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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만 피했다 온다던 누나 65년 지나도 소식이 없네요”

전영배



서울 성북구에 사는(70) 할아버지는 헤어진 누나를 찾고 있다. 촬영된 영상편지가 누나에게 전달될 수도 있다는 촬영팀의 말에 전 할아버지는 자세를 고쳐 잡고 바로 앉았다. 할아버지의 고향은 강원도 양양군 현북면. 어른들을 따라 3일만 피했다 돌아오겠다던 누나는 3년, 아니 30년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그렇게 어느덧 65년의 세월이 흘렀다.



누나와 헤어진 전영배 할아버지

전 할아버지가 누나와 헤어지던 당시는 고향 마을에 인민군이 주둔해 있었다. 집 안 벽면에는 낯선 사진 두 개가 걸렸다. 스탈린과 김일성 사진이었다. 그 무렵 누나는 시집에서 친정으로 돌아와 아이를 낳았다. 누나는 생활력이 남다른 여자였다. 당시 주둔 중이던 인민군 부대에 가서 밥을 해주고 식량을 얻어 왔다. “누룽지가 귀하던 때였어요. 누나가 가져온 누룽지를 맛있게 먹던 기억이 납니다.”



마을에 폭격이 심해지자 누나는 집안 어른들을 따라 이북으로 피신했다. 어린 조카는 누나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했다. 누나는 우는 세 살배기 아이를 애써 달래고 떠났다. 그런 조카가 지금 환갑이 넘었다. “그때 매형은 인민군에 입대했어요. 누나도 그렇게 떠났고. 어릴 적에 부모가 없어 고생한 조카를 생각하면 마음이 짠해요.”



누나가 어디로 갔는지는 모른다. 그저 북한 어디론가 갔을 것이라고 추측만 할 뿐이다. 전 할아버지는 “강원도 통천(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고향)에 이모집이 있었는데 거기에라도 갔으면 다행”이라고 말했다. 전 할아버지는 어린 나이에 엄마 없이 남겨진 조카를 키우다시피 했다. 조카는 그런 전 할아버지를 큰형님처럼 따랐다.



전 할아버지는 어릴 적 일을 마치 어제처럼 회상했다. 철없던 나이에 큰 탱크가 신기해 졸졸 따라다녔던 일을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인민군 탱크가 지나가니까 동네 아이들이 신기해 하면서 졸졸 따라다녔지. 나도 그 탱크 행렬을 따라 인제에서 양양까지 간 적도 있어.” 그 비극의 현장을 지금은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누나, 잘 있었어요? 이제는 너무 오랜 세월이 흘러 누나 얼굴도 기억나지 않네요. 너무 보고 싶습니다. 조카 재기가 고생이 많았어요. 지금은 잘살고 있으니 여기 걱정은 하지 마시고 건강하게 오래 사세요. 언젠가는 보겠죠. 꼭.” 전 할아버지는 “꼭 보고 싶다”는 말을 미처 끝맺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하준호 인턴기자 jdoldol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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