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최형우 “방출 당한 2005년, 난 피까지 바꿨다”

14년. 야구 선수 최형우(33·KIA 타이거즈)가 ‘100억 신화’ 를 쓰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올 시즌을 마친 뒤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은 최형우는 지난달 24일 프로야구 KIA 타이거즈와 4년 총액 100억원(계약금 40억원, 연봉 15억원)에 계약했다. 2002년 프로에 데뷔한 뒤 13시즌을 삼성 라이온즈에서 보낸 그가 프로야구 선수로는 처음으로 100억원 신화를 쓴 것이다.
연봉 2000만원이 14년 만에 15억원으로 올랐다. 2005년 방출의 아픔을 극복하고 프로야구 사상 최초로 ‘100억원의 사나이’가 된 최형우. 그는 다시 태어나기 위해 피까지 바꿨다고 말했다. 7일 프로야구 시상식에서 대상을 받고 기뻐하는 최형우. [사진 김민규 기자]

연봉 2000만원이 14년 만에 15억원으로 올랐다. 2005년 방출의 아픔을 극복하고 프로야구 사상 최초로 ‘100억원의 사나이’가 된 최형우. 그는 다시 태어나기 위해 피까지 바꿨다고 말했다. 7일 프로야구 시상식에서 대상을 받고 기뻐하는 최형우. [사진 김민규 기자]

올 시즌 그의 성적은 타율 0.376에 타점 144개, 안타는 195개. 타격 3개 부분에서 1위를 차지했다. WAR(대체선수 대비 승리기여도·스탯티즈 기준)은 7.96으로 프로야구 전체 선수를 통틀어 1위였다. 7일 서울 중구 더플라자 호텔에서 만난 최형우는 “요즘 무척 행복하다. FA 계약을 맺고 연말 시상식에서 큰 상도 많이 받고 있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최형우는 이날 조아제약 프로야구 대상 시상식에서 대상과 함께 상금 1000만원과 순금 도금 글러브를 부상으로 받았다. 하지만 그는 “무작정 좋아할 수만은 없다” 고 말했다. 11년 전 겨울, 소속 팀에서 방출 당했던 아픈 기억이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2002년 포수였던 최형우는 계약금 5000만원을 받고 삼성에 입단했다. 그는 고교야구를 주름잡는 스타는 아니었지만 무난한 실력으로 큰 어려움 없이 프로선수가 됐다. 최형우는 “열 살에 야구를 시작했는데 친구들과 노는게 좋아서 운동을 계속했다”며 “‘국가대표가 되겠다’ ‘유명한 선수가 되겠다’ 등의 특별한 목표는 없었다”고 했다.
평범한 야구선수였던 최형우의 인생이 완전히 바뀐 건 2006년이었다. 2005시즌을 마치고 삼성에서 방출당한 그는 하늘이 두 쪽난 듯 큰 충격을 받았다. 상무 입대까지 무산되면서 야구를 그만둬야 할 위기에 몰렸다. 최형우는 “야구를 계속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제서야 ‘야구가 내 인생의 전부’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도 나를 받아줄 곳은 없었다. 현역으로 입대해 평범한 일반인으로 살아야 했다”고 말했다.

그런 그에게 하늘에서 굵은 동아줄이 내려왔다. 2005년 말 창단한 경찰청 야구단에서 제2의 야구인생을 펼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는 “경찰청 야구단이 생길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방출당한 내가 입단할 수 있다는 것도 신기했다”고 말했다.

경찰청 야구단에서 그는 다시 태어났다. 2년 동안 뼈를 깎는 듯한 훈련을 거듭했다. 외야수로 포지션까지 바꾸고, 하루 종일 야구 생각만 했다. 그리고 경찰청 소속이던 2007년 퓨처스(2군)리그 북부리그에서 타격 7관왕에 올랐다. 최형우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피(血)’까지 바꿨다”고 말했다.

“내 혈액형이 A형이다. 혈액형으로 보는 성격이 다 맞는 것 아니지만 나는 소심한 편이었다. 세세한 것까지 신경쓰는 꽁한 성격이었다. 밑바닥까지 떨어져보니 그런 성격이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싹 버렸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대범해지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피까지 바꿨다고 말할 수 있다.”

군 복무를 마친 최형우는 2008년 자신을 버린 삼성에 재입단했다. 그는 “나를 버린 곳으로 돌아간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래도 동료들과의 정 때문에 갔다”고 했다. 그 해 최형우는 프로야구 1군 신인왕에 올랐다.

삼성에서 9시즌을 보내고 FA 자격을 얻은 이후 최형우의 선택은 달라졌다. 그는 삼성을 떠나 KIA를 선택했다. 최형우는 “정이 든 동료들도 많이 떠났고, 고향팀에서 한 번 뛰어보고 싶었다. 고향 친구들은 대부분 KIA팬이다. 광주 야구장에서 친구들이 나를 응원하면 기쁠 것 같았다”고 했다. 최형우는 전북 전주 출신이다.

피까지 바꾼 최형우는 요즘 거침없는 발언을 하기도 한다. 올 시즌을 앞두고 “FA 120억원 시대를 열어보고 싶다”고 큰소리를 쳤다. 일부 야구팬들은 ‘허풍이 심하다’며 그를 비난했다. 그런데도 최형우는 당당했다. 그는 “그 발언을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120억을 달라고 한 게 아니라 그만한 가치를 인정받고 싶다는 다짐이었다”며 “나는 방출당하기 전의 내가 아니다. 욕 먹는 건 신경쓰지 않는다. 오직 나 자신에게만 집중하려고 노력한다”고 강조했다.

100억원 신화를 쓴 최형우의 다음 목표는 소박했다. “잘한다고 인정받고 싶은 생각은 없다. ‘안 아프고 꾸준히 오랫동안 야구를 한 선수였지’ 정도로 기억되면 충분하다.”

최형우의 별명은 ‘금강불괴(金剛不壞·절대 깨지지 않는 존재)’다. 2008년부터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줄곧 110경기 이상을 뛰었다. 2014년부터는 3년 연속 타율 3할-30홈런-100타점을 동시에 달성했다. 인생의 가장 깊은 골에 빠졌던 최형우는 지금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한 마디를 전했다. “포기하지 마세요. 못난 저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기까지 왔답니다.”

글=박소영 기자 psy0914@joongang.co.kr
사진=김민규 기자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