자극적인 맛만 좇고 있죠. ‘자연과 음식을 먹는 사람의 매개자’로서 사찰음식의 정신과 이로움을 전달하는 일이 내게 주어진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



 



 



이천 글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사진 전호성 객원기자, 램프온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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