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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그런지·힙합 … 패션의 뿌리는 음악이다

| 디자이너 알렉산더 왕이 말하는 패션과 음악
 

패션 동네에서 컬래버레이션(collaboration·협업)은 더 이상 새롭지 않은 뉴스다. 서로 다른 분야에서 이종결합을 하다 보니 종종 생뚱맞은 경우도 생긴다. 하지만 패션 디자이너 알렉산더 왕(Alexander Wang·33)이 ‘비츠 바이 닥터 드레’의 헤드폰을 디자인했다는 소식에는 고개가 끄덕여진다. 패션계가 인정하는 음악 마니아가 바로 왕이기 때문이다. 매 시즌 알렉산더 왕의 패션쇼 리뷰에선 어떤 음악이 흘러나왔는지 화제가 된다. 쇼가 끝난 뒤 벌어지는 애프터 파티 역시 화려한 디제잉 덕에 패션 피플이라면 꼭 가보고 싶은 이벤트로 꼽힌다. 이뿐이랴. 알렉산더 왕의 광고 영상 캠페인은 뮤지션들이 대거 출동하는 뮤직비디오와 다를 바 없다. 이 화려한 ‘스펙’ 덕에 그는 올 6월 패션 디자이너로는 처음으로 애플이 운영하는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애플뮤직’ 큐레이터로 뽑히기도 했다. 도시의 스트리트 감성을 대표하는 그에게 대체 음악은 무엇일까, 그리고 패션과 음악은 어떻게 연결되는 것일까. 협업 제품 출시를 앞둔 그를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알렉산더 왕과 비츠 바이 닥터 드레의 협업은 2013년 이후 이번이 두 번째다. 하지만 이를 단순한 비즈니스로만 볼 순 없다. 왕 스스로가 비츠의 충성도 높은 고객이자, 뮤지션 닥터 드레를 우상으로 여긴다는 게 공공연한 사실이다. 이쯤에서 닥터 드레가 누구인지 설명이 필요하다. 그는 래퍼인 50센트·더게임·에미넘을 발굴한 프로듀서. 1980년대 후반에는 직접 래퍼로 참여한 앨범이 히트하면서 ‘힙합 장인’ 혹은 ‘힙합의 신’이라 불렸다. 2008년 다양한 녹음 경험을 바탕으로 고성능 헤드폰 브랜드 ‘비츠 바이 닥터 드레’를 만들었는데, 단순하면서 세련된 로고와 디자인 덕에 ‘헤드폰의 애플’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리고 왕은 이 힙합 우상에 보답이라도 하듯 8일 새로 선보이는 ‘비츠 스튜디오 와이어리스 헤드폰’ 디자인 작업에 참여했다.
 
음악 마니아인 왕은 세계적인 뮤지션과 두터운 친분을 자랑한다. 그들과 찍은 인증샷. 마일리 사일러스. [사진 ‘알렉산더왕’ 브랜드 인스타그램]

음악 마니아인 왕은 세계적인 뮤지션과 두터운 친분을 자랑한다. 그들과 찍은 인증샷. 마일리 사일러스. [사진 ‘알렉산더왕’ 브랜드 인스타그램]


협업 제품에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비츠와 나는 원하는 바가 명확했다. 비츠는 무선 스튜디오 헤드폰의 변신을 원했고, 나는 질감과 건축적인 라인을 강조한 고급스러운 디자인을 반영하고 싶었다. 그래서 일단 컬러는 회색으로 골랐고, 귀마개 부분은 크롬으로 포인트를 준 크로크 엠보스(가죽무늬 모양 양각)를 넣었다. 새로운 소재를 사용한 도전이라 완성하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지만 결과는 아주 만족스럽다. 디자인이란 무언가 익숙한 것에서 시작하지만 결국 관습에 도전할 때 가장 진실성을 갖는다. 어쩌면 비츠가 나를 택한 이유도 이것이 아닐까 싶다.”

알렉산더 왕이 비츠 바이 닥터 드레와 협업한 ‘비츠 스튜디오 와이어리스 헤드폰’과 케이스. 스페셜 에디션으로 8일부터 국내 애플 스토어와 분더샵에서 판매한다. [사진 비츠 바이 닥터 드레]

알렉산더 왕이 비츠 바이 닥터 드레와 협업한 ‘비츠 스튜디오 와이어리스 헤드폰’과 케이스. 스페셜 에디션으로 8일부터 국내 애플 스토어와 분더샵에서 판매한다. [사진 비츠 바이 닥터 드레]


옷과 헤드폰을 디자인할 때 차이점이 있었을 텐데.
“물건이든 옷이든 내가 디자인에 접근하는 방식은 늘 똑같다. 불손하고 파괴적인 방식으로 일을 진행한다. 과격한 표현이지만 오해하지 마라. (소재나 컬러를 쓰는) 아이디어가 그렇다는 것뿐이다. 절대 음질을 중시하는 헤드폰의 특성을 무시하지 않고, 오히려 내가 선택한 재료와 오디오의 기술적 측면을 더 고려했다. 무엇을 디자인하든 궁극적으로 디자인은 아름다워야 하고 동시에 기능적이야 하기 때문이다.”

옷처럼 헤드폰을 디자인하면서 써줬으면 하는 ‘뮤즈’가 있었나.
“단 한 사람, 닥터 드레다.”

 
평소 즐겨듣는 장르도 힙합인가.
“형과 누나 덕에 어릴 적부터 음악을 접했다. 둘은 히트웨이브 같은 1980년대 밴드 음악을 많이 들려줬다. 디페쉬 모드, 더 큐어, 뉴 오더의 음악도 종종 귀에 익혔다. 하지만 내 인생의 음악이라고 하면 역시 힙합이다. 처음 들었을 땐 랩의 운율과 뜻을 백과사전식으로 외우고 다닐 정도였다. 옷차림 역시 힙합을 지향했다. (사립학교를 다녀서) 교복 같은 프레피룩 상의에 찢어진 바지를 입고 다녔다. 조금 커서는 친구들과 자동차를 타고 음악을 크게 틀고 샌프란시스코를 누볐다. 당시 힙합 여가수 트리나를 너무 좋아해서 ‘다이아몬드 프린세스 앨범’을 몇 번씩이나 반복했다. 지금도 90년대 초 랩을 여전히 사랑하는 동시에 닥터 드레, 투팍의 영원한 팬이다.”


 
하지만 애플뮤직의 큐레이터로서 고른 곡 리스트는 힙합만은 아니다. 플레이 리스트 종류를 칠(Chill)-하이프(Hype)-바이브(Vibe)란 이름으로 나누기도 했다. 이게 뭔가.
“칠리는 뭔가 휴식이 필요할 때, 숨을 돌릴 때 필요한 음악이다. 리한나·드레이크의 노래는 잔뜩 쌓였던 일을 해치운 후 들으면 좋을 것 같다. 반면 하이프는 디플로의 음악처럼 열정적으로 에너지를 폭발시킬 때 어울리는 노래들이다. 마지막으로 바이브는 그 중간이라 할 수 있다. 뭔가 중요한 일을 앞두고 정신을 가다듬기 좋은 음악들이다. 믹 밀즈나 리치 호미 콴, 에이샙 로키의 곡들이 이 카테고리에 올라 있다. 어쨌거나 공통점은 이 노래들의 뮤지션 대부분이 나와 친분이 있다는 것이다.”

여느 디자이너보다 뮤지션들과 친해서 패션쇼 앞줄까지 차지할 정도인데.
“나는 뮤지션들을 사랑한다. 그들은 노래를 의인화시켜 표현할 줄 알기 때문이다. 자신의 음악이 발전하는 만큼(혹은 변하는 만큼) 거기에 맞춰 외모나 스타일을 바꿔나간다. 그걸 보는 자체가 굉장히 흥미롭다. 생각해봐라. 패션에서 세기적 스타일로 언급되는 그런지·펑크·글램 록·힙합 등 모든 것이 다 음악에 뿌리를 두고 있지 않나.”
 
음악 마니아인 왕은 세계적인 뮤지션과 두터운 친분을 자랑한다. 그들과 찍은 인증샷. 씨엘. [사진 씨엘 인스타그램]

음악 마니아인 왕은 세계적인 뮤지션과 두터운 친분을 자랑한다. 그들과 찍은 인증샷. 씨엘. [사진 씨엘 인스타그램]


아시아 출신의 뮤지션 중에 좋아하는 이들은 없나.
“씨엘·지드래곤과 중국 출신의 크리스 리(李宇春)는 가장 좋아하는 아시아 아티스트다. 모두 나와 인연이 있다(지드래곤은 2016 가을·겨울 컬렉션의 런웨이 주요 곡(temple)을 미아와 함께 피처링 했고, 씨엘은 글로벌 뮤지션들과 함께 2016 봄여름 광고 캠페인의 얼굴로 등장했다).”

패션에 있어 음악이 왜 중요한가.
“음악은 메시지를 전달하고 소통하고, 감정을 형성하는 강력한 도구다. 좋은 옷 못지않게 좋은 음악이 컬렉션을 수준 높게 이끌어준다. 내 옷을 보는 사람들도 영향을 받기는 마찬가지다. 어떤 음악이 흐르냐에 따라 패션쇼를 해석하고 이해하는 방식이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나뿐만 아니라 지방시·루이비통 등 럭셔리 브랜드들이 패션위크에 최고의 일렉트로닉 프로듀서들을 동원하는 것이다.”

음악 마니아인 왕은 세계적인 뮤지션과 두터운 친분을 자랑한다. 그들과 찍은 인증샷. 카니예 웨스트 가족. [사진 ‘알렉산더왕’ 브랜드 인스타그램]

음악 마니아인 왕은 세계적인 뮤지션과 두터운 친분을 자랑한다. 그들과 찍은 인증샷. 카니예 웨스트 가족. [사진 ‘알렉산더왕’ 브랜드 인스타그램]


알렉산더 왕은 런웨이뿐 아니라 애프터 파티에서도 음악이 유명하다.
“파티에선 다양한 DJ와 함께 즐기고, 진정한 에너지를 내기 위해 라이브 공연도 한다. 쇼 분위기를 그대로 이어가는 셈이다. 나는 사람들과 어울릴 때 영감을 얻는다. 뭔가 축하하고 축하받는 분위기도 좋다. 생기 넘치는 음악과 사람들 사이에서 있을 때 완벽하게 긴장이 풀린다.”


 
당신에게 최고의 파티는 어떤 것인가.
“전혀 예측할 수 없고,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게 하라. 좋은 파티를 여는 비결이다. 언젠가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창고에서 애프터 파티를 연 적이 있다. 사람들은 화장이고 옷이고 전혀 신경 쓸 필요가 없이 그저 춤만 췄다. 나는 이것이 진정 패셔너블한 파티였다고 생각한다. 재밌고, 살짝 정신을 잃은 것 같은 그런 몰입을 경험했으니까.”


 
발렌시아가의 디자이너였을 때 즐겼던 파티는 달랐나(그는 2013년부터 2년여간 파리의 패션하우스 발렌시아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겸임했다).
“뉴욕에 살면서 한 달에 두 번씩 파리에 갔지만 클럽에 같이 다닐 친구도 없고 불어도 할 줄 몰랐다. 고교 동창이자 스타일리스트인 단짝 친구와 베트남 식당만 전전했다. 고립된 느낌에 너무나 힘든 시간이었다.”

음악 마니아인 왕은 세계적인 뮤지션과 두터운 친분을 자랑한다. 그들과 찍은 인증샷. 마돈나. [사진 ‘알렉산더왕’ 브랜드 인스타그램]

음악 마니아인 왕은 세계적인 뮤지션과 두터운 친분을 자랑한다. 그들과 찍은 인증샷. 마돈나. [사진 ‘알렉산더왕’ 브랜드 인스타그램]


한국에선 음악과 패션이 연예 기획사의 주도 하에 하나의 사업으로 진행된다. 어떻게 생각하나.
“배우나 뮤지션은 이미 그들의 영역을 자유롭게 벗어나 패션과 뷰티, 게임에까지 파고들고 있다. 한 마디로 대중(audience)과 커넥션을 만들어 갈 줄 안다는 뜻이다. 음악과 패션뿐 아니라 다른 예술과 경계 없이 조화를 이루고, 그 방식을 긍정적으로 보는 것이야말로 세계적인 흐름이라고 생각한다. 참고로 나 역시 패션 디자이너면서도 늘 패션과 관계없는 이들과 소통하는 것을 좋아한다. 캠페인(광고) 촬영을 할 때 모델보다 다른 분야의 아티스트를 더 많이 참여시키기도 한다. 그들에게서 패션계와는 다른 수준의, 다른 어휘를 익히려는 것이다.”

영역이 허물어지는 패션은 어떤 방향으로 가게 될까.
“개인주의가 더 심화될 것이다. 정형화된 스타일보다 각자의 표현과 감정에 호소하는 의상이 확대되고 진화할 거라는 의미다. ‘럭셔리’의 의미도 이미 달라졌다. 과시를 위한 소유가 아니라 좀 더 개인적이고, 남다른 라이프스타일로 변화했다. 가령 누군가 뭔가 굉장히 남다르고 화려한 일을 경험하고 싶을 때 스페인식 식품 잡화점에서 점심을 먹는다거나 허름한 동네 술집에서 한 잔 한다고 치자. 이건 기존에 생각하던 럭셔리의 극단적인 반대지만, 개인에겐 가장 흥미로운 라이프스타일이 될 수도 있다.”

각자 추구하는 패션의 가치가 달라진다는 건 디자이너로선 어려운 상황이다.
“맞다. 오늘날 패션을 지배하는 건 소비자가 됐다. 그들 하나하나가 주목할 대상이다. 옷뿐 아니라 먹는 것, 가는 곳, 어울리는 사람들 모두가 패션의 요소가 될 수 있다. 나 역시 이젠 일상에서 느끼는 모든 것들을 전달하려고 애써야 한다. 110%의 내가 돼야 할 것이다.”



 
알렉산더 왕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나고 자란 중국계 디자이너. 뉴욕 패션스쿨 파슨스에 다니다 2학년에 중퇴, 2005년 스웨트 셔츠 몇 장을 만들어 뉴욕 편집숍 ‘오프닝 세리모니’에 입점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 ‘알렉산더 왕’을 시작했다. 2008년에 미국패션디자이너연합회(CFDA)와 패션지 보그가 선정하는 펀드 수상자로 뽑혔고, 2011년에는 소호에 단독 매장을 열었다. 2012년에는 파리의 대표적 패션하우스인 발렌시아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됐지만, 자신의 브랜드에 전념하고 싶다는 이유로 2년 7개월 만에 자리를 내놨다. 지금은 브랜드의 CEO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약 중이다.


글=이도은 기자 dangdol@joongang.co.kr
사진=비츠 바이 닥터 드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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