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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정의 왜 음악인가] 연말에라도 우리가 주인공

김호정 문화스포츠부 기자

김호정
문화스포츠부 기자

점잖은 말은 아니지만 ‘첼로만 죽어난다’고 밖에 할 수 없는 곡이 있다. 베토벤의 삼중 협주곡이다. 오케스트라 앞에 피아노·바이올린·첼로 세 명의 독주자가 앉는다. 보통 협주곡은 이 중 한 악기가 오케스트라와 협연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세 악기가 함께 한다.
 
 
(녹음하면서 연주자끼리 많이 싸웠다는 얘기가 전해지는 녹음. 쟁쟁한 독주자들의 팽팽한 신경전이 느껴진다.)

1·2·3악장 시작을 도맡은 첼로는 40여분 내내 연주 분량도 많고 리듬·테크닉 모두 까다롭다. 바이올린도 자주 등장하지만 유독 피아노는 ‘놀러나온’ 수준으로 한가로워 보인다. 본인이 피아니스트인 작곡가의 작품으로선 의외다. 피아노를 잘 아는 작곡가들은 작품에서도 피아니스트들의 중노동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2악장도 3악장도 첼로가 시작한다. 첼리스트에게 연주료를 더 줘야 할 것 같은 작품이다.)

베토벤이 이렇게 작곡한 이유에 대해선 정설로 굳어진 추측이 있다. 베토벤을 후원하던 귀족 때문이다. 루돌프 요한 요제프 라이너 대공은 베토벤의 피아노 제자였다. 즉 아마추어인 루돌프 대공이 연주할 수 있도록, 그리고 프로인 첼로·바이올린 연주자가 화려함을 보완하도록 난이도를 조절했다는 뜻이다. 작품이 가장 쉬운 조성인 다(C) 장조로 된 것도 설을 뒷받침한다.
삼중 협주곡은 음악이 특정 계층을 위해 복무하던 시절의 가장 강력한 증거다. 하지만 베토벤은 이 관습에서 가장 드라마틱하게 벗어난다. 그 증거가 마지막 교향곡 ‘합창’이다.

연말마다 단골로, 올해 한국에서만 최소 6개 오케스트라가 12월에 연주한 작품이다. 이 곡은 왜 유명할까. 오케스트라에 사람 목소리를 결합한 최초의 작품이기 때문일까. 결합이라는 단순한 발명 때문에 의미를 가진다 보면 오해다. 사람의 목소리란 무엇인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다. 루돌프 대공과 우리가 똑같이 가진 것이 목소리다. ‘합창’ 교향곡은 음악에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록 베토벤이 개발한 새로운 장치다. 인간의 의지, 민중의 힘, 사람의 이성을 믿었던 베토벤이 음악에 시도한 개혁이다.
 
 
(의미있는 행사마다 관행적으로 베토벤의 ‘합창’을 연주한다. 기계적이라 비판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합창’을 대치할만한 개혁적인 작품이 있었는지에 대해선 쉽게 답할 수 없다.)

‘합창’ 3악장까지 오케스트라만 연주하다가 4악장에서 독창자·합창단이 가세하면 빛이 쏟아지듯 음향 폭탄이 터진다. 이 무대에서 청중이 저도 모르게 소름이 돋는다면, 베토벤의 사상이 무의식 중에라도 전달됐기 때문이다. 우리는 작곡가를 고용하기도 힘들고, 우리를 위한 음악을 쓰게 할 수도 없지만 노래할 수는 있다. 베토벤 ‘합창’을 들으며 속으로 따라 부를 수 있다. 흥얼거릴 능력이 있는 우리가 주인공이다. ‘합창’ 공연이 잇따르는 연말에만이라도 말이다.

김호정 문화스포츠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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