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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속으로] 주머니서 짤랑 소리 사라지겠군요…‘거스름 동전 없는 편의점’ 내년 시행

일상화되는 디지털통화
“잔돈은 네이버페이로 충전해 주세요.”

교통카드에 충전, 계좌 이체도 추진
마트· 약국· 커피숍으로 확대 계획
동전 224억 개, 2조3000억어치 유통
발행비 연 500억 등 비용 절감 효과
비트코인 등 디지털통화 700여 종
“안정성 떨어져 지폐 대체는 어려워”

지난 12일 서울 무교동의 세븐일레븐 편의점. 1300원짜리 사이다 한 캔을 계산대에 올린 기자가 지폐로 2000원을 내밀며 점원에게 한 말이다. 점원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네이버페이요? 그건 잘 모르겠는데요….”

지난 9월 선보인 서비스인데도 점원은 처음 듣는다는 반응이었다. 편의점 POS(판매시점관리시스템) 단말기로 잔돈을 충전해 주는 방법이 나와 있는 스마트폰 화면을 그에게 내밀었다. 점원은 설명서에 따라 몇 가지를 입력하더니 기자의 스마트폰에 있는 네이버페이 충전용 바코드를 스캔했다. 1초도 지나지 않아 네이버페이로 거스름돈 700원이 충전됐음이 확인됐다. 점원이 처음 해본 게 아니었다면 700원어치 동전을 세서 건네주는 시간보다 더 빨리 결제가 이뤄질 듯했다.
자료: 한국은행

자료: 한국은행

아직은 낯설지만 앞으론 편의점에서 현금 결제할 땐 ‘잔돈은 충전해 달라’는 말이 일상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은행이 내년부터 편의점에서 ‘동전 없는 사회’ 시범사업을 시행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세븐일레븐이 네이버와 선보인 ‘엔(N)페이 잔돈 충전 서비스’, GS25가 한국스마트카드와 제휴로 도입한 ‘거스름돈 충전 서비스’ 등이 있다. 이를 중앙은행 차원에서 본격 도입·확산시키기로 했다.

1단계로 한은은 편의점 1개 업체를 선정해 선불교통카드로 잔돈을 충전하는 시범사업을 내년 1분기에 시행한다. 편의점에 있는 선불카드 충전 단말기를 사용한다. 선불카드는 주로 청소년층만 이용한다는 점이 한계다. 2단계에선 소비자가 휴대전화번호를 입력하면 등록된 은행 계좌로 잔돈을 송금해 주는 방식을 추가할 계획이다. 이어 내년 하반기 이후엔 대형마트나 약국, 커피전문점 등 다른 업종으로도 시범사업을 확대키로 했다.
한은이 동전 없는 사회를 추진하는 건 동전이 불편하고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시중에 유통되는 동전은 224억 개, 2조3000억원어치에 달한다(10월 기준). 해마다 동전을 새로 발행하는 데 500억원이나 든다. 하지만 사람들은 동전을 잔돈으로 받아도 쓰지 않고 서랍이나 저금통 등에 넣어둔 채 잊어버리곤 한다. 한은 설문조사에 따르면 동전을 받은 뒤 다시 쓰지 않는 이유는 ‘갖고 다니기 불편해서’(62.7%)가 가장 많았다. 김정혁 한국은행 전자금융기획팀장은 “동전 사용을 줄임으로써 발행뿐 아니라 동전의 유통·관리·보관 등 총체적인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동전 관리가 적잖은 일거리인 편의점이나 커피전문점들은 시범사업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다만 그렇다고 동전이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니다. 김정혁 팀장은 “현금 거래가 편리한 점도 있기 때문에 동전 발행을 중단하거나 사용을 대폭 제한하진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럼 동전뿐 아니라 ‘지폐 없는 사회’도 현실화될까. 사회적 비용 절감을 위해선 동전보다는 지폐를 없애는 게 효과적이란 주장이 학계에선 관심을 끈다.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는 저서 『화폐의 종말 : 지폐 없는 사회』에서 이렇게 주장한다. “종이화폐를 단계적으로 폐지할 때가 됐다. 이는 탈세와 범죄를 줄이는 데 심대한 기여를 하고, 중앙은행이 제한 없는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할 수 있도록 한다.” 그는 대신 “개인의 사생활 보호 등을 위해 소액권은 동전 형태로 일부 남겨 두자”고 제안한다.
지폐 없는 사회가 기술적으로는 불가능한 건 아니다. 이미 세계엔 700여 종의 디지털 통화가 있다. 2009년 탄생한 비트코인이 대표적이다. 비트코인을 포함한 디지털 통화는 24시간 빠르고 저렴하게 해외에 송금할 수 있다는 장점을 인정받고 있다. 블록체인(blockchain)이란 혁신적인 기술을 기반으로 한 디지털 통화는 기존 화폐의 자리를 끊임없이 넘보는 중이다. 주류 경제학에선 아직은 디지털 통화가 기존 화폐를 대체하긴 어렵다고 본다. 가격이 널뛰다 보니 안정성이 떨어진다는 점이 가장 큰 취약점이다. 이대기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디지털 통화를 ‘가상 화폐’라고 부르지만 가치가 일정하게 부여되지 않는 한 공적 화폐를 대체하긴 어렵다”고 지적했다.

대신 ‘정부 디지털 통화’를 발행하는 방안을 영국·캐나다·스웨덴 중앙은행이 연구 중이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중앙은행판 개인용 계좌’에 가깝다. 개인이 은행을 거치지 않고 중앙은행에 직접 계좌를 만들어 금융거래나 지급결제를 하는 방식이다. 스웨덴 중앙은행인 릭스방크는 지난달 “2년 만에 디지털 통화인 ‘이(e)크로나’의 발행 여부를 결정하길 희망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김동섭 한국은행 결제연구팀 과장은 “중앙은행이 디지털 통화를 직접 발행한다면 종이돈 발행이 크게 줄고 대체될 수 있다. 다만 아직은 연구 초기 단계여서 실제 시행될지는 두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S BOX] ECB·스웨덴·호주, 돈세탁에 악용되는 고액권 폐지키로
화폐 중 가장 먼저 종말을 맞이할 운명에 처한 건 고액권이다.

지난 5월 유럽중앙은행(ECB)은 500유로(62만원) 지폐의 발행 중단 계획을 밝혔다. 유통량을 단계적으로 줄여나가 2018년 말부터는 완전히 발행을 중단한다는 내용이다. 고액권이 돈세탁과 테러단체의 자금 조달 수단으로 악용된다는 게 그 이유였다.

하지만 고액권과 범죄의 상관관계가 높다는 건 심증에 불과할 뿐이라는 반대의 목소리도 여전히 있다.

‘현금 없는 사회’의 선두주자인 스웨덴은 고액권 지폐인 1000크로나(12만7000원) 권종을 단계적으로 없애 2013년 말 완전히 폐지시켰다. 그 결과 현금 수요가 급감했다. 2009년 스웨덴에서 유통된 지폐와 동전은 1060억 크로나였지만 2016년엔 770억 크로나로 줄어들었다.

호주 정부도 최고액권인 100호주달러(8만7000원) 지폐를 폐지하는 방안을 검토하기 위한 ‘지하경제 태스크포스’를 구성한다고 14일 밝혔다. 100호주달러의 유통량은 3억 장으로, 50호주달러(6억800만 장) 다음으로 많다. 하지만 실생활에선 찾아보기가 쉽지 않아 탈세용으로 비축된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국에서도 5만원권이 지하경제로 흘러간다는 우려가 제기돼 왔다. 올 상반기 5만원권의 회수율은 50.7%였다. 절반 정도는 어딘가에 숨어 있다는 뜻이다.

한애란 기자 aeyan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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