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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케 열풍과 막걸리 반짝 인기 … 차이는 국가 매력

한 외국인 관광객이 일본 도쿄 메이지신궁에 전시된 대형 사케통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케 세계화에 나선 일본 정부는 라벨을 스캔하면 성분과 제조방식, 양조장의 역사 등을 알려주는 사케 앱을 선보일 예정이다. [사진 블룸버그]



“이제 제주도는 그만 갈려고요.” 절친한 지인의 말에 깜짝 놀랐다. 1년에 적어도 세 번,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혹은 혼자서도 제주도를 찾는 제주도 매니어였기 때문이다. 지난 여행에서 대형 카페, 화장품 가게가 즐비하고 중국인 관광객으로 붐비는 명동과 별 다를 바 없는 모습을 보고 애정이 식은 듯했다. 여행에 대한 개인의 취향은 각양각색이지만, 제주도가 소중한 충성고객 한 명을 잃은 것은 분명하다.



기업이 새로운 고객 한 명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한 명의 기존 고객을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보다 적게는 5배, 많게는 25배 가량을 치러야 한다. 다양한 로열티 프로그램을 가동하며 고객 관계를 관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고객 이탈률은 기업의 건강 상태를 보여주는 주요 지표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기업의 장기적인 성장에 꼭 필요한 핵심고객의 이탈을 방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요즘 젊은층 사이에서는 해외 이주를 위해 매달 자금을 적립하고 정보를 공유하는 이민계(移民契)가 유행이다. 최근 중앙일보가 대학생 8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의 70% 이상이 ‘이민을 가고 싶다’고 답했다. 취업의 벽을 넘지 못한 20대부터 지나친 경쟁에 지친 고학력 엘리트, 자녀교육과 노후계획이 불안한 40대까지 사회의 심장이자 두뇌, 허리 역할을 하는 핵심고객의 이탈이 예고된다. 차마 떠나진 못하더라도 희망이 없고 스트레스가 극심한 지옥 같은 곳이라며 ‘헬(hell)조선’을 비난하는 청년들도 많다.



 



외국인들 “일본에선 대접받는 느낌”

자료: 영국 퓨처 브랜드



해외 고객에 대한 한국 마케팅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최대 고객인 중국인 관광객 수는 매년 늘고 있지만, 재방문율은 지속적으로 하락해 2014년에는 11.6%로 떨어졌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실시한 중국인 관광객 만족도 조사에서도 한국은 16개국 중 14위에 머물렀다. 불만을 넘어 악감정을 품고 떠나는 고객도 많다. 중국인 방문객의 37%가 한국인으로부터 무시를 당했고, 25%는 여행 후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나빠졌다고 말했다. 중국 관영 인터넷 매체 ‘중국망(中國網)’에는 “한국인은 우리를 무수한 쓰레기로 본다”는 기사가 게시되었고 “무시를 당하느니 한국엔 가지 않겠다”는 이야기도 떠돈다.



얼마 전 영국의 퓨처 브랜드가 발표한 2014-15 국가 브랜드 인덱스(Country Brand Index)는 한국 브랜드의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준다. 17개국 2530명의 오피니언 리더와 브랜드 전문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한국은 20위권에 턱걸이로 포함됐다. 정치적 자유, 삶의 질 등 살기 좋은 환경 차원에서는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등 북유럽 국가들이 강세를 보였다. 교육과 복지, 직장 시스템까지 요즘 한국 젊은이들이 가장 동경하고 이민가고 싶은 나라들이라는 점에서 수긍할 만하다. 문화유산, 고유성, 관광 등 해외 방문객들에게 어필하는 매력 차원에서도 한국은 최저 수준이다. 한국만의 독특한 가치를 제공하는 역량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브랜드 지수 1위로 꼽힌 국가는 일본이었다.



독일의 시장조사기관 GfK가 선정한 2014년 국가 브랜드 순위에서도 일본은 6위, 한국은 27위로 큰 격차를 보였다. 세계인의 시각에서 한국과 일본은 동급 라이벌이 아닌 것이다. 퓨처 브랜드 조사의 참여자들은 일본을 ‘특별한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나라’, ‘와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흥분되는 곳’으로 묘사했다. 연상되는 단어로는 ‘애니메’, ‘게이샤’, ‘망가’, ‘존중’이 눈에 띈다. ‘쇼핑으로 시작해서 쇼핑으로 끝난다’는 한국과 확연한 차이가 느껴진다.



 



대형 매장과 도심 상점가를 한바탕 휩쓸고 떠나는 한국과 달리 일본에서는 관광객들이 거리 곳곳의 크고 작은 매장에서 의류, 식품, 화장품, 생활용품 등 다양하고 독특한 제품을 면세 가격으로 구입한다. 과할 정도로 친절하고 극진하게 손님을 대하는 일본 특유의 오모테나시(お持て成し) 문화는 방문객들에게 대접받는 느낌을 주고 다시 오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영국 런던에 문을 연 일본 라멘 전문점 ‘잇푸도(一風堂)’ 해외 1호점(왼쪽). 우측은 시드니 잇푸도.



일본 정부가 2013년부터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쿨 재팬(Cool Japan)’사업도 국가 브랜드 위상을 높이는 데 일조했다. 민관 합동으로 조성된 400억 엔 규모의 쿨 재팬 펀드는 애니메이션, 패션, 음식같은 문화 콘텐트 제작부터 홍보, 수출, 인재 양성까지 다방면에 요긴하게 쓰인다. 무엇보다도 일본 문화가 아시아를 넘어 세계 시장에서 멋지고 고급스러운 브랜드로 인식되도록 하는 데 공을 들인다. 일본 전통 음식 와쇼쿠(和食)는 2013년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고, 라멘 전문점 ‘잇푸도(一風堂)’를 미국, 영국, 호주 등지로 확장시키는 사업에도 20억 엔이 투자됐다.



 



한국 저가전략 매력도 떨어뜨려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일본주 사케의 위상도 반짝 히트에 그쳤던 막걸리와 비교된다. 사케 수출액은 2002년 35억 엔, 2012년 89억 엔, 2015년 115억 엔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최근에는 고급 사케에 대한 해외 수요가 커져 리터당 수출단가가 매년 10% 이상 상승하고 있다. 와이너리 투어처럼 양조장을 방문하고 시음해보는 여행상품도 등장했다.



일본이 차별화된 가치를 제공하는 하이엔드(high-end) 브랜드를 추구한다면, 한국 마케팅은 저가(low-end) 전략 일색이다. 국가 차원의 할인 행사 ‘코리아 블랙 프라이데이’는 물론이고, 면세점 사업 확대도 언뜻 보면 고급화 전략 같지만 외국산 명품을 두고 주변 국가와 가격 경쟁을 벌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저가 전략은 경쟁자의 등장이나 돌발적인 위기에 취약하다. 지난 6월 메르스 사태가 발생하자 중국인 관광객 수는 전년 대비 20% 수준으로 급감했고 롯데면세점의 경우 중국인 매출이 절반으로 줄었다. 같은 기간 일본은 중국인 방문객이 전년 대비 두 배 증가하는 반사이익을 누렸다.



 

미국의 비영리기관 애드버스터즈가 블랙 프라이데이에 맞서 전개하는 ‘아무 것도 사지 않는 날’ 캠페인 포스터.



무차별적 가격 경쟁은 자기 실속만 차리는 체리피커(cherry picker)를 양산한다. 이메일, SNS를 통한 할인 쿠폰 판매로 수많은 소비자들을 확보하며 급성장했던 소셜 커머스 기업들이 최근 실적 부진에 빠진 것도 고객 대부분이 더 좋은 조건을 찾아 떠도는 뜨내기들이었기 때문이다. 올해 들어 주가가 50% 급감해 해외 사업을 철수하기로 한 그루폰(Groupon)은 한 금융 전문가로부터 ‘예상 주가 0달러’라는 치욕을 당하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쇼핑이나 성형수술, 운전면허증 취득 같은 일 처리만 끝내고 급히 떠나는 체리피커 방문객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 지난 4년간 방한 중국인의 체제기간이 10일에서 5.7일로 단축되었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명분 없는 할인 전략은 시대 흐름에도 역행한다. 11월의 마지막 금요일, 블랙 프라이데이는 미국에서 연중 최대 할인이 시작되는 날인 동시에 비영리기관 애드버스터즈(Adbusters)가 추진하는 ‘아무 것도 사지 않는 날(Buy Nothing Day)’이기도 하다. 대형 쇼핑몰 주변에는 불필요한 소비, 충동구매로 인한 자원고갈, 환경오염 문제를 고발하는 집회와 거리공연 등 다양한 행사가 벌어진다. 1992년 시작된 이 캠페인은 현재 65개국에서 수백만 명이 동참하는 글로벌 이벤트로 발전했다.



 



물건보다 좋은 경험을 팔아야한국은 ‘싸고 빠르고 쉬운 나라’에서 ‘돈과 시간, 노력을 더 들여서라도 가보고 싶은 매력적인 국가’로 리포지셔닝(repositioning)해야 한다. 구호성 마케팅을 벗어나 한국인이 자랑스러워하고 세계인이 공감할만한 고유의 정신과 스토리를 발굴하는 것이 급선무다. 칠전팔기 정신, 배움에 대한 열정과 같은 문화의 근간을 알리면 한국의 정체성을 부각시킬 수 있다. 외골수처럼 한 분야에 심취하는 일본의 오타쿠 문화는 이미 서구에서 유별난 괴짜들의 쿨한 생활방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국가 브랜드의 품격을 높이고 명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정부의 역할도 중요하다. 프랑스 와인의 명성 이면에는 150년 전부터 와인을 5개 등급으로 구분해 엄격한 품질 기준을 적용해온 프랑스 정부의 노력이 있었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사케의 라벨을 스캔하면 성분과 제조방식, 맛있게 즐기는 방법, 양조장의 역사 등을 알려주는 앱을 선보일 예정이다. 평범한 제품에 풍부한 이야깃거리와 추억을 더하면 프리미엄 상품으로 재탄생된다.



코넬대 심리학과 길로비치(Gilovich) 교수는 소비자는 물건보다 경험을 갖기 위해 돈을 썼을 때 더 큰 행복을 느끼고 그 감정이 더 오래 유지된다는 점을 발견했다. 또 시간이 지날수록 구매한 물건에 대한 만족도는 떨어지지만 경험에 대한 만족감은 오히려 높아진다. 독특하고 의미 있는 체험을 제공하면 만족한 고객이 또 오고 새로운 고객을 부르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된다. 가치와 명분이 중시되는 시대에 중국 소비자들도 언제까지나 명품 쇼핑에 열광하지는 않을 것이다.



 



최순화 동덕여대 국제경영학과 교수schoi@dongd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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