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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탄핵 표결 이후 정당들은 어디로?”

장훈 중앙대 교수·정치학

장훈
중앙대 교수·정치학

오늘 오후의 탄핵 표결이 단지 박근혜 대통령의 운명만을 좌우하는 것은 아니다. 이미 왜소할 대로 왜소해진 제도권 정당들 역시 표결의 향방에 따라 중대한 갈림길에 서게 될 것이다. 한편으로는 여당뿐 아니라 야당들까지도 거대한 분노의 바다에서 난파할 수도 있다. 혹은 제도권 정당들이 잠시나마 말미를 얻어 시민정치와 대의정치의 거리를 좁혀 나가는 마지막 기회를 갖게 될 수도 있다.

 지난여름의 브렉시트(Brexit), 미국의 트럼프 후보 대통령 당선, 며칠 전 이탈리아 개헌 국민투표 부결과 같은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공통적으로 가리키는 것은 오늘날 대의제 정당들이 전 세계적으로 성난 시민들 앞에서 한없이 위축되어 가고 있다는 점이다. 정당들은 노쇠해 간다기보다는 그저 인공호흡기로 연명하고 있다는 편이 더 사실에 가깝다.

 전 세계적으로 ‘분노의 정치’가 정당정치를 집어삼키고 있지만, 필자는 한국의 촛불 시민들은 정당들에 일말의 에어 포켓을 부여하고 있다고 본다. 촛불 시민들은 여야 정당들에 큰 기대를 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국이나 이탈리아의 시민들처럼 오직 분노의 시선으로만 기성정치를 바라보는 것은 아니다. 백만 촛불 시민들은 정해진 절차에 따라 정당들이 국회에서 탄핵 표결 절차를 진행하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점에서 분노와 선동의 정치에 끌려가고 있는 미국·서유럽 유권자들과는 다른 면모를 보이고 있다.
 우리 정당들은 이번 탄핵 표결을 전후로 해 스스로 제 역할을 회복하는 마지막 기회를 갖게 된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절박한 생사의 기로에 서 있는 것은 새누리당이다. 필자는 탄핵 표결 이후 여야 정당들의 재편성 과정이 (1)새누리당의 청산 (2)신당의 등장 (3)여야 정당들의 시민정치 따라잡기를 통한 정책지형의 재편성 단계를 밟게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첫째, 새누리당은 탄핵 가결 여부와 관계없이 정당 청산의 길을 가게 될 것이다. 가장 직접적으로는 새누리당 창당과 나름의 변신을 주도했던 박 대통령의 정치적 운명과 새누리당의 정치적 운명은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다. 좀 더 근원적으로는 새누리당이 2012년 ‘경제민주화’와 ‘맞춤형 복지’를 통해 유권자들에게 호소했던 정체성 쇄신은 사실상 아주 옅은 분장에 불과했던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날로 심화되는 양극화의 흐름 속에서 보수정당이 2012년 대선에서 경제민주화와 맞춤형 복지를 약속함으로써 유권자들은 보수정당이 기존의 부국강병-세계화 경쟁의 논리(한국형 보수 1.0)를 넘어 따뜻하고 포용적인 보수(한국형 보수 2.0)로 진화하기를 기대했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최순실 게이트를 통해 처참하게 드러난 실상은 박근혜 정부로 대표되는 보수세력이 여전히 과거 발전국가 시대의 낡은 유산에 갇혀 있다는 사실이었다. 대통령 개인에게 초집중돼 있는 권위와 그에 대한 공적 조직과 절차의 맹종, 대기업을 통제·동원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수직적 정경유착은 보수세력이 여전히 1970년대의 유산에 얽매여 있음을 고통스럽게 보여준 셈이다. 옅은 화장을 했던 새누리당의 청산은 이 같은 과거형 보수와의 고리를 끊는 시작일 뿐이다.

 새누리당 청산 이후 보수정치의 새 출발선은 사실 촛불 민심이 이미 밝혀 놓은 바 있다. 첫째는 절차와 제도의 공정성과 투명성이다. 미르·K스포츠재단 등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는 허물어진 절차와 허수아비가 돼 버린 공적 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달리 말해 보수정당을 다시 일으켜 세우려는 유승민·나경원 의원, 원희룡 지사 등이 가야 할 길은 제도의 공정성과 투명성의 회복이다. 앞당겨질 대통령 선거의 승패보다 더 시급한 것은 신뢰의 회복이다. 신뢰를 얻는 첫걸음은 새로 출발하게 될 보수신당 내부의 절차와 제도의 투명성·공정성이다. 수십억~수백억원에 달하는 정당 국고보조금의 엄정하고 투명한 집행, 대통령 후보 선출 과정의 완전 개방과 공정성의 확보가 새 출발의 첫 단추가 되어야 한다. 이 같은 제도와 절차에 대한 신뢰가 쌓인 연후에야 보수정당은 촛불 민심의 또 다른 주문사항인 사회적 연대와 공동체주의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새누리당의 정치적·도덕적 파산에 가려 있기는 하지만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 역시 촛불 민심을 수용하고 시민정치를 따라잡아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탄핵안 발의 과정에서 드러난 두 야당의 혼란과 무책임한 태도 번복은 제도권 야당과 시민정치의 괴리감을 충분히 보여주었다. 정리해 말하자면 민심에 따르는 탄핵 표결이 이뤄진 이후에도 제도권 정당들의 무능력과 혼란이 완전히 면책되지는 않을 것이다. 시민정치와 함께 호흡하는 절차와 콘텐트를 갖추지 못한다면 분노의 촛불은 언제든 기성정당들을 향하게 될 것이다.

장훈
중앙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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