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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 Culture] “한밤중 종소리가 나그네 뱃전에 들려오네 … ” 천년 넘게 회자되는 풍교야박(楓橋夜泊)

한산사 근방에 위치한 풍교.


 


 


한국 사람이 가장 많이 찾는 중국의 관광지가 항저우와 쑤저우다. 그중 쑤저우에 가면 반드시 가는 곳이 한산사(寒山寺)다. 한산사는 6세기 초에 건립된 사원으로 원래 이름은 보명선원(普明禪院)이었는데, 당나라 때 고승(高僧) 한산(寒山)이 머무른 후로 유명해져서 한산사로 불리게 됐다. 그러나 이 절을 더욱 유명하게 만든 것은 다음과 같은 시 한 편이다.


달 지고 까마귀 울고 하늘엔 서리 가득한데(月落烏啼霜滿天)강가의 단풍, 고깃배 등불 바라보며 수심에 잠 못 이루네(江楓漁火對愁眠)고소성 밖 한산사의(姑蘇城外寒山寺)한밤중 종소리가 나그네 뱃전에 들려오네(夜半鐘聲到客船)


당나라 때 시인 장계가 쓴 「풍교야박(楓橋夜泊)」이란 시인데 ‘풍교’는 한산사 근처에 있는 다리이다. 무엇 때문에 이 시가 그토록 유명해진 것일까.시인이 배를 타고 여행하던 도중 날이 저물어 우연히 풍교에 정박했는데, 주위 풍경에 강렬한 인상을 받아 이 시를 쓴 것으로 보인다. 때는 가을밤. 1구와 2구에는 가을밤 배 안에서 바라본 다섯 가지 풍경이 묘사돼 있다. 달이 지고 까마귀가 울고 서리가 내리고 강가엔 단풍나무가 서 있고 고깃배의 등불이 깜박이는 광경이 그것이다. 깊은 가을밤의 풍경이 잘 그려져 있다. 이 중 서리에 대한 묘사가 독특하다. 시인이 본 것은 땅 위에 하얗게 내린 서리일 것이다. 그런데도 “서리가 하늘에 가득하다”고 했다. 이는 서리가 내려 피부에 와 닿는 싸늘한 기운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1구는 시각과 청각과 촉각을 통해, 즉 온몸으로 느끼는 가을밤의 정취를 표현한 것이다. 가을밤, 낯선 땅에서 홀로 배 안에서 잠을 청하는 시인에게는 이런 풍경이 고독감과 수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더구나 배를 타고 표박하는 자신의 처지가 어선의 어부들에게 겹쳐져 더욱 짙은 우수에 잠기게 했을 것이다. 그래서 고깃배의 등불을 바라보며 수심에 잠겨 잠을 못 이룬다고 한 것이다.그러나 이날 밤 시인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한산사의 종소리다. 1, 2구에서 다섯 가지 풍경을 제시한 반면 3, 4구에서는 종소리 하나만 묘사한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고요한 밤에 울려 퍼지는 은은한 종소리가 그에게 야릇한 감회를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밤에는 사람의 청각이 가장 예민해지기 마련이다. 게다가 그 종소리는 한산사에서 울려오는 종소리다. 밤의 적막을 깨뜨리고 들려오는 종소리는, 한산사라는 사찰과 한산 스님이 환기시켜주는 일종의 종교적 신비감마저 느끼게 한다. 이 종소리로 인해 풍교에서 시인이 받은 인상이 특별한 것이 된다. 아마 종소리 묘사가 없었다면 이 시의 맛이 반감됐을 것이다.?시 한 편으로 유명해진 장계(張繼)이 시의 작자 장계는 무명 시인이었다. 생몰연대(生沒年代)도 정확히 모르고 그의 행적에 대해서도 별반 알려진 것이 없다. 5만여 수의 시를 수록한 『전당시(全唐詩)』에 그의 시가 30여 수 수록돼 있는데 다른 시들은 볼 만한 것이 없고 오직 이 시 한 편으로 후세에 이름을 남겼다. 아마 이 시를 쓰지 않았더라면 그는 잊혀진 시인이 됐을 것이다.「풍교야박」이 유명해진 것은 일차적으로 시 자체의 예술적 완성도 때문이겠지만, 이 시를 둘러싸고 일어난 후대의 논쟁과 여러 가지 일화들 때문에 더욱 유명해졌다. 송나라 구양수(歐陽修)는 그의 저서 『육일시화(六一詩話)』에서 이 시를 매우 강하게 비판했다. 즉 한밤중에 절에서 종을 칠 리가 없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시인들이 아름다운 시구(詩句) 만들기에만 급급해 실제에 부합하지 않는 시를 짓는다는 것이 그의 논지다. 그래서 이 시에 ‘어병(語病)’이 있다고 한 것이다. 이후 이 시에 대해 수많은 논란이 있었다. 그중에는 “한밤중 종소리가 나그네 뱃전에 들려오네”라는 구절과 “달 지고 까마귀 울고 하늘엔 서리 가득”이라는 구절을 들어서 ‘밤에 우는 까마귀도 있느냐?’ ‘새벽에 지지 않고 한밤중에 지는 달도 있느냐?’는 등의 논란이 수없이 있어 왔다. 이에 대한 반론도 있었다. 어떤 사람은 쑤저우의 어느 절에서 밤중에 종을 쳤다는 사실을 고증하기도 했고, 밤에 우는 까마귀와 밤중에 지는 달도 사실임을 입증하기도 했다. 이렇게 거듭된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 시는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으며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어떻게 보면 거듭된 논란 때문에 더욱 유명해졌는지도 모른다.


황제의 무덤에 순장(殉葬)된 시비(詩碑)「풍교야박」을 더욱 유명하게 만든 또 하나의 일화가 있다. 당나라 무종(武宗)이 이 시를 무척 좋아해 죽기 1개월 전 당대 제일의 석공을 시켜 돌에 새기게 했다고 한다. 그리고 말하기를 “이 시비(詩碑)는 저세상에 가져가서 내가 감상할 것이니 후대에 이 시를 다시 돌에 새기는 자가 있으면 천벌을 받으리라”고 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풍교야박」 시비를 무종의 능에 순장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가 사실인지 아닌지 알 수 없지만 ‘천벌을 받으리라’는 무종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송나라 왕규(王珪)가 이 시를 돌에 새겼고 명나라 문징명(文徵明)도 시비를 만들었지만 두 사람은 ‘천벌’을 받지는 않았다.문징명의 시비가 마모되어 그 후 청나라 유월(兪?)의 글씨로 다시 만든 비석이 지금까지 전한다. 공교롭게도 유월은 시비를 만든 그해 12월에 죽었다. 그뿐 아니라 1900년대 들어 전영초(錢榮初)라는 사람이 이 시를 석각(石刻)한 직후에 급사했고, 「풍교야박」의 작자와 같은 이름의 현대 시인 장계가 이 시를 돌에 새긴 이튿날 죽었다고 한다. 과연 천벌을 받은 것일까?일본 사람들이 이 시를 특히 좋아해 한때는 일본의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렸고, 지금 한산사에 있는 범종(梵鐘)도 1906년에 일본의 한 인사가 기증한 것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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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