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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세·재료·인건비 월 2000만원…‘속빈 강정’ 치킨집 김 사장

이젠 민생이다 <2> 치킨공화국의 그늘
외국계 대기업을 그만두고 치킨집을 운영하는 김영식(가명?35)씨는 새벽까지 장사를 한다. 하지만 생활비조차 남기지 못한다. 연말 특수는 사라졌고 오히려 조류인플루엔자(AI) 직격탄으로 배달 이 20% 줄었다. [사진 전민규 기자]

외국계 대기업을 그만두고 치킨집을 운영하는 김영식(가명?35)씨는 새벽까지 장사를 한다. 하지만 생활비조차 남기지 못한다. 연말 특수는 사라졌고 오히려 조류인플루엔자(AI) 직격탄으로 배달 이 20% 줄었다. [사진 전민규 기자]

#연봉 7000만원을 받으며 외국계 대기업에 다니다 자영업에 뛰어든 지 2년. 나(35)는 일하는 빚쟁이가 됐다. 매일 오전 2시까지 일해도 그렇다.

서울 장안동의 가게를 찾아온 친구들은 나를 ‘사장님’이라며 부러워한다. 100㎡(약 30평) 남짓한 프랜차이즈 치킨가게의 간판은 멀리서도 눈에 띈다. 맥주 한 잔 마시기 좋게 꾸며진 테라스와 유명 연예인의 광고 사진을 둘러보며 월급쟁이 친구들이 특히 부러워했다. 그럴 때마다 단호하게 말한다.

“속 빈 강정이야. 무조건 회사에 붙어 있어.”

이유가 있다. 가게 문만 열어 놓아도 매달 약 2000만원이 꼬박꼬박 빠져나간다. 임차료와 관리비 280만원, 인건비 600만원, 투자비용으로 빌린 대출금의 원금과 이자가 매달 130만원이다. 프랜차이즈 본사에 내는 물품비가 한 달에 약 1000만원이다. 생활비조차 건지지 못하는 달도 있다. 벌어서 비용으로 다 나가는 셈이다.
프랜차이즈 치킨은 동네 치킨집보다 수월할 줄 알았다. 착각이었다. 치킨 한 마리를 1만7000원에 팔면 본사에 지급해야 할 생닭 값과 광고비가 5400원이다. 소스와 포장박스비, 튀김용 기름 값은 별도로 약 1000원이다. 배달 직원 인건비를 줄이려고 외부 업체에 맡기는데 한 마리 배달에 2500원을 줘야 한다. 비나 눈이 오는 날에는 3000원이다. 매장 수가 늘고 본사 매출이 커진다는 소식을 들으면 분통이 터진다. 생활비 한 푼 집으로 가져가지 못할 때, 나는 누구를 위해 일하고 있는 것인지 헷갈린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지난달 다른 점주들을 만났다. 한 점주는 “본사에 줄 물품비를 대느라 고금리지만 어쩔 수 없이 사채를 빌렸다”고 했다. 특히 학교 주변의 치킨집들은 이른바 ‘김영란법’ 이후 직격탄을 맞았다. 교무실·교실로 배달해 달라던 학부모들의 단체 주문이 뚝 끊겼기 때문이란다.

치킨집을 열기 전, 지난해 호프집 장사를 시작했다. 젊을 때 10년만 고생해 아이들이 크기 전에 자리를 잡아 보자고 마음먹었다. 호기롭게 시작했지만 8개월 장사 끝에 남은 건 빚 5000만원. 여름에만 좀 장사가 될 뿐 빈 테이블을 채우기가 어려웠다. 빚도 갚고 다시 일어서자며 시작한 것이 치킨집이었다.

올해 처음 치킨집을 열었을 때 아내는 가게에 나와 재료를 나르며 도왔다. 아직 유치원생인 두 아들은 시급을 주고 남의 손에 맡겼다. 대기업 공채에 합격해 직장생활만 했던 나는 컴퓨터로 문서를 작성하는 대신 16~20㎏씩 나가는 생닭을 옮기고 닭을 튀겼다. 근처 배달은 직접 뛰었다. 아내도 나도 허리와 손목의 통증을 밤새 숨죽이며 앓았다.

요즘 오랜만에 이력서를 만지작거린다. 낮시간대라도 일을 할 수 있는 곳이 있을까 찾아보면서다. 최근 조류인플루엔자(AI)가 확산되면서 주문은 지난달보다 20% 뚝 떨어졌다. 불안감에 휴대전화로 AI 뉴스를 매일 찾아본다. 내년부터는 한 명 있던 직원도 그만두게 하고 아르바이트생만으로 운영하기로 했다. 힘들더라도 일단 내가 더 뛰어볼 도리밖에 없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는 언제쯤 끝이 날까. 성공해 책을 내겠다는 내 꿈이 바닥나기 전에 긴 터널의 끝이 보였으면 한다.
#서울에서 치킨집을 운영하는 김영식(가명·35)씨의 목소리를 통해 들여다본 2016년 12월 대한민국 자영업자의 현실이다. 국내 자영업자는 568만 명(올 3분기). 이들 중 김씨처럼 자영업 터널에 갇힌 사람이 늘고 있다. 통계청의 2014년 기업 생멸 통계에 따르면 연 매출액이 5000만원이 안 되는 영세 자영업자가 절반(56.7%)이 넘는다. 연 매출액 1억원 미만이 전체의 71.3%를 차지한다.

고용원 없이 장사를 꾸려 나가는 영세 자영업자 수도 늘었다. 지난 3분기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는 408만8000명으로 지난해 3분기(403만7000명)보다 1.3% 증가했다.
반면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진다. 은퇴자금으로 차리는 치킨집·고깃집 같은 외식업체의 경쟁이 특히 그렇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14년 기준 국내 외식업체 수는 65만1000개로 인구 78.8명당 한 개꼴이다. 60만7000개였던 2011년(인구 83.6명당 한 개)과 비교하면 3년간 연평균 7.2%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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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 한파는 자영업자들을 더 위축시킨다. 지난달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95.8로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4월(94.2) 이래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게다가 한국외식산업연구원이 지난달 23일부터 28일까지 전국 외식업체 479개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0곳 중 2곳(21.2%)은 김영란법 이전보다 매출이 줄었다고 답했다. 휴·폐업이나 업종 전환을 고려하고 있는 업체들도 26.9%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승재 소상공인연합회 회장은 “매출은 줄어드는데 대출 금리가 오르다 보니 소상공인들은 한계 상황에 봉착했다”며 “결국 폐업하는 자영업자들이 극빈층으로 추락하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글=성화선 기자 ssun@joongang.co.kr
사진=전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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