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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기의 시시각각] 탄핵열차, 헌법궤도로 달려라

전영기 논설위원

전영기 논설위원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고 뒤집기도 한다. 유권자는 맹수와 닮아 단번에 조련사를 물어 죽인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표결의 날을 맞으면서 국민의 위대함, 그들의 사나움을 떠올리다 이런 말들이 생각났다. 6주간 출렁이던 촛불바다는 한 사람의 희생도 없이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냈다. 세계 역사상 이런 기록은 찾기 어렵다. 명예혁명이니 세계 민주주의의 새 장이니 하는 얘기들이 반드시 과장만은 아니다.

 역사 속에서 명예혁명(1688년)은 영국에서 일어났지만 이때의 무혈(無血)은 잉글랜드 지역에서만 무혈이었다. 아일랜드나 스코틀랜드에선 내전이 벌어졌다. 한국의 명예혁명은 한 방울의 피도 흘리지 않았다. 헌법 질서를 온전히 유지했으며 국민의 힘으로 통치자의 권력 행사를 중단시켰다. 순도 100% 무혈이다. 2016년 12월 9일을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이 성큼 성장한 날 로 기념해도 좋을 것이다.

 오늘 오후에 있을 박근혜 탄핵안의 가결 여부는 아무도 모른다. 가결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많다. 과반수도 아니고 국회의원 300명 중 200명 이상의 찬성표를 받기는 평상시 정치 상황이라면 불가능에 가까운 도전이다. 그래도 여명처럼 밝아 보이는 게 있다. 설사 탄핵안이 부결되더라도 박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살아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점이다.

 박근혜 정치는 이미 광장에서 탄핵됐다. 광장이 박 대통령에게 적용한 죄목은 신성한 국가권력을 민간인에게 양도한 죄다. 국민의 주권을 도둑질한 죄다. 청문회에서 “최순실과 대통령은 동급, 공동 정권이라고 생각했다”(차은택)는 증언만큼 박 대통령의 헌법 유린을 생생하게 드러낸 장면은 없다. 4년 전에 박근혜 후보를 찍었던 사람들을 포함해 여야, 진보, 보수를 넘어서 그렇게 많은 이들이 광화문광장에 모일 수 있었던 이유도 이 죄 때문이었다.

 탄핵안이 가결될 때는 말할 것도 없지만 부결되더라도 박근혜 정치는 오늘로써 끝난다. 박 대통령이 행여 탄핵안 처리 뒤 역풍이 불어 정치적으로 다시 살아난 노무현 케이스를 기대하지 않았으면 한다. 박근혜 정치가 종언을 고하면 정국은 순식간에 대권 정치로 이동할 것이다. 좁은 계곡을 통과한 탄핵 폭풍이 대선 벌판으로 빠져나오면 이해득실에 따라 각자 정치로 흩어지게 된다. 관심은 대통령을 탄핵 열차에 올려 태운 촛불 민심의 향배다. 광장은 정치권을 탄핵 계곡으로 몰아 넣은 고도의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을까.

 촛불혁명의 성공은 공감에 있었다. 주권 도둑에 대한 분노와 평화집회를 향한 집념, 헌법 질서에 따른 탄핵이 흩어져 있던 마음들을 한곳으로 모은 공감 요소다. 이 세 가지가 팔짱을 낀 채 광장을 회의적으로 관찰하던 사람들의 마음까지 감동시켰다. 분노와 평화, 헌법은 세 개의 솥발 같아서 하나라도 빠지면 뒤뚱거리다 굴러 넘어지고 만다.

 내가 지금 보니 분노와 평화의 솥발은 든든한데 헌법을 흔드는 사람들이 있다. 헌법 솥발이 제일 만만하고 집권에 유리하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의 주장은 ①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되면 박 대통령은 즉시 사임하고 ②헌법상 승계 순서에 따라 대통령권한대행을 맡게 될 황교안 국무총리도 물러나라는 것으로 요약된다. 두 가지 다 반헌법 논란을 부르고 있다. ①은 탄핵 절차를 밟는 공무원은 사직할 수 없다(헌법 134조 2항)는 헌법 정신에 위배되고 ②는 헌법으로 권한대행이 된 사람(헌법 71조)을 정치로 끌어내린다는 것이어서 그 자체 헌법 파괴다. 가당찮은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속내는 뻔하다. 대선 지지율이 높으니 가능한 한 빨리 선거를 치러 집권하겠다는 계산이다. 대한민국이 그렇게 간단한 나라처럼 보이나. 아무리 눈앞에 정권이 다가왔다 해서 헌법을 우습게 알고 광장 민심을 자기식대로 해석하면 곤란하다. 탄핵 열차가 무사히 종착역에 도착하려면 헌법 궤도를 달려야 한다. 열차가 궤도를 이탈하면 숱한 사람이 다친다. 세계적인 자부심으로 우뚝 선 한국의 명예혁명을 더럽혀선 안 된다.

전영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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