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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카스트로 이후의 쿠바와 한국

곽재성 경희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

곽재성
경희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

피델 카스트로의 사망으로 다시금 쿠바가 주목받고 있다. 1959년 1월 1일 혁명동지 체 게바라와 함께 바티스타의 25년 독재를 종식시킨 피델은 이후 50년간 쿠바를 이끌었다. 2008년 건강을 이유로 동생인 라울에게 권력을 이양했지만 영원한 지도자로서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혁명 이후 카스트로 형제의 집권기는 그야말로 살아 있는 20세기 현대사 그 자체이다. 피델은 집권하자마자 기득권 세력들에게 쿠바를 떠날 기회를 주었다. 대부분 교육받은 엘리트층인 이들은 플로리다로 망명한 뒤 맨주먹으로 재기하여 오늘날 미국 히스패닉 사회의 주류 계층을 형성했다. 이들은 미국의 대쿠바 봉쇄를 뒷받침하는 막강한 세력으로 성장하게 된다. 한편 혁명 세력은 자본가들로부터 몰수한 재산을 국민들에게 나눠줘 사회주의에 대한 폭넓은 지지를 이끌어낸다. 이에 자극받은 케네디 정부는 10년간 무려 200억 달러의 예산을 지원해 중남미 사회 개발 프로그램인 ‘진보를 위한 동맹’을 가동했다.

개방과 시장화 속도 빨라지고
좌파 집권 퇴조해 한국에 유리
식량 자급, 양질 의료 등 장점은
미래 북한 개발 구상에 원용해야


그런데 분배에 치중했던 쿠바의 사회주의도 별다른 성장동력을 찾지 못하게 된다. 설탕 외엔 마땅한 외화 가득원이 없어 어려움을 겪던 쿠바는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원했지만 애초부터 자주 혁명과 미국과의 공존은 불가능했다. 결국 카스트로는 스스로 마르크시스트임을 선언하고 쿠바를 소비에트 진영에 편입했다. 62년 쿠바 미사일 사태는 세계를 제3차 세계대전의 위기로 끌고 갔지만 소련이 물러섰기 때문에 흐루쇼프는 실각한다. 위기의 재발을 막기 위해 백악관과 크렘린 간에는 소위 ‘핫라인’이라고 하는 직통전화가 개설됐고, 양국은 전면적 화해 모드, 즉 데탕트로 진입하게 된다.

본격적인 쿠바의 위기는 90년대 초반에 찾아왔다. 소련이 몰락하고 사회주의권이 해체되자 더 이상 쿠바의 뒤를 봐줄 후견인이 사라진 것이다. 소련으로부터의 원유 지원이 끊기자 바로 에너지 부족 현상이 도래했다. 소련이 국제 가격의 세 배에 사주던 설탕 수출도 급감해 외환 부족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이에 피델은 94년 “원하지 않지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조치”를 취해 제한적 자유화를 시행하게 된다. 외환 송금 자유화, 자영업의 제한적 허용, 사회주의를 포기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본주의적 요소를 가미한 개혁·개방 조치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러권과 페소권으로 이분돼 불평등이 심화된 국가 경제는 점점 비정상으로 흐르고 있었다. 때마침 베네수엘라 차베스 정권이 등장해 쿠바의 의사와 베네수엘라의 원유를 교환하는 생존 전략을 폈지만 유가 급락에 따른 베네수엘라의 경제적 혼란으로 더 이상 지속될지는 의문이다. 외부적 지원에 의존한 쿠바의 생존은 여기까지인 듯하다.
쿠바의 진짜 변화는 이제 시작이다. 중국처럼 사회주의 이념을 지키면서 시장 원리를 도입하려고 하지만 지도층의 세대교체가 임박했고, 외부의 후견자도 이젠 없다. 더욱이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따라 그동안 불가능했던 미국 기업 진출, 관광객 유입이 가속화되고 있어 생각보다 자본주의화는 빠르게 진행될 것이다. 트럼프가 되돌리겠다고 큰소리쳤지만 그 역시 사업가인지라 쿠바와의 해빙 모드에 편승해 사업 기회를 엿보게 될 것이다. 앞으로 쿠바는 어디로 갈 것인가?

첫째, 쿠바 사회주의 모델의 유효성이 퇴색해 중남미 전체의 이데올로기 지형에 영향을 줄 것이 확실하다. 마침 지난 20년간 중남미 정치를 이끌어 온 핑크 타이드(좌파 바람)도 퇴조하고 있다. 한국 경제의 성장동력을 되살리는 차원에서 중남미 비즈니스 환경이 전반적으로 호전되리라는 기대를 가져도 좋겠다.

둘째, 카스트로 형제로 대표되는 혁명 1세대의 퇴진이 가시화되면서 한·쿠바 수교의 유일한 걸림돌이었던 북·쿠바 관계가 예전 같지 않을 것이다. 이미 한국과 쿠바는 빠르게 가까워지고 있다. 쿠바로 향하는 관광객이 해마다 늘고 있고, 상품 교역과 인프라 프로젝트 등 다양한 비즈니스도 시작됐다. 정부의 경제발전 경험 지식 공유(KSP)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의 산업발전 경험도 전수 중이다. 착실하게 준비하면 한·쿠바 수교도 머지않았다. 그 중간 단계로 제3국 대사관에 서로 이익대표부를 설치하는 수순도 한 방법이다.

셋째, 쿠바의 경험을 미래의 북한 개발에 활용해야 한다. 쿠바는 농산물 자급률이 40%밖에 되지 않던 시점에 미국의 경제 봉쇄로 먹고살기가 어려워졌다. 대안으로 유기농업을 시작했는데, 현재 자급률이 105%에 달한다. 곳곳에 크고 작은 텃밭이 조성돼 있고 집집마다 퇴비장이 있을 정도로 유기농업이 일반화돼 있다. 또한 쿠바는 2014~2015년 서아프리카에서 전개된 에볼라 퇴치 노력에 대규모 의료진을 파견하는 등 의료 강국이 돼 있다. 그 바탕은 오랜 시간 구축해 온 저예산 고효율 의료인력 양성 시스템에 있다. 이런 쿠바의 경험을 사회주의의 유산이라고 막무가내로 배격할 것은 아니다. 개도국과의 개발협력을 선진화하고 미래의 북한 개발을 구상해야 하는 우리로선 시사점이 매우 큰 대목이다.

곽재성 경희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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