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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폭발했다! 여여 케미

‘여여(女女) 케미’. 사람과 사람 사이의 화학 반응(Chemistry)을 일컫는 신조어 ‘케미’가 그동안 영화나 TV 드라마 속 여성들에게서 보인 경우는 드물었다. 남남(男男) 혹은 남녀(男女) 케미라면 몰라도. 왜냐하면 ‘남성 영화’ 혹은 남녀 주인공 중에서도 남성 캐릭터에 조금 더 비중을 둔 작품이 대부분이라서다. 올해 국내 박스오피스만 살펴봐도 그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 50위권에 포함된 영화(12월 12일 집계 기준) 중 ‘여성 영화’라 부를 만한 한국영화는 ‘아가씨’(6월 1일 개봉, 박찬욱 감독)와 ‘굿바이 싱글’(6월 29일 개봉, 김태곤 감독) 정도다.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덕혜옹주’(8월 3일 개봉, 허진호 감독) ‘범죄의 여왕’(8월 25일 개봉, 이요섭 감독) ‘죽여주는 여자’(10월 6일 개봉, 이재용 감독) 등은 나름 성과를 거뒀지만, 여성 간의 ‘호흡’을 그린 작품은 아니었다. 올해 가을과 겨울에 차례로 개봉한 ‘여여 케미’가득한 영화가 반가운 이유다. 이 작품들에서의 여성 배우와 여성 캐릭터 활용 그리고 그들이 뿜어내는 에너지를 눈여겨보자. 그것이 곧 한국영화가 모색해야 할 길일 터이니.

한국영화·TV 드라마 속 여성 캐릭터 '케미' 분석

-걷기왕|백승화|심은경, 박주희|10월 20일 개봉
만복(심은경) ‘선천적 멀미 증후군’으로 어떤 교통수단도 탈 수 없는 여고생이다. 만복은 담임 선생님의 권유로 경보를 시작하게 된다. 난생처음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지만, 그것 또한 참 쉽지 않다.

수지(박주희) ‘수파르타’라는 별명으로 불릴 만큼 독한 육상부 대표 선수. “목숨 걸고 해도 제자리를 지키는 게 힘든데 장난처럼 한다”는 이유로, 매사에 천하태평인 만복을 답답해 한다.
 
★티격태격하다 ‘절친’으로 발전하는 ‘여여 케미’
‘걷기왕’은 자신만의 속도를 찾아가는 만복의 유쾌한 성장기인 동시에, 만복과 수지의 ‘워맨스(우먼(Woman)과 로맨스(Romance)를 합친 신조어)’를 다룬 드라마다. 극 중에서 수지는 “다 정신력 문제야. 못하는 게 어디 있어?”라는 말을 달고 살며 만복을 구박한다. 그렇지만 힘든 순간에 옆에서 함께 걷는 ‘츤데레’ 선배이기도 하다. 만복 역시 자신을 들들 볶는 수지를 원망하지 않는다. 그 대신 수지를 닮고 배우려 애쓴다. 여성들의 우정을 남성의 조력이나 방해 없이 온전히 담아낸 좋은 예. 이 영화의 공감 지수를 높인 데는 주인공 심은경의 건강한 매력이 한몫했다. 그는 ‘수상한 그녀’(2014, 황동혁 감독)의 흥행으로 20대 여성 배우로서 독보적 입지를 확보한 바 있다. 여기에 심은경과 호흡을 주고받은 박주희의 탄탄한 연기력도 주목할 만하다.

-미씽:사라진 여자|이언희|엄지원, 공효진|11월 30일 개봉
 
지선(엄지원) 이혼 후 딸 다은(서하늬)을 혼자 키우는 워킹맘. 늘 일에 시달리느라 보모 한매의 도움 없이는 아이를 돌보기 힘든 상황이다. 어느 날, 그토록 믿었던 한매가 아이를 데리고 사라졌다.

한매(공효진) 감쪽같이 사라진 조선족 출신 보모. 서서히 드러난 한매의 삶에는 해외 이주 여성이기에 낯선 땅에서 겪어야 했던 고통과 비밀이 숨어 있다.

★미스터리로 시작해 공감으로 마무리하는 ‘여여 케미’
‘미씽:사라진 여자’(이하 ‘미씽’)는 아이를 빼앗긴 지선이 보모 한매와 딸 다은의 행방을 쫓는 영화다. ‘대체 왜 한매는 지선의 아이를 데리고 사라졌을까?’ 이런 의문을 불러일으키며 강한 미스터리로 단숨에 관객을 몰입시킨다. 건달(박해준)이나 형사(김희원) 같은 몇몇 남성 캐릭터가 등장하지만, 극의 중심은 단연 지선과 한매다. 두 명의 여성이 이끄는 스릴러영화가 기존 한국 영화계에 매우 드물었던 것은 사실. ‘미씽’은 이런 ‘그림’이 충분히 가능함을 증명했다. 그 바탕에는 여성 작가의 시나리오를 여성 감독이 연출했기에 담아낼 수 있었던, 아주 현실적인 한국 여성의 삶이 녹아 있었다. 이언희 감독은 magazine M과의 인터뷰(192호)에서 “지선과 한매가 서로 복잡한 감정을 느낄 거라 생각했다. 한매에게 지선은 큰 고마움을 느끼지만, 그렇다고 ‘고용주와 보모의 관계를 현실적으로 완전히 넘어서지는 못했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만큼 복잡한 관계에 놓인 두 인물은, 여성이기에 공감할 수 있는 마음으로 상대를 이해하게 된다. 특히 클라이맥스에서는 각자의 자리에서 공력을 쌓아 온 엄지원과 공효진의 연기가 아낌없이 빛났다.

-연애담|이현주|이상희, 류선영|11월 17일 개봉
윤주(이상희) 미술 공부 중인 윤주는 늘 연애에 시큰둥하다. 졸업 전시 준비 도중 우연히 지수를 만나게 되고, 자꾸만 그에게 마음이 향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지수(류선영)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잇는 지수. 신분증 없이 들른 편의점에서 선뜻 자신에게 담배를 내민 윤주에게 호기심을 갖는다.

★아주 보통의 커플처럼 사랑하는 ‘여여 케미’
상업 영화에서만 남자들이 중심이었던 것은 아니다. 퀴어영화에서도 남성들의 사랑을 그린 빈도가 훨씬 높았다. 이현주 감독도 그 점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한국 여성 퀴어영화는 남자들의 동성애를 다룬 작품에 비해 수도 적고 현실적인 이야기도 드물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그렇기에 ‘연애담’은 올해 한국 영화계에서 길어 올린 반짝이는 발견이다. 두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점도 그렇지만, 성별을 뛰어넘어 가장 보편적인 연애의 과정을 세밀하게 담아냈다. 그러면서도 여성과 여성이 사랑하기 때문에 부딪힐 법한 현실적인 문제들을 담담히 들여다본다. 그 덕분에 윤주와 지수의 특급 케미가 폭발했다. 이상희와 류선영의 연기는 보고 또 보아도 좋을, 올해의 ‘여여 케미’ 대상감이다.

-불야성|이재동|이요원, 진구, 유이|방영중(MBC)
이경(이요원) 일본에서 거대한 부를 일군 아버지에게 혹독한 후계자 수업을 받은, 피도 눈물도 없는 냉정의 화신. 야망을 품고 한국으로 건너와 S파이낸스를 설립했다. 자신과 똑 닮은 세진을 만나 차근차근 성공의 비법을 가르치기 시작한다.
세진(유이) 찢어지게 가난해 온갖 아르바이트를 전전하지만 강단 있는 ‘흙수저’다. 우연히 마주친 이경이 자신의 운명을 바꿔 줄 사람임을 직감하고, 그와 손을 잡는다.

★거울처럼 닮은 여자들의 욕망이 더해진 ‘여여 케미’
여성의 욕망이 TV 드라마 주제가 되는 것은 흔한 일이다. 문제는, 대부분의 작품에서 그 욕망이 남성을 통해서만 실현 가능했다는 점이다. 부유하거나 ‘스펙’ 좋은 남자를 통해 신분 상승을 꿈꾸는 여주인공. 이런 설정은 흔해도 너무 흔하지 않은가. 그러나 ‘불야성’은 조금 다르다. 권력 암투의 중심에 두 여성이 있다. 물론 ‘성별만 바꾸었을 뿐 뻔한 남성적 세계에 바탕을 둔 드라마’라는 지적이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여성이 주도적으로 극의 흐름을 좌우한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줄 만하다. ‘여여 케미’가 폭발하는 부분은, 이경에게 배신감을 느낀 세진이 위기 속에서 당돌히 맞서는 2화의 한 장면. 어떤 삼각관계 없이, 오로지 두 여성의 주체적 욕망만이 폭발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임주리 기자 ohma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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