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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검찰은 명예 회복에 실패했다

백원기 국립인천대 교수 대한법학교수회 회장

백원기
국립인천대 교수
대한법학교수회 회장

우리 검찰 제도는 14세기 프랑스가 창안한 ‘왕의 대관(代官)’ 제도에 뿌리를 두고 있다. 대관은 왕을 대신해 영주가 납부할 벌금을 걷고 미납되면 몰수하는 역할을 했다. 이후 1789년 프랑스 혁명이 발발하면서 ‘왕의 대관’은 공소 담당 사법관인 ‘공화국의 대관’으로 거듭난다. 검찰의 존재가치가 단순히 국가 권력을 대행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권력으로부터 국민의 자유권을 보호하는 후견인 역할로 확장된 것이다. 진정한 검사는 정치가 아닌 법치를 따르고 실천해야 한다.

검찰의 법률적 기능은 ‘실체적 진실 규명’이라는 형사소송 이념을 실현시키는 것이다. 주어진 수사권과 공소권을 적정하게 행사해 ‘사회적 정의의 실현’을 담보할 책임이 있다. 사법연수원에서 가르치는 ‘검사의 기본 자세’는 이렇다. 첫째, 공익 대표자로서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임을 명심해 불편부당한 자세로 직무를 공정·성실히 수행해야 한다. 둘째, 강한 정의감으로 부정을 용납지 않고 끝까지 추적해 척결하는 끈기를 갖춰야 한다. 셋째, 국민이 납득할 수 있게 양식 있고 민주적 방법으로 검찰권을 행사해야 한다. 넷째, 검사는 형사정책적 고려를 유념해 교정 관계기관과 협조 체계를 갖춰야 한다.

이러한 시각에서 보면 ‘박근혜·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에 관한 검찰 수사는 잘했다고 평가받기 힘들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언론이 사실상 수사를 주도하다시피 했다. 검찰은 끝없이 미적거렸고, 뒤늦게 다 차려진 밥상에 수저를 들고 덤비는 모습을 보여 국민을 실망시켰다. 최순실을 독일에서 소환하지 않았고, 자진 귀국한 그에게 30여 시간의 ‘몸 추스를 시간’을 줬다. 공소장에 대통령의 공모 관계를 적시하고 피의자로 입건했다지만, 가벼운 혐의만 적용하며 사건의 본질인 뇌물죄를 명시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검찰 수사에 불응하고 공소 사실을 ‘상상과 추측으로 지은 사상누각’이라고 폄하했다. 대국민 담화에서 스스로 한 약속을 며칠 만에 뒤집고 검찰이 아닌 특별검사의 수사에 응하겠다고 버텼다. 검찰도 가만있었던 건 아니다. 정호성 전 비서관의 휴대전화 녹음 파일 내용을 넌지시 언급하고 뇌물죄는 피의자 조사 없이 기소한 전례가 없다고 압박했다. 녹음 파일을 직접 들어본 검사들이 “실망과 분노에 감정 조절이 안 된다”는 얘기도 나왔다. 하지만 대통령이 끝내 거부하자 검찰은 “안타깝다”며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

가장 큰 잘못은 물론 대통령에게 있다. 대통령은 시종일관 “순수한 마음”을 강조하며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이에 대한 국민들의 배신감이 여섯 번의 대규모 촛불집회로 타올랐다. 하지만 국민적 의혹을 제때, 제대로 밝혀내지 못한 검찰의 소극성도 책임을 비껴가기 어렵다.

일부 헌법학자들과 검사들은 형사소송법의 기소를 전제로 한 강제 수사는 헌법 제84조 ‘대통령의 불기소 특권’의 해석상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한마디로 잘못된 해석이다. 대통령의 행위가 중범죄라면 임기 종료 시 즉각 기소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라도 증거 인멸 없이 신속히 수사를 완결시켜 두는 게 필수적이다. 그런데 검찰은 대면조사에 불응한 대통령을 수사하기 위해 청와대를 방문하는 시늉도 내지 않았다. 이번 사건의 피해자는 5000만 전 국민이다. 그리고 법 앞에선 만인이 평등해야 한다. 이를 입증하려면 검찰이 강제 수사를 해서라도 대통령을 48시간 이내에 조사해 신문조서를 작성하려는 노력을 보여줬어야 했다.

검찰은 또 다른 굵직한 의혹을 규명하는 데에도 소극적이었다. 독일 정부와 협의 중이라며 정유라를 소환하지 않고 있다. ‘세월호 7시간’과 의료법 위반 사건도 제대로 건드리지 않았다. 시민단체가 고발해서야 뒤늦게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우병우 전 민정수석을 직권남용과 직무유기 혐의로 입건했다. 아직도 “수사 중이다, 소환 검토 중이다”는 답변만 이어지고 있다.

결과적으로 검찰은 민심을 받드는 데 실패했다. 스스로의 명예를 회복하지도 못했다. 국민들은 ‘언론과 특검이 없었다면 이 정도라도 수사했겠는가’라고 반문한다. 곧 특검 수사가 시작되면 검찰 수사는 종결된다. 특검은 소위 우병우 라인 검사와 수사관을 배제해 수사진을 구성했다. ‘정윤회 문건 유출 사건’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었던 김수남 검찰총장도 조사 대상에 넣으며 검찰을 더 왜소해 보이게 하고 있다.

검찰은 사상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이를 벗어나는 길은 하루빨리 불의한 권력에 맹종한 잘못을 국민들에게 속죄하고 시녀 노릇을 한 정치검사를 솎아내는 길뿐이다. 권력자가 아닌 국민의 검찰이 되겠다고 약속하고, 국민들의 눈높이에 맞는 자발적 개혁에 나서야 한다. 그래야만 국가 시스템을 무력화한 국정 농단의 협력자였다는 국민적 의구심에서 벗어날 수 있다. 국민은 봉건시대에 힘을 휘두르던 ‘왕의 대관’을 바라지 않는다. 검찰은 ‘국민의 대관, 국가의 대관’으로 환골탈태해야 한다.


백 원 기
국립인천대 교수
대한법학교수회 회장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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