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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속으로] 검찰 출신이 독점한 ‘왕수석’ 바람 잘 날 없었다

박근혜 정부 민정수석 잔혹사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청와대 민정수석이 박근혜 정부 들어 줄줄이 곤욕을 치르고 있다. 박 대통령 임기 3년10개월 동안 지난 9일 임명된 조대환 신임 수석까지 벌써 6명째 검사 출신 민정수석이 나왔다. 이전 5명(곽상도·홍경식·김영한·우병우·최재경)의 평균 재임기간은 9개월 남짓. 역대 정부에서 민정수석이 임기 5년 동안 평균 3~4명 정도였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 정도면 ‘민정수석 잔혹사’라는 말이 나올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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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민정수석은 정권의 ‘칼’이자 ‘방패’다. 산하에 민정·공직기강·법무·민원 등 4명의 비서관이 있다. 비서관 명칭만으로는 그 위상을 짐작하기 어렵다. 하지만 실제 업무내용을 들여다보면 민정수석실의 위세는 청와대 비서실 내 다른 모든 수석실을 능가하는 사실상 ‘상원 수석실’이다.
민정수석실의 힘은 정보와 인사에 있다. 민정수석실에는 4대 권력기관(검찰·경찰·국세청·국가정보원)에서 생산한 각종 정보가 모인다. 각 권력기관에서 수석실에 파견된 최정예 행정관들이 통로 역할을 맡고 있다. 수집된 정보는 동향보고서 등의 형태로 대통령에게 보고돼 국정 운영의 판단자료로 쓰인다. 2014년 12월 정윤회 문건 유출 파문 당시 유출된 보고서들도 이 중 하나다.

검찰·경찰·국세청·국정원 정보 집결
대통령에 인사 대상자 검증해 보고
막강한 권한 때문 질시와 반목 심해
비선 실세 인사에 개입 통로 되기도

곽상도·홍경식, 인사 문제에 휘말려
김영한, 정윤회 문건 탓 사퇴 후 숨져
우병우, 최순실 국정농단 개입 의혹
최재경, 탄핵으로 40일 만에 물러나


1차적으로 보고서에 담길 내용을 취사선택하는 과정에서 민정수석실의 권력이 발휘된다. 넣어야 할 정보는 빼고, 빼야 될 정보는 넣는 방식으로 대통령의 의사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직 청와대 관계자는 16일 “작성자의 의도에 따라 균형 잡힌 보고서도, 편향된 보고서도 생산할 수 있다”며 “민정수석실 보고서는 살아 있는 현장 정보를 바탕으로 작성된 것이어서 대통령 입장에서는 다른 수석실 보고서보다 눈에 쏙쏙 들어올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거꾸로 대통령의 판단에 필요한 정보를 주문 생산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여기서 또 한 번 민정수석실의 권력이 만들어진다. 정보수집 과정에서 부처와 각종 공공기관의 주요 인사들은 민정수석실에 잘 보여야 하는 ‘을(乙)’의 입장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역대 정부마다 논란이 됐던 민간인 사찰 문제가 불거질 수 있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수요자의 입맛에 맞는 정보를 찾는 과정에서 무리수를 두거나 심지어 민간인까지 조사하는 위법행위를 하는 경우도 있었던 것이다.

인사는 민정수석실 파워의 또 다른 원천이다. 청와대 내 인사 관련 주무부서는 인사수석실이다. 하지만 인사수석실이 1차로 후보자를 스크린하면 민정수석실은 대상자들의 업무능력·평판 등에 대한 검증보고서를 첨부한다. 이 과정에서 긍정적인 부분을 부각하거나 부정적인 내용을 슬쩍 끼워 넣을 수 있다. 정권 실세 또는 비선 실세들이 인사에 개입할 수 있는 통로가 되는 셈이다. 고만고만한 후보자들이 경쟁하는 상황에서 사실상 대통령의 인사 관련 의사결정을 좌지우지할 수 있게 된다. 특히 인사에 목을 매야 할 공무원에게 자신들의 인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민정수석실은 수퍼 ‘갑(甲)’이다.

역설적으로 강력한 권한 때문에 민정수석은 늘 질시와 반목의 대상이었다. 또 다른 전직 청와대 출신 고위 인사는 “인사는 기본적으로 최종 1명이 낙점되면 나머지 경쟁후보들이 적(敵)으로 돌아서는 구조”라며 “이 때문에 인사검증 업무를 담당한 민정수석은 견제가 심해 다른 수석에 비해 단명하는 측면이 있는데 박근혜 정부에서는 좀 심한 편”이라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 첫 민정수석을 지낸 곽상도 전 수석(새누리당 대구 중-남구 의원)은 임명 직후부터 풍파에 시달렸다. 정권이 들어서자마자 김종훈 전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 황철주 전 중소기업청장 내정자가 취임도 하기 전에 물러난 데 이어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성접대 동영상 파문까지 겹쳤다. 정부 출범 직후부터 장·차관급 고위 인사들이 줄줄이 낙마하자 여당에서조차 “인사검증 시스템에 구멍이 뚫렸다”는 지적이 나왔다.

곽 전 수석을 결정적인 궁지에 몰아넣은 것은 국가정보원 댓글 수사 개입 의혹이었다.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를 비판하는 인터넷 댓글을 단 국가정보원 직원들에 대한 검찰 수사를 곽 전 수석이 막았다는 것이다. 결국 곽 전 수석은 반 년 만에 물러났다. 그는 사임 후에도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자(婚外者) 보도와 관련해 채 전 총장을 사찰했다는 의혹까지 받았다.

곽 전 수석의 뒤를 이은 홍경식 전 수석도 인사 문제에 휘말려 1년을 채 버티지 못했다. 세월호 참사 책임으로 물러난 정홍원 국무총리 후임으로 지명된 문창극·안대희 후보자가 연이어 낙마하면서다. 특히 안 후보자의 변호사 시절 고액 수임료가 문제가 됐고 민정수석실이 이를 인사 검증 과정에서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다는 의혹도 샀다.

구원투수로 투입된 고(故) 김영한 전 수석은 박근혜 정부에서 비운의 아이콘이 됐다. 2014년 12월 ‘정윤회 문건’ 파동과 관련해 문건 유출자를 회유했다는 의혹을 받은 김 전 수석은 2015년 1월 국회 운영위원회 출석을 거부하며 스스로 사의를 표명했다. 김기춘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으로부터 국회 출석을 지시받았지만 “차라리 사퇴하겠다”며 응하지 않은 것이다. 김 전 수석의 항명성 사퇴는 청와대 공직기강에 대한 의문과 함께 정치권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일각에서는 김 전 수석의 사퇴가 우병우 당시 민정비서관과 김 전 실장 간의 ‘핫라인’에 대한 불만 때문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김 전 수석은 지난 8월 간암 투병 중 사망했다. 그가 청와대 수석 시절 기록한 업무일지는 최근 청와대가 최순실씨 국정 농단에 개입했음을 증명하는 중요 참고자료로 활용되기도 했다.

김 전 수석의 후임은 ‘청와대 실세’로 불린 우병우 전 수석이다. 우 전 수석은 2015년 2월부터 올 10월까지 약 1년8개월을 재직해 박근혜 정부에서 가장 오랫동안 민정수석으로 일했다. 하지만 처가의 부동산 고가 매도 관여, 가족회사 자금 횡령, 아들의 병역 의혹 등이 제기되면서 야권으로부터 사퇴 압박을 받았다.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코끼리가 죽을 때까지 바늘로 찌르겠다”며 매일 오전 회의 때마다 137일 동안 연속으로 우 전 수석 사퇴를 촉구했다. 우 전 수석은 사퇴 요구에 응하지 않고 국회의 국정조사 출석도 거부하면서 야권과 맞섰다. “역시 실세는 실세”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박 대통령도 10월 24일 시정연설차 국회를 방문해 야당 대표들과의 면담에서 “의혹만 갖고 어떻게 자르나”며 우 전 수석을 옹호하기도 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시정연설 후 JTBC의 최순실씨 태블릿 PC 보도가 터지면서 우 전 수석의 기세는 급격하게 꺾였다. 결국 우 전 수석은 ‘문고리 3인방(정호성·이재만·안봉근 전 청와대 비서관)’과 함께 10월 30일 사퇴했고, 일주일 뒤인 11월 6일 자신의 친정인 검찰에 출석했다. 이후 돌연 행방을 감추고 국회 최순실 국정 농단 국조특위 청문회 증인출석을 거부해 야당으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았다. 야당의 전·현직 의원들은 그의 행방에 현상금을 내걸기도 했다. 불과 2달 전만 해도 기세등등했던 정권 실세의 초라한 말로(末路)였다.

박 대통령의 2선 후퇴 요구가 거세진 시점에서 임명된 최재경 전 수석은 불과 40일이 채 안 돼 물러나 청와대 최단기 민정수석으로 기록됐다. 박 대통령이 당초 약속을 뒤집고 지난달 20일 “검찰 조사에 응하지 않겠다”고 밝힌 뒤 사의를 표명한 최 전 수석은 청와대의 만류로 업무를 지속했지만, 지난 9일 국회에서 박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자 결국 사임했다.
 
[S BOX] 조대환 신임 수석, 검찰 비판 글 등 벌써부터 논란
조대환 현 청와대 민정수석.

조대환 현 청와대 민정수석.

조대환 현 청와대 민정수석은 박근혜 정부의 마지막 민정수석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가 임명된 지난 9일은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한 날이다. 조 수석은 탄핵 정국이라는 비상 시기에 등판했지만 무대에 오르는 순간부터 스텝이 꼬였다.

임명 전인 지난 10월 21일 최순실 게이트 수사와 관련해 ‘검사의 무능’이라는 제목의 글로 검찰을 비판한 데 이어 11월 5일에도 “뇌물(그것도 공갈성)을 직권남용으로… 아직도 멀었다. 전두환 비자금 사건 기록을 참고하면 바로 답이 나올 것”이라며 미르·K스포츠재단 모금을 뇌물죄로 봐야 한다는 취지의 글을 올린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을 빚었다. 지난 8월 28일에는 우병우 전 민정수석을 ‘향원(鄕愿·양민을 괴롭히던 토호)’으로 지칭하고 “향원은 한마디로 ‘사이비’다. 똑똑한 척하고 겉으로 인기는 좋은데 사실은 문제 인물”이라고 말한 것도 확인됐다. 이에 대해 조 수석은 “사적인 공간의 사적인 글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행위는 적절치 않을 뿐 아니라 위법행위”라고 주장했다.

조 변호사는 2014년 12월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부위원장 겸 사무처장을 맡으면서 세월호 특조위 해체와 이석태 특조위원장의 사퇴 등을 촉구한 전력 때문에 시비가 일기도 했다. 그는 특조위가 본격 가동되기 전인 지난해 7월 사퇴했다.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12일 조 수석에 대해 “역시 박 대통령은 마지막까지 인사를 실패하는 모습을 보이고 떠난다고 생각했다”고 비난했다. 유성운 기자
  차세현·유성운 기자 cha.seh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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