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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예술 - 미술] 톰과 제리, 누가 갑인가

이주헌 미술평론가

이주헌
미술평론가

만화영화 ‘톰과 제리’를 좋아하는 이라면 서울 강남의 갤러리로얄에 꼭 들러보기를 권한다. 톰과 제리를 유화로 그린 ‘유민석’전(내년 2월 12일까지)을 만날 수 있다. 톰과 제리의 전형적인 갈등과 다툼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화포(畵布)마다 쫓고 쫓기는, 혹은 골탕을 먹이거나 잔꾀에 당하는 모습이 줄줄이 이어진다. 이 모든 게 익숙하고 친근하다. 다소 이질적인 부분이 있다면 흑백이나 컬러로 그려진 하이퍼리얼리즘 형식의 배경이다. 만화가 아니라 회화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표식이자 ‘생각하는 예술’임을 암시하는 장치다.

갤러리로얄 ‘유민석 유화전’


누구나 알 듯 톰과 제리는 끝없이 다툰다. 덩치가 크고 힘이 세지만 어리석은 톰은 이른바 ‘갑’을 상징하는 존재다. 몸집이 작고 힘은 없지만 꾀 많은 제리는 ‘을’을 대변한다. 톰은 힘으로 제리를 제압하려 하나 제리는 오히려 이를 역이용해 항상 톰을 골탕 먹인다. 현실에서 늘 을의 입장일 수밖에 없는 대다수 시청자는 그래서 제리를 응원하고 제리의 승리에 기뻐한다.

하지만 여기에 함정이 있다. 현실과 달리 만화영화에서 승자는 늘 제리이기 때문이다. 제리는 심지어 물리적인 학대까지 가하며 톰에게 통쾌하게 승리한다. 그러니까 만화영화에서는 항상 제리가 갑이고 톰이 을이다. 이 갑을 관계의 전복을 의식하게 된 시청자는 때로 제리보다 톰을 응원하는 ‘전향’의 경험을 하게 된다. 물론 톰과 제리 가운데 누구를 응원하든 그 배경에는 사회에서 늘 을일 수밖에 없는 대다수 시청자의 자기 연민이 자리하고 있다. ‘정의롭지 못한 사회’로부터 받아온 ‘부당한 억압’이 부지불식간 감정적 연소(燃燒)의 기회를 맞는 것이다.
유민석의 유화 ‘여기는 내 세상이야’(부분). 만화영화에서는 늘 제리가 톰을 이긴다. [사진 갤러리로얄]

유민석의 유화 ‘여기는 내 세상이야’(부분). 만화영화에서는 늘 제리가 톰을 이긴다. [사진 갤러리로얄]

유민석은 톰과 제리의 기저에 깔린 이런 사회심리학적인 응어리와 통증을 새삼 되돌아보게 한다. 유민석의 성찰이 더욱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것은, 작금의 우리 현실이 이와 밀접해 보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권력의 원천인 국민은 갑이고 그 권력을 위임받은 정치인은 을이다. 을은 갑을 섬기며 갑이 원하는 것을 대행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을이 갑의 권리를 유린하고 갑이 위임한 권력을 저열하게 농단하는 일이 버젓이 벌어진다. ‘최순실 게이트’가 대표적 사례다.

국민들이 최순실 게이트를 더욱 뜨악하게 여기는 것은, 대통령이 국민의 신임을 배신함으로써 둘 사이의 갑을 관계를 뒤엎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가, 청와대라는 막 뒤에서 국민이 합법적으로 권력을 위임한 대통령이 을의 구실을 했고 그 권력을 불법적으로 사용한 사삿사람 최순실이 갑 노릇을 했다는 데 있다. 현실이 기상천외한 막장드라마로 치달으니 쥐가 늘 고양이를 제압하는 ‘톰과 제리’조차 이제 더 이상 비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만화는 요지경 세상이라고 한다. 세상의 질서가 뒤죽박죽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이 더 요지경인 세상이 오늘의 대한민국이 아닌가 싶다. 유민석의 톰과 제리는 그 요지경을 더욱 선명히 들여다보게 한다.

이주헌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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