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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하러 슬픔을 숨길까

정경화의 ‘바흐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 음반.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무대가 그렇게 넓은 줄 예전엔 미처 몰랐다. 말러나 쇼스타코비치의 대편성 곡을 연주할 때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좀 더 넓게 설계하지 그랬나 하는 생각도 했다. 백건우나 손열음의 독주회 때도 검고 웅장한 스타인웨이 피아노의 위용 덕분인지 무대가 휑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런데 보면대와 의자, 포디엄까지 완전히 치워진 무대는 운동장처럼 넓었다. 게다가 청중은 합창석까지 가득 차 텅 빈 무대에는 열기 띤 긴장감이 감돌았다.



[an die Musik] 정경화의 '바흐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

그 무대로 바이올린을 든 연주자가 걸어 나왔다. 정경화 선생이다. 칠순을 바라보는 ‘바이올린의 여제’는 넓은 무대를 천천히 가로질렀다. 뜨거운 박수가 잦아들자 홀은 정적에 휩싸였다. 선생은 어깨 넓이보다 약간 넓게 양 발을 벌리고 섰다. 무대로 걸어 나올 때 불안하게 흔들리던 몸은 바위 같은 안정감을 찾았다. 비둘기색의 얇은 원피스와 같은 색의 통굽 신발은 완벽한 연주를 위한 도구일 뿐 멋을 부린 흔적이 없다. 무대에 오를 때 차림이 지나치게 수수하다는 지적에 “바이올린이 최고의 보석인데 다른 것이 왜 필요하느냐”고 반문했던 그다.



바흐 연주를 위해 선택한 보석 스트라디바리우스를 어깨에 얹고 오른손에 잡은 활을 앞으로 비스듬히 늘어뜨렸다. 그것은 목숨을 건 대결을 앞둔 검객의 자세였다. 손가락 부상을 극복하고 바흐 무반주 바이올린을 녹음했고, 중국의 여러 도시를 순례하며 같은 곡을 무대에서 연주했으나 서울연주(11월 19일)는 의미가 다르다. 성공적으로 부활했음을 한국 팬들에게 완벽하게 보여 주어야 한다.



한국의 음악애호가 몇몇은 선생의 바흐 전곡 실황연주에 대해 “걱정스럽다”고 했다. 쉬지 않고 연주해도 두 시간이 넘게 걸리는 난해한 곡을 ‘그 나이에’ 무대에서 완주하는 것이 가능하겠느냐는 것이다. 음반 녹음이야 여러 번 연주를 해서 잘 된 녹음을 골라 이어붙이면 되지만 실황 연주는 다른 차원이다. 나도 정경화 선생이 바흐를 녹음한다는 소식을 듣고 음반 나오기만 기다렸지, 직접 무대에 올라 전곡 연주를 감행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선생은 당연하다는 듯이 바흐를 들고 세계의 큰 무대를 하나씩 점령해 나가는 중에 서울 무대에 선 것이다.



칼잡이의 검처럼 청중석을 향하던 활이 허공을 가르며 현과 마찰했다. 소나타 1번 1악장 아다지오의 음울한 선율이 깔깔한 음색으로 울렸다. 놀랍게도 바이올린 한 대의 소리가 콘서트홀을 가득 채웠다. 지판을 빠르게 오가는 손가락도 2층 셋째 줄에서 선명하게 보였다. 정경화와 2500명 청중이 같이 떠나는 바흐 바이올린 대장정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전체적으로 템포가 좀 빠른 편이었다. 바흐 연주의 표준으로 일컬어지는 헨릭 쉐링과 비교하면 두터움도 좀 부족했다. 실연에서 나올 수밖에 없는 미스 터치도 간간이 있었다. 그러나 청중에 둘러싸인 채 무대 한가운데 홀로 서서 칼로 수풀을 헤치듯 수많은 음표를 허공으로 날려 보내는 풍경은 한 바탕의 볼만한 퍼포먼스였다. 청중은 소나타와 파르티타가 하나씩 끝날 때마다 놀람과 감동과 안도의 환호를 귀환한 여제에게 바쳤다.



절정은 파르티타 2번이었다. 3악장 사라방드의 장중한 선율이 사라지고도 선생은 자세를 풀지 않고 정적에 빠져들었다. 반면 4악장의 빠른 지그가 끝나자마자 쉬지 않고 5악장 샤콘으로 돌입했다. 선생은 “바흐의 샤콘이 있어서 행복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템포를 좀 빠르게 잡는가 했으나 곧 속도가 늦추어 졌다. 가파른 상승과 하강이 반복되고 그 사이를 소리가 사라진 듯한 침묵이 연결했다. 진폭이 크고 감성적인 연주다. 선생은 연주회 전에 “아내와 아이들을 잃은 슬픔을 표현하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바흐가 이 곡을 최종적으로 완성한 것은 1720년이다. 그 해 바흐는 한 살 많은 육촌 누이였던 아내 마리아 바바라를 잃었고, 그녀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일곱 자식 중 셋을 그 전에 하늘나라로 보냈다. 그 비극적 가족사를 아는 선생은 샤콘 연주에서 바흐의 슬픔을 표현하고 싶다고 한 것이다. 바흐의 샤콘은 슬프기는 하나 비탈리의 샤콘처럼 절절한 아픔이 아니라 속으로 삭인 슬픔이다. 연주자들도 그리 감성적으로 연주하지 않는다. 그런데 정경화 선생은 통절한 슬픔을 날것으로 드러냈다. “무엇하러 슬픔을 숨기겠느냐”고 외치는 것 같았다. 샤콘의 마지막 선율이 사라지자 청중은 환호하며 기립했고 선생은 악기를 가슴에 품었다.



두 번의 20분 휴식을 포함해 세 시간에 걸친 연주가 끝났다. 여러 번 무대로 불려나온 선생은 마지막엔 빈 손으로 나왔다. 그는 객석을 향해 두 손으로 크게 하트를 그리고는 펄쩍 뛰며 양손으로 후~키스를 날렸다. 정경화다운 인사였다. 그의 바흐 연주는 세계 12개 도시를 거쳐 내년 5월 카네기홀로 이어진다. ●



 



 



글 최정동 기자 choi.jeongd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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