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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부용 시신과 밤새 씨름하며 슥슥 그리기도 했죠

밤샘 작업을 하다 깜박 잠이 들었다. 눈을 떠 보니 카데바(cadaver·해부용 시신)를 끌어안고 있었다. 자는 동안 체온이 옮겨갔는지 싸늘했던 시신에 온기가 돌았다. “아이고 무거우셨죠. 죄송합니다. 어르신.” 자신도 모르게 사과를 하며 다시 스케치북을 펼쳤다.

7년간 의대 해부학교실에서 카데바와 함께 지낸 이 남자, 의대생도 의사도 아닌 ‘메디컬 일러스트레이터(Medical Illustrator)’ 장동수(40)씨다.
장동수 MID 대표는 작업 때 시신의 신경 한 가닥까지 그려낸다. 그는 “메디컬 일러스트레이터는 그림 실력도 있어야 하지만, 의료인들과 원만하게 소통하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필수”라고 말했다. [사진 김상선 기자]

장동수 MID 대표는 작업 때 시신의 신경 한 가닥까지 그려낸다. 그는 “메디컬 일러스트레이터는 그림 실력도 있어야 하지만, 의료인들과 원만하게 소통하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필수”라고 말했다. [사진 김상선 기자]

메디컬 일러스트레이터는 의학 서적이나 논문, 학술대회 발표자료, 환자 교육용 자료 등에 들어갈 의학 관련 이미지를 만드는 일을 한다. 국내에 전문가가 10여 명밖에 없는 이 분야에서 장씨는 15년간 활발하게 활동해 왔다. 7년간의 해부학교실 경험을 거쳐 현재는 연세대 의대 연구부 그래픽 부문을 총괄하며 디자인 회사 MID(Medical Illustrations&Design)도 이끌고 있다. 수백 편의 SCI·국내 논문에 그의 일러스트가 등재됐고, 해부학 교과서 등 다수 출판물의 이미지 작업을 담당했다.

대학에서 조소를 전공한 그는 학생 때부터 인물을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일에 관심이 많았다. “초상화 그리는 아르바이트를 했고, 가족들의 흉상을 만들기도 했어요.” 미술해부학 수업 때 그린 근골격 그림을 블로그에 올린 것이 계기가 돼, 2002년 연세대 의대 해부학교실에 조교로 들어갔다. 하지만 의학의 ‘의’자도 모르던 그에겐 막막함뿐이었다. “처음 3년 정도는 일주일에 두세 번씩 해부학 실습실에서 밤을 새며 혼자 해부하고 표본을 만들고 스케치를 했어요. 빨리 일러스트레이터로서의 역할을 해내야 한다는 부담감에 무서운 줄도 몰랐죠.”

메디컬 일러스트의 핵심은 ‘정확성’과 ‘주제를 강조한 함축적인 스토리텔링’이다. 그는 “인간의 장기나 뇌 등을 사실대로만 보여준다면 사진이 더 낫겠지만, 일러스트를 선호하는 이유는 핵심 정보를 명확하게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예를 들어 그가 2003년에 그린 얼굴신경구조도는 평소 귀로 덮여 잘 보이지 않는 부위인 붓꼭지구멍(Stylomastoid foramen)에서 얼굴신경이 뻗어나오는 모습을 확실하게 보여준다. “당시만 해도 이 구조를 명확히 그린 그림이 별로 없어서, 이비인후과나 성형외과 의사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신경 한 가닥 한 가닥을 직접 눈과 손으로 따라가며 작업한 결과물이에요.”

의학 일러스트 외에 그는 조각이나 설치 등 순수미술 작업도 하고 있다. 해부학교실에서 느낀 인간의 존재와 의식, 과학적으로 설계된 인체의 신비 등을 주제로 한다. 뇌 단면을 새긴 대형 조각 ‘휴먼’, 양악 수술을 한 환자의 턱뼈 변화를 표현한 ‘트랜스포머’ 등의 작품으로 11월에는 서울 홍익대에서 개인전 ‘메디컬 아트’도 열었다.

그는 “한국 의학의 수준이 놀랄 정도로 발전하고 있고, 이를 알리는 메디컬 일러스트레이터의 역할도 중요해지고 있다”며 “카툰이나 알기 쉬운 그림으로 어려운 의학정보를 의료 소비자들에게 쉽게 전달하는 작업 역시 꾸준히 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글=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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