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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데꺼·왕초… 자본주의 첨병 뛴다

평양 시민들이 돼지고기 전문점인 흥성고기상점(사진 위)에서 돼지고기를 고르고 있다. 만수교고기상점의 진열대에는 다양한 가공식품들이 쌓여 있다. [조선의 오늘]



달리기(또는 되거리)장사꾼·왕데꺼·왕초….



[평양탐구생활 -3-]시장과 상인

북한 주민들 사이에 다양하게 불리는 장사꾼들을 칭하는 이름들이다. 이들이 바로 북한에 불고 있는 ‘자본주의 바람’의 첨병들이다. 달리기 장사꾼은 물건을 사서 다른 곳으로 넘겨 파는 사람이다. 지역을 오가며 가격 차이를 이용해 돈을 벌고 있다. 달리기 장사꾼은 불법적으로 공장에서 물건을 빼돌리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공장을 지키는 보위대에 빼돌린 양의 절반을 관행적으로 건넨다. 이를 북한말로 ‘직돈처리’라고 부른다.



왕데꺼는 달리기 장사꾼이 성장해서 된 상인이다. 달리기 장사꾼이 소매상이면 왕데꺼는 도매상이다. 왕데꺼는 국가기관에 수익금의 일부를 낼 정도로 돈을 버는 ‘돈주’다. ‘돈주’는 신흥 재벌들을 호칭하는 말로 한국말인 전주(錢主)의 북한식 표현이다. 왕데꺼들이 조금 더 성장하면 왕초가 된다. 왕초는 기업 형태를 갖추고 한 동네를 먹여 살릴 정도의 큰 기업주다. 왕데꺼가 국영기업과의 거래에 소극적인 반면 왕초는 국영기업 운영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한다. 예를 들어 시멘트 공장에 필요한 장비·부품·석탄 등을 구해주거나 공장 운영자금을 마련해 주는 대가로 시멘트를 대량으로 받아 이익을 챙긴다.



달리기 장사꾼·왕데꺼·왕초 등이 북한의 시장(장마당)을 움직이고 있다. 북한의 시장은 평양에 40여 개를 포함해 전국에 380여 개나 있다. 최근 들어 북한의 시장은 매대 장사에서 창고형 장사로 발전하고 있다. 장사 규모가 커지고 전문화되면서 큰 창고를 짓거나 생산을 멈춘 공장을 임대해 장사를 한다. 왕데꺼·왕초 등 돈주들은 작은 매대를 형식적으로 가지고 있거나, 매대 없이 시장 주변에서 직접 거래하고 자신의 창고에서 물건을 가져오는 방식으로 장사를 하기도 한다.





아파트 건물 하나가 통째로 창고홍민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물동량이 증가해 기존 매대만으론 한계가 생기기 시작했다”며 “대규모 거래가 조금씩 늘면서 창고형 장사 형태로 바뀌고 있다”고 진단했다. 평안남도 평성시에는 아파트 건물 하나를 통째로 창고로 사용하는 경우까지 등장했다고 한다. 돈주들이 아파트의 입사증(입주자격증)을 공동 구매해 기름저장 창고로 활용한다는 것이다. 돈주들은 정부로부터 입사증을 받은 주민들에게 돈을 주고 그것을 구입하면 집주인이 될 수 있다. 북한 주민들은 기름저장 창고로 활용되는 이 아파트를 ‘기름 아파트’라고 부른다고 한다. 홍 연구위원은 “시장에서 많은 이익과 기득권을 획득한 돈주들이 상호간의 네트워크를 통해 정치에도 참여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돈주들이 당국과 끊임없이 교섭과 흥정을 하며 정책을 유리한 방향으로 유도하고자 정치에 까지 나선다는 것이다.



이처럼 창고형 장사가 확산되는 데는 휴대전화가 1등 공신 역할을 하고 있다. 국가정보원은 지난해 10월 국회 정보위윈회에 북한의 휴대전화 보급대수를 370만대라고 보고했다. 전체 인구 2466만 명 가운데 15%를 차지하는 규모다. 매대에 직원이 나가 있지만 주요 단골 거래처와는 돈주들이 휴대전화로 직접 연락을 주고 받아 창고에서 직접 물건을 보내거나 차에 실어 판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휴대전화를 통해 달러 환율과 시장가격 등을 실시간으로 파악하는가 하면, 심지어 시장 단속 정보도 휴대전화로 교환하고 있다. 돈주들은 이런 빠른 정보 유통의 장점을 이용해 많은 부를 축적하고 있다. 홍 연구위원은 “휴대전화가 장사의 대형화·신속화·기동화를 촉진시키고 있다”고 분석했다.



 

식당 직원들이 아침에 배달된 콩우유(두유)를 트럭에서 내리고 있다. 북한에도 최근 유통업이 성장하면서 우유는 물론 야채·빵·고기 등을 집까지 직접 배달해주는 서비스가 등장했다. [조선의 오늘]



북한 최대의 시장으로 떠오른 평성북한에서 시장이 가장 활성화된 곳은 평양이 아니다. 평양에서 북쪽으로 30km 떨어진 평성이 북한 최대의 시장이다. 1일 유동인구만 5만~10만명에 달한다. 평양의 대표적인 시장인 통일거리시장(1만~2만명)의 5배에 해당하는 규모다. 평성이 그렇게 된 이유는 평양이 ‘수령 호위 도시’로 출입을 제한했기 때문이다. 북한 전역뿐 아니라 중국에서 들여온 상품이 평양으로 들어가려면 엄격하고 까다로운 평양 초소를 통과해야 한다. 때문에 장사꾼들은 평양 인근에 상품을 현금으로 교환하기 편리한 장소가 필요했던 것이다. 이런 요구에 안성맞춤인 곳이 평성이었고, 이곳에서 평양의 필요한 주요 상품과 돈의 유통 대행이 이뤄지고 있다.



이에 따라 전국 각지에서 돈주들이 평성으로 몰리고 있다. 이곳에서 구입한 물건을 자신들의 도시로 가져가 시세 차익을 챙긴다. 그리고 자신들의 물건들을 가져와 평성의 시장에 내다 팔기도 한다. 평성에는 옥전시장·역전시장 등 8개의 시장이 있다. 평성대동강피복공장에서 탈북한 한철민씨는 “평성의 대표적인 도매시장인 옥전시장에 가면 없는 것이 없을 정도로 많은 상품들이 있다”며 “품목도 다양하지만 질적으로도 다른 지역보다 우수하다”고 밝혔다. 돈주들은 대량의 상품을 팔 수 있는 큰 시장이 들어선 평성에서 자신이 필요한 물건을 싼 가격으로 살 수 있기 때문에 이곳을 선호한다.



평성에는 이들 시장 이외에 노점상들이 모여 있는 ‘골목장’도 있다. 이곳에서는 담배·기계부속품·일반 공업용품 등을 주로 판다. 하지만 북한 당국이 최근 시장을 확대하면서 골목장을 줄이는 정책을 추진하자 된서리를 맞았다. 그 과정에서 골목장을 없애려는 인민보안원(경찰)과 이를 막는 노점상들 간의 집단 난투극이 심심찮게 발생했다는 후문이다.



임을출 경남대 교수는 “이미 시장경제에 익숙한 노점상들이 당국의 통제에 저항하는 것은 시장이 더욱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증”이라고 평가했다.



 



실세 기관, 자체 무역회사서 명품 수입북한의 간부들이 몰려 있는 평양에는 평성에서 엄선된 상품이 들어온다. 해외 명품의 경우가 더 그렇다. 해외 명품은 북한의 무역회사들이 중국의 대방(무역업자)과 거래해 수입한 뒤 평성의 지사(판매소)를 거쳐 들어온다. 대부분의 무역회사는 노동당·내각·인민군·인민보안부(한국의 경찰청)·국가안전보위부 등에서 운영한다. 이들 권력기관은 무역회사를 통해 자금과 인원을 끌어들이고 독점권을 이용해 장사를 해 수익을 올리고 있다.



무역회사는 평양에 총국(또는 총회사)를 두고 각 도소재지에 지사를 두고 있다. 해외 명품들은 지사에 도착해 품질에 따라 백화점·도매시장·장마당 등으로 나눠진다. 전국의 돈주들은 평성에서 해외 명품을 도매한다. 그리고 전국 각 시장의 왕데꺼에게 넘겨지고 왕데꺼는 다시 달리기 장사꾼에게 건네면서 해외 명품이 유통된다. 무역회사가 커지면 물건이 많이 유입되고 거래가 많아지면 전국의 시장이 활성화되는 것이다.



최근 유엔 안보리 등 국제사회의 제재로 중국 대방들과의 거래가 까다로워지면서 중국에서 수입하는 상품들의 가격이 오를 조짐이다. 자유아시아방송(RFA)는 지난달 25일 대북 소식통을 인용해 “함경북도 청진지 수남시장에서 중국산 쌀 1kg이 3위안80전에 거래되고 있는데 열흘 전의 3위안 20전에서 60전 가량이 올랐다”고 보도했다.



임 교수는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일시적으로 북한 경제에 영향을 줄 지 몰라도 시장의 확대 추세를 거스를 수 없다”며 “북한 내 민간 자본의 수준이 소규모를 넘어 권력과 유착 고리를 확대하면서 자본 축적의 규모를 늘리고 있다”고 말했다.



 



고수석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ko.soos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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