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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안전’이 최고의 판돈이 되는 사회

정여울 작가

정여울
작가

올여름 파리 샤를 드골 공항에서 겪은 일이다. 니스 테러의 여파로 공항의 보안이 매우 엄격했다. 출발 시간이 아직 많이 남아 있어 공항 로비 벤치에 앉아 책을 읽으려 하는데, 공항 직원이 화가 잔뜩 난 표정으로 고함을 질렀다. “다들 물러나요! 저쪽으로 가요!” 이유도 설명하지 않고 여러 번 반복해서 성난 고함을 지르니,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나뿐만 아니라 수백 명의 승객이 깜짝 놀라 주섬주섬 짐을 챙기면서도 다들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때 영어로 안내방송이 나왔다. 폭탄으로 의심되는 물질이 발견되어 수색 중이니 자리를 옮겨달라는 내용이었다. 일단은 ‘안전’이 최고이니 공항 직원의 무례함과 난데없는 신경질까지도 어쩔 수 없이 묵인하는 분위기였다. 다행히 위험물질은 평범한 배낭으로 밝혀졌지만, 그날 공항에 있던 전 세계의 여행자들에게 ‘파리의 마지막 기억’은 불쾌감과 모욕감으로 각인되고 말았다. 차분히 상황을 알려주고, 정중하게 자리를 옮겨줄 것을 요청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안전’이라는 명분 때문에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라는 기본적 가치는 철저히 짓밟히고 말았던 것이다.

불의 묵과한 모두의 ‘안전지상주의’가 더 무서워
자신의 안전만 생각하면 ‘우리’의 안전 위협받아


이렇듯 너도나도 ‘안전’을 지상목표로 삼는 세상에서는 자유나 인권, 국민의 알 권리, 사생활 등 다양한 가치들이 묵살당한다.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이런 안전에 대한 집단적 과민반응이 현대인의 삶의 질 자체를 위협하고 있음에 주목한다. 그는 『부수적 피해』에서 온갖 위험으로 가득 찬 세계에서 ‘안전’은 최고의 판돈이 되어버렸다고 지적한다. 위험에 대한 공포는 단지 테러나 자연재해만을 향한 것이 아니라, ‘언제든 내 삶이 지금보다 나빠질 수 있다’는 막연한 공포를 낳아 행복할 권리를 짓밟는다. 안전에 대한 과민반응이 더 깊은 불안을 유발한다. 또한 이러한 안전지상주의가 권력층의 보신주의나 속물주의와 연합하면, 그야말로 괴물 같은 비리와 각종 ‘게이트’가 쏟아지게 된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어느 한두 사람만의 잘못만이 아니라 ‘자기 앞에서 벌어지는 불의를 묵과한 모든 사람’의 안전지상주의 때문에 더욱 일파만파로 커져버렸다. 청문회에서 모르쇠로 일관하는 증인들의 머릿속에는 ‘진실을 말해서 떠들썩한 역사의 증인이 되는 것보다는, 진실을 감춰서 보신에 힘쓰는 것이 안전하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안전불감증보다 더 무서운 것은 ‘안전’ 때문에 다른 모든 소중한 가치를 압살하는 저 철면피적인 안전지상주의가 아닐까.

이 안전지상주의가 개인의 내면에 깊이 침투하면 ‘끝없이 자기 관리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번지게 된다. 사회가 개인의 안전을 보장하지 못하니, 스펙은 물론 분노나 스트레스까지 관리하고 조절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그런데 안전에 대한 공포는 기갈증과 같아서 더 커다란 안전을 원할수록 더 깊은 불안을 느끼게 된다. 상품을 소비하다 못해 이제 자기 자신을 과소비해 버리는 무한 자기 관리의 프로젝트로 인해 우리는 스스로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 뿐이다.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 앞에서도 ‘혹시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닐까’ ‘내가 부족한 것일까’ 하고 자책하는 것이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나치 박해의 희생자였던 마르틴 니묄러의 사례를 들려준다. 처음에 나치는 공산주의자들을 체포하러 왔다. 니묄러는 공산주의자가 아니기에 가만히 있었다. 다음엔 노동조합원을 잡으러 왔다. 그는 노조와 연관이 없었으므로 침묵했다. 그다음에는 유대인, 그다음엔 가톨릭교도를 잡으러 왔지만, 가만히 있었다. 마침내 나치는 니묄러를 잡으러 왔지만, 그때에는 다른 누군가를 옹호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눈앞에서 동료나 이웃이 잡혀갈 때, 눈앞에서 크고 작은 불의가 일어날 때, 우리가 침묵하고 자신의 안전만을 생각한다면, 결국 궁극적으로 위협받는 것은 우리 자신의 안전이다. 우리에게는 가만히 있지 않을 권리, 더 나은 삶을 선택할 권리, 일시적인 안전과 보신보다는 더 많은 사람과 함께 누릴 수 있는 자유와 인권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한 해를 돌아보는 저마다의 가슴속에 ‘내가 더 많이 노력했어야 하는데’라는 자책보다는 ‘나’를 넘어 ‘우리’가 함께 선택할 수 있는 더 나은 삶에 대한 따스한 희망이 싹틀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정여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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