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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 쇼크, 긍정적 에너지로 활용하자

구글이 개발한 인공지능(AI) 프로그램 알파고가 프로기사 이세돌 9단과의 세 차례 대국에서 모두 승리했다. 아직은 인간을 넘어서기 어려울 것이라던 예상과 정반대 결과다. 1국이 끝난 뒤에도 남아 있던 알파고의 실력에 대한 물음표는 2, 3국을 거치며 완전히 사라졌다.



이번 대결에서 알파고는 탁월한 형세 판단과 계산 능력을 보여줬다. 유리하다 싶으면 안전운행을 하고, 불리하다 싶으면 승부수를 던졌다. 이곳저곳 응수타진을 날리고, 아예 상대방의 공격에 응수하지 않는 ‘손빼기’도 마다하지 않았다. 프로기사들이 “사람처럼 둔다”고 감탄했던 이유다. 때론 사람을 넘어서는 모습도 보였다. 1국은 이창호처럼 두텁게, 2국은 이세돌처럼 공격적으로 두며 기풍을 바꿨다. 프로기사들이 깜짝 놀란 신수도 여럿 내놓았다. 실수처럼 보이던 수는 나중을 위한 복선인 경우가 많았다. 사람이 가늠할 수 없는 두터움까지 알파고는 계산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바둑의 신이 등장했다”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지경이다.



사설

바둑은 인간이 만든 게임 중 가장 복잡하다. 경우의 수가 우주의 원자 수보다 훨씬 많은 10의 170~260승 개다. 게다가 인간의 고유 영역이라고 여겨졌던 인지·판단·추론이 강하게 작용한다. 정보기술(IT) 전문가들조차 “앞으로 100년은 컴퓨터가 정복하지 못할 것”이라 전망해왔다. 하지만 알파고가 승리하며 이 확신을 깨트렸다. 알파고 쇼크가 바둑계를 넘어 전 사회로 확산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AI의 발전속도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다. IBM이 개발한 ‘딥블루’는 1997년 인간 세계 챔피언을 꺾고 AI의 잠재력을 보여줬다. 같은 회사의 ‘왓슨’은 2011년 미국의 인기 프로그램에서 인간 달인들을 모두 꺾고 ‘퀴즈의 제왕’이 됐다. AI가 체스와 퀴즈를 정복하는 데 각각 30년, 7년이 걸렸다. 알파고 역시 지난해 10월만 해도 ‘프로기사 저단자 수준’으로 평가됐지만 불과 넉 달 새 세계 최고수 중 한 명을 완파했다. 더구나 이런 발전은 체스나 바둑 같은 게임의 영역에 머물러 있지 않다. 무인자동차와 원격진료·금융투자 같은 분야에서도 AI의 존재감이 급속히 커지고 있다.



2014년 『초지능』을 쓴 영국 옥스퍼드대 철학교수 닉 보스트롬은 “다음 세기엔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기계가 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바둑처럼 한정된 분야가 아니라 보편적으로 인간의 인지·판단 능력을 능가하는 일반지능이 급속히 발전할 것이란 얘기다. 이는 인간에게 다층적이고 다면적인 숙제를 안긴다. 인간다움에 대한 철학적 질문, 인간과 기계의 관계, AI에 맡길 영역의 폭과 깊이에 대한 논란이 커질 것이다. 일자리와 교육·정치·사회구조에 미칠 영향도 작지 않다.



과잉 반응과 확대 해석, 비관과 낙관이 교차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영화 ‘터미네이터’처럼 인간이 기계에 지배당할 것이라는 비관론, 이세돌이 아니라 중국 최강자인 커제도 알파고에 질 것이라는 기계 만능론, 네트워크로 무장한 AI와 한 사람의 대국이 애초부터 불공정 게임이었다는 현실 부정론까지 나온다. 섣부르고 비이성적인 주장이 많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AI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새로워지고 관심이 커졌다는 점이다. 이런 면에서 알파고 쇼크가 꼭 부정적인 건 아니다.



‘IT 강국’이란 명성엔 어울리지 않는 우리 AI 기술의 현실도 드러났다. 최근 열린 바르셀로나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와 라스베이거스 가전박람회(CES)의 주역은 AI의 한 분야인 가상현실(VR) 기술이었다. 구글과 IBM·MS·애플·페이스북 같은 세계적인 기업들은 이미 빅데이터와 결합한 AI 기술을 의료와 스포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금융 분야에서 활용하고 있다. 한국의 관련 기술은 미국에 2년 반 뒤지고, 일본·영국·독일과 중국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기초 연구 분야의 독자적 연구성과나 상용화 양면에서 선진국과의 격차가 작지 않다. 당장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정부와 기업 모두 별 관심을 두지 않은 탓이다.



알파고 쇼크를 이런 상황을 바꿀 수 있는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이러려면 AI에 대한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여기엔 AI의 영역 확대에 맞춰 산업 분야뿐 아니라 경제와 사회 전반을 아우르는 종합적인 전망이 녹아 있어야 한다. 현실적이고 달성가능한 중장기 목표를 세워 관련 제도와 규제를 정비하고 연구개발(R&D)과 투자를 촉진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일자리 증발에 대한 우려를 해소할 정부와 기업의 고민도 병행돼야 한다. 이세돌 9단의 외로운 분투는 이번 주 끝나지만 AI를 둘러싼 우리의 고민은 이제 시작이다. 인간을 이긴 AI를 만든 것도 아직은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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