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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상상력으로 만든 20세기 파리, 프랑스 애니메이션 '아브릴과 조작된 세계'

1940년대, 과학의 진보가 멈춰 버린 프랑스 파리가 배경인 애니메이션 ‘아브릴과 조작된 세계’(원제 Avril et le monde truque, 12월 15일 개봉, 크리스티앙 데마르·프랑크 에킨시 감독). 이 작품의 원작은 프랑스의 ‘국민 만화가’ 자크 타르디의 그래픽 노블 『조작된 세계』다. 하지만 크리스티앙 데마르 감독과 프랑크 에킨시 감독은 원작을 그대로 옮기지 않았다. 이들은 원작의 독창적인 세계관을 재미있는 상상력과 고전적 매력이 돋보이는 애니메이션으로 구현하기 위해 6년 넘는 시간을 투자했다. 지난 11월 ‘프렌치 시네마 투어 S.T.Dupont 2016’을 위해 한국에 온 데마르 감독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첫 연출작이라 부담이 컸지만, 역동적이고 창의적인 작업을 할 수 있는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전했다.
사진=영화사 진진

사진=영화사 진진

  
과학자들이 실종된 가상의 세계
‘아브릴과 조작된 세계’는 스팀펑크(Steampunk) 장르의 정수를 보여 주는 애니메이션이다. 대체 역사물의 하위 장르 중 하나를 일컫는 스팀펑크는, 증기기관 같은 과거 기술이 크게 발달한 가상의 과거나 현재·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우리에겐 ‘천공의 성 라퓨타’(1986,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스팀보이’(2003, 다카기 신지·오토모 가츠히로 감독) ‘하울의 움직이는 성’(2004,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등 주로 일본 애니메이션의 배경으로 익숙하다.

‘아브릴과 조작된 세계’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1931년 석탄과 증기기관만이 존재하던 파리에, 선대의 연구를 이어받아 비밀리에 연구 중인 과학자 부부가 있었다. 어느 날 그들이 납치되고, 어린 딸 아브릴(마리옹 코티아르)만 남게 된다. 10년 후 아브릴은 말하는 고양이 다윈(필리프 카터린느)과 함께, 그의 부모가 못다 이룬 비밀 연구를 이어 간다. 이 과정에서 부모의 납치 사건이 20세기 과학자들의 실종과 관련됐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아브릴은 조작된 세계 속으로 빠져든다.

이 애니메이션은 흥미로운 과학 연구와 아브릴의 모험이 주를 이룬다. 재미있는 것은 극의 배경은 1940년대지만, 말하는 고양이·로봇 쥐·불로불사의 약·외골격 로봇 등 2016년인 지금도 상상으로만 꿈꾸는 미래 과학이 등장한다는 것. 또한 극 중에는 파리와 대조되는 공간이 등장한다. 바로 납치된 과학자들이 사는 세계다. 그곳은 음울한 분위기의 파리와 달리 유토피아적 느낌이 감돌 정도로 밝다. 데마르 감독은 “전혀 다른 두 세계를 통해 과학의 진보와 환경 문제 등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영화사 진진

사진=영화사 진진

 
프랑스 ‘국민 만화가’의 상상력
자크 타르디의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1940년대 파리는 매우 흥미롭다. 세계 최고의 과학자들이 실종돼 과학의 진보가 이루어지지 않아, 석탄과 증기기관만이 존재하는 세계. 오염된 공기로 가득한, 어두운 분위기의 도시.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도시는 쌍둥이 에펠탑, 하늘 위로 다니는 비행 기구, 증기 자동차, 케이블카 등으로 가득하다. 거대한 놀이공원이 떠오를 정도다. 데마르 감독은 “극 중 등장하는 주요 조형물은 에킨시 감독의 아이디어를 타르디의 스타일로 만든 것이다. 스팀펑크 장르의 여러 요소가 이 영화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길 바랐다”고 말했다.

타르디는 배경 디자인 작업을 맡았을 뿐 아니라 캐릭터를 직접 그리는 등 ‘아브릴과 조작된 세계’에 애정을 쏟았다. 데마르 감독은 “타르디의 독특한 그림체를 애니메이션으로 구현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도전이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타르디가 잉크로 그린 그림의 느낌과 색감이 그대로 전해지도록, 그래픽으로 만든 이미지를 한 장 한 장 수작업으로 수정하며 수채화 질감의 섬세함을 살렸다”고 덧붙였다.

특히 데마르 감독은 타르디의 그림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그가 어떤 식으로 아이디어를 얻고, 어떤 자료들을 해석해 활용하는지 연구했다. 그리고 독일 표현주의를 대표하는 최초의 장편 SF영화 ‘메트로폴리스’(1927, 프리츠 랑 감독)를 참고하며 세계관을 넓혀 나갔다. “단순히 타르디의 그림 스타일을 재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핵심 아이디어를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또한 기술적으로는 그의 그림에 나타나는 특징과 선의 굵기, 색감 등 디테일한 요소들을 일관된 톤과 정서로 유지하며 그래픽을 구축하는 데 신경 썼다.” 데마르 감독의 말이다.
 
목소리와 캐릭터의 놀라운 싱크로율

대부분의 애니메이션은 완성된 작품 위에 배우들의 목소리 연기를 입힌다. 하지만 ‘아브릴과 조작된 세계’는 배우들이 목소리 연기를 먼저 하고, 이후에 작화를 추가했다. 배우들은 8분가량의 트레일러 영상과 간단한 그림을 본 후 시나리오대로 연기했다. 자신만의 세계를 상상하며, 스스로 역할을 구축하고 캐릭터에 몰입한 것. 이 때문에 데마르 감독은 “이 과정을 ‘더빙’이라 부르지 않는다”고 전했다. 배우의 목소리 연기가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구축하는 데 유용한 가이드가 됐기 때문이다. “배우들에게 최대한 자연스럽게 연기하도록 주문했다. 같은 시나리오임에도, 배우들이 우리가 구상했던 이미지와 전혀 다른 창의적 연기를 보여 주기도 해 흥미로웠다.” 그래서일까. 다윈의 느긋한 말투와 자세는 필리프 카터린느와 비슷하고, 에이블의 할아버지 팝스와 이를 연기한 장 로슈포르는 외모부터 행동까지 놀라운 싱크로율을 자랑한다.

우리에게 프랑스 애니메이션은 익숙하지도 않고, 접하기도 쉽지 않다. 데마르 감독은 “프랑스 애니메이션은 타르디처럼 독자성을 가진 그림 작가와 협업하는 경우가 많다”며 “‘작가주의 영화’라 불릴 만큼 고유한 정체성과 그림체, 세계관 등의 요소들이 다양하고 풍성한 것이 특징이다”라고 전했다. ‘아브릴과 조작된 세계’가 제39회 안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장편 대상을 수상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 데마르 감독은 “프랑스에서도 애니메이션을 어린이용으로만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다양한 장르, 깊이 있는 메시지, 어른들도 공감할 수 있는 세계관의 애니메이션이 많이 만들어지면 점차 인식이 바뀌지 않을까. 어른들이 애니메이션에 열광하도록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아브릴과 조작된 세계’는 제17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됐고, 지난 11월 ‘프렌치 시네마 투어 S.T.Dupont 2016’에 소개되며 한국 관객과 만났다. 데마르 감독은 “이 애니메이션이 지닌 메시지나 담론이 보편적이라 그런지, 한국 관객의 반응이 프랑스 관객과 비슷했다”며 “프랑스 애니메이션이 한국 관객에게 크게 사랑받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사진=영화사 진진

사진=영화사 진진

 

자크 타르디의 세계를 재현하기 위한 6년
1970~1980년대를 풍미한 그래픽 노블의 거장 자크 타르디는 제1차 세계대전, 프로이센 조약 등 역사 속 사건을 배경으로, 자신이 주장하고 싶은 가치를 사실적이고 호소력 있게 표현해 사랑받는 만화가다. 이 영화의 아이디어는, 훗날 영화의 밑그림이 된 몇몇 삽화들을 작가 뱅자맹 르그랑에게 보여 주면서 시작됐다. 르그랑은 영화 ‘설국열차’(2013, 봉준호 감독)의 원작 그래픽 노블 작가로도 유명하다. 이후 르그랑이 친분 있는 제작사 JSBC(Je Suis Bien Content) 대표이자 프로듀서 마크 주셋에게 연락하며 영화화가 구체적으로 논의됐다. 르그랑은 이 영화의 시나리오 작가로 참여했다. JSBC는 ‘페르세 폴리스’(2007, 뱅상 파로노드·마르얀 샤트라피 감독)로 2007년 제60회 칸국제영화제 심사위원상을 받는 등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제작사다. 평소 타르디의 만화를 좋아한 주셋과 데마르·에킨시 감독은 6년 넘는 시간을 들여 ‘아브릴과 조작된 세계’를 완성했다.

글=이지영 기자 lee.jiyoung2@joongang.co.kr, 사진=영화사 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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