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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기는 음악 하려면 떠나라” 어려운 곡만 부르는 합창단

아마추어 합창단 ‘음악이 있는 마을’이 정기 연습을 위해 모였다. 현대 한국 작곡가들의 합창음악을 20년동안 부른 단체다. 앞줄 오른쪽 끝이 지휘자 홍준철. 창단 때부터 합창단을 이끌었다.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아마추어 합창단 ‘음악이 있는 마을’이 정기 연습을 위해 모였다. 현대 한국 작곡가들의 합창음악을 20년동안 부른 단체다. 앞줄 오른쪽 끝이 지휘자 홍준철. 창단 때부터 합창단을 이끌었다.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합창단 ‘음악이 있는 마을(이하 음악마을)’의 다음 공연은 내년 2월이다. 그 무대에서 부를 곡 ‘하얀 겨울의 하늘여행’을 요즘 연습하고 있다. 작곡가 강은수는 이 작품에서 높은 음을 많이 썼다. 하얀 함박눈이 하늘에 떠있는 풍경을 환상적으로 그려내기 위해서다.

지난 13일 저녁 합창단은 이 곡을 연습 중이었다. 노래를 중단시킨 지휘자 홍준철(58)씨의 첫 마디는 “거지 같아요”였다. 단원들은 너무 높은 음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고 어려운 리듬에 걸려 넘어졌다. 지휘자는 리듬·발음 처럼 세세한 기초를 우선 다듬었다.

음악마을은 아마추어 합창단이다. 공무원, 주부, 증권회사 직원, 사업가, 교사, 의사 등 다양한 사람이 노래한다. 음악 전공자도 있지만 50여명 중 10명 안쪽이다. 그러니 강은수가 2006년 만든 생소한 노래를 잘 부르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도 국내 대표적 합창 지휘자로 음악마을 창단부터 함께한 홍씨는 “공연 완성도로 보면 프로 합창단보다 잘한다”고 단언했다. 별 다른 비법이 아니라 오로지 연습 덕이다. 이들은 1996년 창단 이후 매주 1회 이상 연습했다. 2006년까지는 주2회였다. 연주 계획이 있든 없든 무조건 두세시간씩 연습한다.

무엇보다 어려운 노래를 일부러 골라 부르다보니 연습을 안 할 수 없다. 창단할 때 정체성이 ‘새로 나온 창작곡을 부르는 합창단’이었다. 현대 작곡가들이 만들고 있는 합창곡이 무대에서 불릴 일 없이 잊히는 현실 때문이었다. 20년동안 작곡가 36명에게 작곡을 의뢰했고 총 300여곡의 합창곡을 초연했다. 또 외환위기, 세월호 참사 등 시대에 맞는 새 노래들을 불렀다.

뜻은 좋지만 현대 합창음악을 부르기는 어렵다. 리듬·박자가 복잡하고 음정도 까다로워 웬만한 프로 합창단도 틀리기 쉬운 곡이 많기 때문이다. 홍씨는 “즐기는 음악을 할 생각이면 합창단을 떠나라고 할만큼 혹독하게 어려운 곡들을 해왔다”고 말했다. 어려운 곡 부르기로 소문난 합창단인데도 매년 10여명씩 새로 뽑는 단원 오디션의 경쟁률은 보통 2대1을 넘긴다. “처음 나온 곡들이라 듣고 따라할 CD도 없으니 너무 어려운데, 공연을 하고나면 불가능을 정복한 듯한 성취감에 중독돼 활동을 계속하게 된다”는 게 단원 공진성씨의 말이다. 창단 멤버로 20년 활동한 단원, 합창 연습에 오느라 근무 시간표도 바꾼 사람, 연습 때마다 지방에서 올라오는 이들이 대표적 ‘합창 중독자’다.

아마추어 합창단이지만 사실은 한국 음악계의 큰 인물들이 만들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의 1·2대 총장인 이강숙·이건용 작곡가가 각각 단장·음악감독이다. 이들은 1996년 제대로 된 창작곡 합창단이 없다는 문제의식으로 음악마을을 창단했다. 합창단 이름은 이강숙 전 총장의 호 악촌(樂村)에서 따왔다. 그러나 운영은 아마추어들의 ‘맨몸 정신’으로 한다. 기업·공공기관의 행사에 초청돼 받는 출연료와 후원회의 도움으로 정기공연 제작 비용을 거의 충당하고 있다.

돈 문제, 공연장 문제로 20주년 음악회가 한 해 늦춰져 내년 2월 26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다. 그래도 아마추어 특유의 정신을 살려 무대를 계획하고 있다. 프로그램북에는 20대 막내 단원이 초대의 글을 쓰고 반주자가 감사의 글을 쓴다. 쟁쟁한 작곡가인 단장과 음악감독은 뒤로 빠져있다. 홍씨는 “우리 합창단의 기본 정신인 ‘평범한 사람들로부터의 변화’를 보여주고 싶어서”라고 말했다.

글=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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