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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 조슬예의 아는 사람 이야기] 작가의 상상력을 좌절시키는 현실이라니!

연극 `웃음의 대학`

연극 `웃음의 대학`

1940년, 일본. 극작가 츠바키 하지메는 펜만 들면 모든 이야기가 우스운 쪽으로 흘러가는, 그야말로 타고난 희극 작가다. 때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국에 맞서 싸우던 일본은 국민 사상을 통일하기 위해 모든 예술 작품을 엄격하게 검열했다. 침략전을 합리화하고 전의를 고취시키는 작품만이 살아남던 시대에 ‘웃음’은 그저 불필요한 요소였다. 희극을 쓰고 싶은, 아니 쓸 수밖에 없는 츠바키에게는 얼마나 가혹한 상황인가. 설상가상 그 앞에 나타난 검열관 사키사카는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진심으로 웃은 적 없다”고 말한다. 상연 허가를 두고, 두 사람은 대립한다. 연극을 통해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고 싶은 츠바키와 극본에서 모든 희극적 요소를 제거하려는 사키사카. 사실 이 대결의 승자는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다. 권력 관계가 명확하기 때문이다. 약자인 츠바키에게는 사키사카의 무리한 수정 요구를 받아들이거나 작품 쓰기를 포기하는 것 외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다. 작가의 상상력이 제한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과연 츠바키는 계속 글을 쓸 수 있을까?

검열만큼 창작자를 괴롭게 만드는 상황이 있다. 현실이 어떤 창작품보다 흥미진진하고 예측 불허인 경우다. 바로 지금, 2016년 대한민국처럼 말이다. 나라가 어수선하다. 연일 뉴스와 기사를 통해 상상 초월 ‘막장 드라마’가 펼쳐지고,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풍자와 해학이 넘쳐난다. 국민들은 마음속 불덩이로 촛불을 지피고, 불통의 가짜 왕에게서 나라를 되찾기 위해 광장으로 모여든다. 모 영화 커뮤니티 유저가 최근 개봉한 한국영화 몇 편의 제목을 패러디했던 ‘가려진 시간 속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더니, 아수라가 나타나 국민들이 곡성을 지른다. 더 이상 비밀은 없다. 우리들이 간다.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라는 문구처럼 말이다.

지난 주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나도 웹툰 작가 주군과 함께 서울 광화문 광장으로 향했다. 어마어마한 인파에 파묻혀 걷고 또 걸었다. 평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데 소극적인 주군은 이날따라 열성적이었다. 그 열의에 창작자의 울분이 섞여 있음을 알게 된 것은, 군중의 틈을 빠져나와 식당에서 허기를 달랠 때였다. 첫 웹툰 연재 이후 오랫동안 차기작을 준비해 온 그는, 새로운 작품의 연재 시작을 목전에 두고 대대적으로 스토리를 수정해야 할 상황에 처해 있었다. 바로 만화보다 더 만화 같은 현실 때문이었다. 더욱이 주군의 차기작 소재가 ‘정치판의 각종 권모술수에 관한 것’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훨씬 자극적이고 황당무계한 사건을 경험한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는 다소 시시할 것”이라는 편집부 의견에 그 역시 동의했다. 그러나 “작금의 현실을 풍자하거나 패러디하는 방식으로 가 보자”는 제안은 자신과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불편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주군의 고민이 남 일 같지 않아 나도 왠지 울적해지고 말았다. 시쳇말로 ‘창작은 현실을 뛰어넘지 못한다’고들 하지 않나. 더구나 뉴스가 그 어떤 허구적 설정보다 흥미로운 상황이라면, 대체 누가 창작품을 보려 할 것인가? 그러나 어쩌면 이것은 작가인 우리(나와 주군)가 가진 상상력의 빈곤함에 대한 핑계일지도 모르겠다.

다시 희극 작가 츠바키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그는 어떻게든 연극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 검열관 사키사카의 무리한 요구에 맞춰 극본을 수정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탈고를 거듭할수록 점점 더 재미있어지는 것 아닌가. 사키사카는 이를 통해 ‘진심으로 웃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어 조금씩 희극의 세계에 빠져 들어간다. 대립하던 두 사람은 어느새 함께 작품을 고쳐 가고, 그 결과 끝내주게 ‘웃긴’ 극본이 완성된다. 이 이야기는 일본 감독 겸 극작가 미타니 코키의 대표작인 연극 ‘웃음의 대학’ 줄거리다. 2008년 국내 초연 이후 꾸준히 사랑받아 왔고, 2004년 일본에서 동일한 제목으로 영화화되기도 했다. 극한 상황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더 뛰어난 작품을 완성한 츠바키는 이렇게 말한다. “이것이 상상(웃음)을 억압하는 시대에 대한 나 자신만의 싸움이다.”

나는 왜 주군에 대해 이야기하며 ‘웃음의 대학’ 속 츠바키를 떠올렸을까. 방금 전, 그러니까 이 칼럼을 쓰기 직전에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차기작 연재를 시작하게 됐다”는 소식이었다. 불과 며칠 만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그런 내 마음을 헤아리듯 주군이 말을 이었다. 고민 끝에 몇 가지 해결 방안을 생각해 냈고, 그것을 편집부에서도 마음에 들어했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전보다 완성도가 더 높아진 것 같다”고도 덧붙였다. 츠바키의 극본처럼. 그의 고민에 동질감을 느끼며 조금은 안심하고 있던 나에겐 꽤 충격적인 이야기였다(물론 축하는 하고 있다.) 결국 달라지지 않은 채 “현실이 어떻고, 시대가 어떻고…” 하며 한탄만 늘어놓는 건 나뿐인가.


글=조슬예 ‘잉투기’(2013) ‘소셜포비아’(2015) 등에 참여한 시나리오 작가. 남의 얘기를 듣는 것도 내 얘기를 하는 것도 좋아해 ‘아는 사람 이야기’까지 연재하게 됐다. 취미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수다 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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