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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름에 빠지면 DNA 달라져’도박병 대물림’엔 과학적 근거

호텔 카지노의 모습. 인간은 유희를 즐기는 호모 루덴스(Homo ludens)다. [셔터스톡]

재미로 시작한 화투놀이가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지난 1월 경남의 한 초등학교 행정실장인 30대 남자가 산청군 마을 공터의 자기 차 안에서 자살했다. 그는 2년 동안 학교 공금 1억8000만 원을 횡령해 인터넷 불법 도박에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돈을 따는 짜릿함이 결국 사람을 죽인 셈이다. 카지노의 슬롯머신에서 ‘7’ 숫자가 일렬로 늘어서면서 동전이 쉬지 않고 ‘차르륵 차르륵’ 떨어지는 소리를 들은 사람은 그 짜릿한 맛을 잊지 못하고 다시 찾는다. 이런 짜릿한 맛에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젊은층이 급격히 늘고 있다. 국내 성인의 5.4%가 치료가 필요한 도박 중독이다. 중고생의 73%가 인터넷 도박 경험자다. 청소년 도박의 대부분은 스포츠 도박이다. 또 스마트폰 베팅이 가능해서 부모들이 알기도 힘들다. 도박은 블랙홀이다. 가족·돈·건강·정신까지 모조리 빨아들이는 가장 끊기 어려운 중독이다. 평소 성실했던 사람이 왜 도박의 늪으로 빠지는 걸까. 인터넷 게임을 즐기는 우리 아이는 괜찮은 걸까.

도박 중독보다 치료 어려운 주식 중독

뇌의 중독 회로. 복측피개영역(1)-중격측좌핵(2)을 연결하는 쾌락회로엔 도파민이 흐르고 전전두엽(3)과 연결돼 있다.



프로농구 감독·현역선수들이 스포츠 도박에 연루돼 수사를 받고 있다. ‘스포츠 토토’는 승인된 도박이다. ‘토토’란 ‘도박’이란 뜻의 단어로 1946년 이탈리아에서 실시된 ‘토토-칼치오(도박-축구)’에서 유래했다. 청소년과 30대가 스포츠 도박에 열광하는 이유는 이것이 도박이 아닌 ‘승부 게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축구를 잘 알면 어느 팀이 이길지 맞출 수 있을 것 같다. 과연 그럴까. 이스라엘 텔아비브 대학연구팀이 이에 대한 흥미로운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165명을 모아서 2012년 유럽챔피언스리그 축구대회 16강전에 개별적으로 베팅하게 했다. 그 결과 세 그룹 (축구전문가, 도박전문가, 축구와 도박을 전혀 모르는 ‘초짜’)의 베팅 성적이 모두 비슷했다. 오히려 돈을 제일 많이 딴 사람은 ‘초짜’그룹에서 나왔다. 스포츠 도박에 경기 지식이나 경험이 전혀 도움이 안 되고 운(運)에 좌우된다는 의미다. 현실은 이렇지만 스포츠 도박 중독자들은 많은 경험과 스포츠 지식을 가진 내가 유리하다는 망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스포츠·승부게임을 좋아하는 청소년·대학생·젊은층이 스포츠 도박에 쉽게 빨려들고 헤어 나오기 힘든 이유다.

필자의 지인은 정년 후 매일 한 시간씩 단타 매매 주식을 한다. 오랜 경험 덕인지 불황에도 용돈 정도를 충당하는 눈치다. 하지만 정작 놀라운 것은 그의 절제력이다. 주식시장이 활황으로 전광판이 모두 녹색이어도 정해진 수익의 범위, 그리고 한 시간을 철저히 지킨다. 이런 그도 아들에게는 주식을 권하지 않는다. 주식이 가지고 있는 도박성 때문이다. 어떤 행동이 도박인가 아닌가는 세 가지에 달렸다. 즉 돈 잃을 위험성이 있는가, 그럼에도 돈을 따겠다는 희망으로 베팅하는가, 그리고 그 결과가 불확실한가이다. 고수익·고위험 주식상품은 도박에 가깝다. 주식을 재테크의 한 수단으로만 생각하고 방심해서는 안된다. 도박중독 치료 도중에 주식을 하면서 도박이 재발한 경우도 심심찮다. 연구논문에 의하면 도박중독자 중에서는 비교적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이 포함돼 있다. 대학생의 경우 일반 도박중독보다도 주식 중독자가 많았다. 이들은 카지노 도박 중독자보다 치료가 더 어렵다. 본인이 돈 잃은 것을 시장상황·경기불황·불운 탓으로 치부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스포츠 도박자와 마찬가지로 본인의 실력으로 언제든지 ‘대박’을 낼 수 있다는 환상을 갖는다. 도박중독자가 되고 싶어서 된 사람은 없다. 쉽게 유혹에 빠지는 사람이 따로 있을까. 옛말에도 아비가 노름꾼이면 아들도 화투를 잡는다고 했다. 노름도 대물림이 될까.

‘타짜(2006년)’라는 영화에서는 속임수를 쓰는 상대방의 손목을 잘라 다시는 화투를 못 잡게 한다. 하지만 잘린 손목에 갈고리를 만들어서 화투짝을 다시 잡는 장면이 나온다. 도박을 끊으려면 정작 잘라야 할 곳은 손목이 아닌 뇌다. 중독회로는 뇌에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동물의 뇌에는 ‘쾌락회로(Pleasure Center)’가 있다. 쥐의 그곳에 전극을 꽂고 쥐에게 전극 스위치를 주면 시간당 700번씩 먹지도 않고 하루 종일 그것만 누른다. 1954년 캐나다 맥길 대학에서 발견한 이 ‘쾌락회로’가 바로 ‘중독회로’다. 인간의 진화를 위해 이곳은 중요하다. 종족번식을 위해서는 짝짓기가 즐거워야 한다. 섹스가 쾌락으로 발전한 이유다. 이 쾌락회로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에 의해서 돌아간다. 즉 섹스의 물리적 행위가 두뇌에 전기신호로 전달되면 그 신호를 받은 뇌의 ‘측좌핵’ 부분이 도파민을 만들고 이 도파민이 인간을 황홀하게 만든다. 따라서 섹스는 몸이 하는 게 아니라 두뇌가 하는 셈이다.

짝짓기서 쾌락 느낀 덕에 종족 번식

문제는 이 회로를 돌게 하는 또 다른 물질들을 인간이 찾아냈다는 것이다. 담배·마약이다. 도파민이 달라붙는 수용체(receptor)에 니코틴·코카인이 대신 달라붙어 섹스 같은 쾌락을 준다. 쥐가 죽을 때까지 쾌락 전극 스위치를 누른 것처럼 사람들도 반복해서 담배를 피우고 마약을 주사한다. 문제는 이 사이클을 계속 돌다 보면 점점 내성(耐性)이 생겨 더 많은 담배·마약이 있어야 같은 정도의 쾌락을 느낀다. 또 담배·마약을 끊으면 손발이 떨리고 몸이 고통스러운 ‘금단(禁斷)현상’이 생긴다. 내성과 금단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하면 이미 자기통제의 범위를 벗어난 병적인 중독 상태이다. 담배·마약처럼 물질에 의한 물질중독도 있지만 게임·도박·섹스·쇼핑 등 행동중독도 있다. 두 종류 중독 모두 뇌의 쾌락 사이클을 돈다.

어떤 타입의 사람이 중독에 더 잘 걸릴까. 유전과 환경이 반반씩 영향을 준다. 최근 연구는 도파민 수용체가 개인마다 조금씩 다르다는 것을 밝혔다. 즉 중독유전자에 개인차가 있다는 것이다. 만약 도파민 수용체의 숫자가 적거나 효율이 안 좋다면 같은 정도의 쾌락을 느끼기 위해 더 많은 니코틴·코카인이 필요하다. 더 쉽게 중독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지난 5월 독일 하노버대학 연구팀은 노름이 대물림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팀은 노름하는 사람의 DNA에 ‘꼬리표(메틸기)’가 많이 붙어있음을 확인했다. 즉 태어나서 한 일, 즉 후천적 행동까지도 자식에게 전달된다는 소위 ‘후성유전학(epigenetics)’이 도박중독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결국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아비가 노름꾼이 되면 그 아들·손자도 화투를 잡을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이 경우 노름을 못하게 하면 아들은 부족한 도파민을 채우기 위해 다른 중독, 예를 들면 담배·술·마약으로 부족한 뇌의 쾌락을 찾으려 한다. 실제 도박중독자 직계가족의 11%가 역시 도박중독자이고 집안에 다른 종류의 중독자들이 많다. 이런 집안에서 태어나면 도박중독이 될 확률이 8배나 높다. 따라서 집안에 그런 가족이 있다면 미리 주의해야 한다. 도박을 아예 멀리하고 내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 늘 조심해서 보고 있어야 노름 대물림의 덫에 빠지지 않는다.

뇌운동용 고스톱과 도박 중독의 차이

청소년들의 인터넷·스마트폰 불법 스포츠 도박이 늘고 있다. 도박은 블랙홀이다. 일러스트 박정주



필자의 어르신은 유난히 고스톱을 좋아해서 늘 동네 분들과 내기 화투를 쳤다. 10원짜리 동전이 오간다. 카드놀이를 하는 노인들의 뇌를 촬영해보면 인지능력 해당 부분이 활성화돼 있다. 생각하고 손을 움직이고 상대방과 끊임없이 이야기하며 즐기는 10원짜리 고스톱만큼 노인의 건강에 도움을 주는 ‘놀이’는 없다. 인간은 원래 놀이를 즐기는 ‘호모 루덴스(Homo ludens)다. 문제는 놀이가 중독으로 변할 때다. 어떤 행동이 놀이인가 중독인가는 두 가지로 판단할 수 있다. 그 ‘행동’ 때문에 삶의 균형이 깨지고 그 ‘행동’을 하다가 멈추고 다른 일 하기가 힘들면 중독이다. 멀쩡한 사람들이 도박에 빠지는 가장 큰 요인은 ‘대박’과 딸 수 있다는 환상이다. 하지만 도박은 잃도록 프로그램 돼있다.

카지노의 슬롯머신 환급률은 75-99%다. 90%로 가정하고 1만 원을 베팅해보자. 어쩌다 100만 원이 나올 수 있지만 허탕일 수도 있다. 이런저런 모든 경우를 고려하면 1만 원 베팅에 돌아오는 평균 돈은 9000원이다. 1000원은 물론 카지노 수입이다. 두 번째로 머신을 당기면 9000원의 90%인 8100원이 남는다. 결국 이런 식으로 7번만 당기면 반 토막 난다. 또 처음에 100만 원이 당첨되어도 이대로 바로 집에 돌아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 계속 베팅해서 결국은 다 털린다.

또 다른 게임을 보자. 동전을 던져 ‘앞’이 나오면 이긴다고 하자. 연속해서 6번 ‘뒤’가 나올 확률은 0.5를 여섯 번 곱한 0.015이다. 만약 어떤 게임에서 동전의 ‘뒤’만 5번 나왔다 치자. 따라서 6번째에 ‘앞’에 돈을 걸면 이길 확률이 무려 6배나 될 것 같다. 하지만 잘못된 계산이다. 이 경우 6번째에 ‘앞’이 나올 확률은 역시 50%다. 실제 슬롯머신, 홀짝게임 등 순전히 운에 좌우되는 도박에서 연이어 계속 잃게 되면 이번에는 딸 확률이 높다는 잘못된 계산이 계속 베팅하게 만든다. 하지만 도박기계 환급률이 99%라고 해도 시간이 지나면 결국 다 털린다고 수학은 말한다. 경마장 환급률은 73%다. 정작 경마에서 돈 버는 쪽은 매번 27% 수수료를 떼는 경마장이다.

지난달 7일 죽마고우의 집에서 현금 6500만 원을 훔친 남성이 잡혔다. 해외원정 도박에서 돈을 한 번 딴 이후 도박중독이 됐다. 그 이후 자기 돈, 가족 돈, 은행 돈도 모두 끌어 쓰고 결국 친구 돈을 터는 도둑질로 쇠고랑을 찼다. 도박중독은 술·담배 중독과는 달리 표가 나지 않는 ‘은밀한’ 중독이다. 설사 가족이 알게 되도 쉬쉬한다. 중독이 되면 개인이나 가족이 해결하기보다는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2013년 설립된 도박문제관리센터는 전국단위 상담센터로 쉽게 상담이 가능하다. 국내 도박중독자는 5.4%로 다른 나라의 2~3배다. 한국 청소년의 인터넷 사용시간은 유난히 길다. 인터넷 도박에 빠져든 10대는 어른이 되어서도 도박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힘들다.

17세기 프랑스의 철학자·수학자인 파스칼은 “모든 도박하는 자는 불확실한 것을 얻기 위해 확실한 것을 건다”라고 했다. 불확실한 승리와 대박의 환상을 위해 내 가족의 행복을 거는 것만큼 멍청하고 불행한 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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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