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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ll Ringer 인문산책] 한반도 최초의 ‘세계인’ 8세기 중앙아를 기록하다



놀랍게도 지금으로부터 1300년 전, 한반도 출신들도 인도를 여행했다. 그중 여행기까지 남긴 이가 있는데 바로 혜초(慧超, 704~787)다. 그의 『왕오천축국전(慧超往五天竺國傳)』은 법현과 현장, 의정의 여행기와 함께 동양의 4대 여행기로 꼽힌다. 한반도와 인도의 관계는 불교를 통해 시작됐다. 인도의 마라난타는 384년 백제에 불교를 전했고, 인도 승려로 보이는 묵호자도 고구려를 거쳐 신라에 불교를 전했다.372년 처음 불교가 고구려에 전래된 이후 한반도 출신 인도 구법승은 현재까지 약 14명 정도 알려져 있다. 이들은 불교의 주요 성지들을 순례하고 유학하는 것을 목표로 했지만 인도뿐 아니라 스리랑카와 네팔·티베트·중앙아시아 등지의 여러 나라를 두루 여행했다. 어떤 구법승은 여행 중 죽었다 하며 어떤 승려는 인도가 좋아 아예 인도에 머물러 살았다. 예를 들어, 오진 스님의 경우 789년에 출발해 인도에서 경전을 가지고 돌아오다 경유지인 티베트에서 죽었다. 백제의 겸익과 신라 원표 등의 인도 구법여행이 전해지지만 자세한 행적은 남아 있지 않다.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이 현재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유일한 기록이다. 그것도 1908년 프랑스의 펠리오에 의해 중국 둔황굴에서 발견됐고, 7년 후 일본 학자에 의해 신라인이 쓴 것으로 밝혀졌다.


혜초의 구법여행혜초는 법현·의정과 마찬가지로 광저우(廣州)에서 출발한다. 수마트라를 거쳐 723년 인도에 도착한다. 스리랑카를 포함해 약 4년에 걸친 구법여행을 마친 후 서북인도 파미르고원을 넘어 727년께 중앙아시아 여러 나라를 경유해 중국에 도착한다. 혜초 구법여행의 목적은 그의 여행기를 통해 볼 때 붓다의 성도지인 보드가야 등의 성지순례였던 것으로 짐작된다.혜초의 여행기는 법현과 현장 등의 여행기에 비하면 간략하지만, 8세기의 인도 불교 상황과 중앙아시아 세계에 대한 정보를 압축적으로 제공한다. 당시 인도아대륙과 중앙아시아 각국의 풍습과 문화, 정치·경제 상황이 잘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인도 불교에 관해서는 대승과 소승의 지역별 분포 상황이 기술돼 있다. 그의 기록에 따르면 당시는 북인도나 중인도보다 남인도 등지의 불교가 훨씬 활발했던 것으로 보인다. 서북인도에서는 아랍 이슬람의 침입으로 불교가 차츰 잠식당하는 상황이었다. 중앙아시아에서는 대승과 소승이 함께 행해지다 대승화 과정에 들어서고 있었다.?왕오천축국전?의 오천축(五天竺)은 인도아대륙을 다섯 구획으로 구분한 것으로, 북인도·중인도·서인도·중인도 그리고 남인도를 말한다. 앞부분이 떨어져나간 ?왕오천축국전?은 맨발의 나체 수행자를 언급하면서 시작된다. 붓다가 입멸한 쿠시나가라는 황폐해져서 더 이상 사람이 살지 않고 불탑을 중심으로 불교도들만 활동하는 것으로 기록돼 있다. 혜초는 붓다가 처음 설법한 바라나시 아소카의 사자 석주상을 언급하기도 한다. 그가 본 사자상은 현재 인도의 국장이며 사르나트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혜초는 마침내 불교 최대 성지인 보드가야에 이르러 대탑을 보며 감격해서는 “소원이 이루어질 줄이야! 오늘 아침 내 눈으로 보고 말았네”라는 오언시의 마지막 구절로 그 기쁨을 표현했다.이후 혜초의 인도 이해는 다음과 같이 압축적으로 나타난다. “다섯 인도는 의복·언어·풍속·법률 등이 서로 비슷하다. 다만 남인도 시골 백성의 언어가 조금 다르며 벼슬아치의 언어는 중인도와 다르지 않다. 이러한 다섯 인도의 법에는 목에 칼을 씌우고 매를 때리는 형벌과 감옥이 없다. 죄를 지은 사람은 그 경중에 따라 벌금을 물리되 사형에 처하지는 않는다. 위로 국왕부터 아래로 서민에 이르기까지 매를 날리며 개를 풀어 사냥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동아시아와의 비교적 관점에서 인상적으로 느낀 점을 서술한 대목일 것이다. 동아시아와 달리 백성이 나라의 부역에 동원되지 않고 세금도 내지 않는 대신, 곡물의 일정 수확량을 관리들이 운반해 가는 인도의 조세체계도 소개돼 있다. 왕과 수령들이 불교를 지극히 공경해 왕이더라도 스승인 승려를 만나면 승려보다 낮은 땅바닥에 앉는다며, 왕권 중심의 동아시아인 입장에서 이를 매우 놀라운 일처럼 기록하고 있다.나아가 인도 어디에서도 가축을 기르지 않고 살생을 좋아하지 않아 시장통에서 고기 파는 가게 하나 보지 못했다는 기록도 있다. 사람들이 대체로 술을 마시지 않고 설령 술을 마셨더라도 취한 사람들이 서로 싸우거나 노래하고 춤추는 모습을 찾아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당시 인도인들이 얼마나 종교적인 삶을 살고 있었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 할 수 있다.

혜초의 업적과 위상혜초는 이렇게 다섯 인도의 순례 이후 네팔 등 인도아대륙의 북부에 이른다. 혜초는 이 지역 몇몇 나라가 티베트의 지배하에 있으며 불교 승려도 절도 많지만, 정작 티베트 본토에는 아직 불교가 제대로 행해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전한다. 또한 터키 계통 중앙아시아 여러 나라들이 대체로 불교를 깊이 받아들인 반면, 이란계 나라들은 불교를 믿지 않고 살생을 좋아하며 하늘을 섬기고 있다고 썼다. 이어 파미르 고원에 이르러서는 눈과 얼음에 땅이 갈라지도록 매서운 찬바람의 고초에 못 이겨 “평생 눈물 흘리는 일이 없었지만 이 지경에 이르러 천 줄의 눈물을 뿌렸다”라고 고백하기도 한다. 드디어 혜초는 당시 중국 군대가 주둔하는 쿠차와 코탄 등의 중앙아시아 나라들에 이른다. 이 지역에는 절도 많고 승려도 많으며 소승과 대승이 함께 행해지고 있다고 한다. 혜초는 둔황을 거쳐 장안(현 西安)에 도착하는 것으로 구법여행을 마친다. 이를 기념해 2001년 시안에 혜초의 기념비가 세워졌다.세계사에서 혜초의 여행기는 8세기께 중앙아시아 지역의 유일한 기록이라는 점에서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한국사에서도 혜초는 한반도 출신으로 가장 오래된 여행기를 남긴 인물이며, 그의 여행기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책으로 알려져 있다. 구법여행을 통해 혜초는 동아시아를 넘어선 한반도 최초의 세계인이 됐다. 그는 이슬람 세계를 최초로 경험한 한반도인이며 인도에서 돌아온 후에는 남인도 출신의 금강지(Vajrabodhi, 669~741)와 스리랑카 출신의 불공(Amoghavajra, 705~774)에게 사사하며 경전 번역도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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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