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매거진M] 4만 명이 빵 터진 꽃들의 반란: 장진 감독이 연출한 화제의 연극 '꽃의 비밀'

연극 ‘꽃의 비밀’(11월 29일~2017년 2월 5일, DCF대명문화공장, 장진 연출)의 ‘꽃’은 여자를 의미한다. 그렇다고 여성을 남성에 의해 피어나는, 아름답고 수동적인 존재로 그렸을 것이라 생각하면 곤란하다. ‘꽃의 비밀’에 등장하는 네 여성은 모두 평범한 주부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비밀을 남몰래 감춘 채, 농사일과 집안일을 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이들이 비밀을 털어놓을 수밖에 없는 사건이 벌어지고 나서야, 이들의 강인함은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삶에 비극이 닥쳐와도 살아야 한다’라고 믿는 멋지고 사랑스러운 여성들이 벌이는 좌충우돌 소동극을, 이미 전국에서 관객 4만 명이 함께 울고 웃으며 지켜봤다. 지난해 12월 초연돼, 앙코르·전국 순회공연을 거쳐 다시 세 번째 공연 첫 무대의 막을 올리기까지 1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빵’ 터지다가도 어쩐지 짠해지고, 그럼에도 또 웃게 되는 마지막 순간에 뜨거운 박수로 응답하게 되는 작품. 이 매력적인 연극을 네 가지 키워드로 정리했다.
 
장진

2015년 초연 개막 당시 ‘꽃의 비밀’이 주목받은 가장 큰 이유는, 장진 감독이 자그마치 13년 만에 만든 코미디 연극이었기 때문이다. 2002년 연극 ‘웰컴 투 동막골’ 이후 처음이다. 다양한 인물들이 모여 만드는 왁자지껄한 소동극, 시추에이션 코미디에 능한 장 감독의 재능은 ‘꽃의 비밀’에서도 어김없이 빛을 발한다. 특히 극 초반 빠른 속도로 캐릭터를 단단하게 다진 후, 캐릭터와 대사를 가지고 놀며 쉴 새 없이 웃음 터지게 하는 기술은 ‘역시 장진’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게 만드는 부분. 모니카(소유진·이청아)와 지나(김보정·박지예)가 별 다른 이유 없이 소피아(이선주·구혜령)의 집을 오가며 던지는 대사만으로, 자스민(배종옥·조연진)이 술을 좋아하고 남편과 성(性)생활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자스민이 주정뱅이처럼 벌게진 얼굴로 머리에 꽃을 단 채 등장하면, 관객은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다. 직접 짠 올리브 오일과 요리에 대한 소피아의 자부심이나, 모니카가 연기를 전공했고 지나가 공과대학을 나왔다는 사실도 소소하게나마 모두 활용된다. 대사 한마디 한마디가 전부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느끼는 데 도움되는, 이 꼼꼼하고 재미난 희곡은 정확히 2주 만에 장 감독의 손에서 완성됐다.

사진=수현재컴퍼니

사진=수현재컴퍼니

 

풍자
이탈리아 북부 작은 시골 마을 빌라페로사. 한국에서 멀리 떨어진 이 도시를 극의 배경으로 삼은 이유는, 장 감독이 ‘꽃의 비밀’의 해외 진출을 염두에 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이유와 별개로, 극 중 묘사되는 이탈리아 현실은 한국과 그리 다르지 않다. 주인공인 네 여성은 2016년 한국에서도 흔히 만날 수 있는 여성들이다. 그리고 이들의 삶이 우리의 삶과 겹쳐질 때 장 감독의 블랙 코미디와 풍자의 힘은 더욱 커진다. 장 감독이 희곡을 쓸 때, 당시 이탈리아 대통령이던 조르지오 나폴리타노에 대해 ‘노령(1925년생)으로 인해 대통령직을 수행하기 어렵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 소문은 극 중 모니카의 입을 통해 이런 대사로 관객에게 들려온다. “웃기지? 대통령이 치매가 왔다는 게.” 이 대사는 올해 초중반까지 진행된 초연과 앙코르·전국 순회공연까지는 큰 웃음 요소가 아니었다. 하지만 11월 개막한 삼연부터는 한국의 정치 상황과 묘하게 맞아 떨어지며, 관객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오는 지점이 됐다. 세태 풍자는 물론, 현실 생활을 풍자하는 대목에도 뼈가 있다. 기혼 여성들이 주인공인 만큼, 풍자의 주된 소재는 ‘부부 관계’다. “축구장에 간 남편에게 전화가 오지 않았느냐”는 지나의 질문에 “세상의 어느 부부가 전화를 하니?”라는 말로 일축하는 소피아의 모습은 또 하나의 웃음 포인트.
 
여성

의사 카를로(이동현·최태원)를 제외하면, ‘꽃의 비밀’의 등장인물은 모두 여성이다. 이 연극은 남자들이 없는 공간에서 여성들의 모습을 유쾌하게 보여 주면서, 동시에 이들이 ‘여성’이기에 겪어야 했던 비극적인 일들을 조심스레 풀어놓는다. 소피아는 아직 젊은 모니카와 지나가 대학 교육을 받은 데다 사회 생활을 할 능력이 있음에도, 시골에서 농사 지을 수밖에 없는 현실을 안타까워한다. 지나는 농사와 집안일을 병행해야 하는 처지의 고단함을 토로한다. 남편과 남이나 다름없어진 자스민의 상황은 무대 위 인물들도 적극 활용하는 유머 소재지만, 알고 보면 그 속사정은 그리 간단치 않다. 이들은 남편의 보험금을 타려 남장하고 각자의 남편을 흉내 내는데, 그 과정은 우스꽝스럽지만 어딘지 모르게 짠한 구석이 있다. 성격도 캐릭터도 다르지만, ‘꽃의 비밀’ 속 인물들은 자신이 여성이기에 남편 없는 생활이 그리 쉽지만은 않을 것임을 알고 있다. 관객도 물론 그 사실을 알고 있다. “대통령은 곧 바뀌겠지만, 우리 이탈리아 여성들의 삶이 나아질 거라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소피아의 이 대사는, 당연히 지금 한국의 상황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웃음이 이어지는 와중에도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고 제대로 연대하기 시작하는 여성들을 볼 때, 마음 깊이 그들을 응원하게 되는 것은 ‘꽃의 비밀’만이 가진 힘이다.

사진=수현재컴퍼니

사진=수현재컴퍼니

 

변신
‘꽃의 비밀’은 여자가 남자로 변신하는 이야기를 다루기도 하지만,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한 배우들을 만날 수 있는 연극이기도 하다. 특히 아무 때나 큰소리로 노래하는 주정뱅이 자스민으로 변신한 배우 배종옥을 만나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다. 배종옥은 11월 29일 진행된 프레스콜에서 “코미디 장르를 하지 않았던 배우로서 ‘코미디에 도전해 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이 작품을 선택했다”고 밝혔다. 그만큼 자스민은 극 중 코미디 지분의 절반가량을 차지할 정도로 강렬한 캐릭터. 배종옥은 가장 중요한 순간에 실수하고, 엉뚱한 말을 던지며 관객을 웃기는 자스민을 무뚝뚝하면서도 사랑스러운 인물로 표현해 낸다. 그를 무겁거나 진지한 이미지로 기억하고 있다면, 그의 색다른 모습을 만날 기회다. 모니카 역에는 소유진과 이청아가 더블 캐스팅됐다. 대학에서 연기를 전공해 남장 연기 경력이 있는 모니카는, 평소에는 여성스럽지만 남장했을 때 가장 극적인 변화를 보여 주는 인물이다. 같은 캐릭터를 전혀 다르게 소화하는 배우들을 보는 것이 더블 캐스팅의 매력. TV와 스크린을 통해 익숙한 두 배우가 무대 위에서 어떻게 변신할지 확인해 보는 것도 ‘꽃의 비밀’을 즐기는 또 다른 방법일 것이다.
 
<알고 보면 더 웃긴 깨알 팁>
모니카가 대학 시절 연기한 남자 캐릭터는 바로 베니토 무솔리니(1883~1945). 1922년부터 이탈리아 총리로 재임했던 무솔리니는 파시즘(Fascism·국수주의적, 권위주의적, 반공적인 정치적 주의 및 운동)을 주장했으며,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 다음으로 꼽히는 독재자다. 모니카는 우렁찬 발성과 각 잡힌 몸짓으로 무솔리니를 재현한다.

네 여성의 남편들이 함께 보러 간 축구 경기는 이탈리아의 프로 축구 1부 리그인 세리에A의 유벤투스 FC와 AC 밀란의 경기다. 이탈리아 축구를 대표하는 이 두 팀의 대결은 ‘이탈리아 더비(Italy Derby)’라 불릴 정도. 네 남자는 유벤투스 FC의 홈 구장이 있는 토리노로 향하는 길이었다. 극 중 등장하는 마시밀리아노 알레그리 감독은 2014년부터 지금까지 유벤투스 FC의 감독으로 재직 중이다.

극 중간에 “3000유로면 우리나라 돈으로 얼마야!”라는 소피아의 말에 카를로가 “3000유로요”라고 답하는 대목이 있다. 자연스럽게 우리나라 상황이라 생각하며 보던 관객의 허를 찌르는 유머가 돋보이는 부분이지만, 3000유로가 얼마인지 즉각적으로 감이 오지 않는 것은 사실. 3000유로는 약 374만원.  네 여성이 노리고 있는 남편들의 사망 보험금은 20만 유로로, 약 2억 5천만원이다.
글=윤이나 영화칼럼니스트, 사진=수현재컴퍼니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