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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의 작가전] 붕괴 #3. 붕괴 (1)

_ 붕괴 30분 전
 
때때로 컵라면이 먹고 싶은 날이 있다. 플라스틱 전기포트에 후루룩 끓인 물이 아니라 스테인리스 주전자 주둥이로 뿌옇게 수증기가 뿜어져 나오기를 기다린다. 조심스럽게 수프를 뿌린 컵라면에 물을 붓고는 잠시 뚜껑에 새겨진 글씨들을 읽으며 3분을 기다린다. 그리고 나면 뜨겁고 얼큰한, 조잡스러우면서도 세상의 모든 맛이 다 들어있는 것 같은 컵라면이 완성된다. 라면이나 휴지, 생리대, 담배는 특정하게 잘 팔리는 날이 정해져 있는 품목들이 아니다. 내가 스물네 시간 TV를 틀어놓고 생활하는 '당곡 24시 편의점'에 드나드는 손님의 절반가량이 이런 뻔한 물건을 사고 값을 치른다. 나는 그들을 기다리며 컵라면을 먹거나 날짜가 지난 신문을 읽는다. 그게 내 직업이다. 물론 어릴 때 꿈꾸던 직업은 아니었지만...

그 역시도 그런 뻔한 물건을 사는 뻔한 사람이었다. 새치가 조금 섞인 스포츠머리와 단정하고 짙은 눈썹이 인상적인 그는 라면을, 혹은 담배를 사러 간혹 이곳에 들렀다. 때로는 캔커피를 계산하고 선 자리에서 순식간에 마셔 버리고 뚜벅뚜벅 사라지기도 했다. 8월의 무더위가 서릿비에 주춤하던 무렵이었다. 덕용포장 된 라면을 계산대에 올려놓은 그가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바코드를 찍고 거스름돈을 건네는 나의 손등 위로 '투둑' 미지근한 물방울이 떨어졌다. 빗물인가 싶었다가 무심코 올려다본 그의 눈동자는 검은 구멍처럼 흔들림 없이 우멍하게 눈물을 떨구어 내고 있었다. 울고 있다는 것은 눈물이 떨어졌기 때문에 알 수 있었을 뿐, 그는 여느 날과 다름없이 안온하고 지루한 표정을 지으며 계산이 끝나자 고개를 약간 까딱이고는 가게를 떠났다. 그의 존재가 사라진 후에도 좁디좁은 편의점 안은 그가 남겨놓은 싸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나는 컵라면이 퉁퉁 불어간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린 채 맥주 광고가 덕지덕지 붙은 유리창 너머로 그가 사라진 방향을 쳐다보았다. 굵어진 빗방울이 눈물처럼 타고 흐르는 유리창 너머로는 그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다. 다만 길 건너편에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GS25 편의점 간판만이 눈에 들어올 뿐이었다.
 
세월이 쌓이고 나이를 먹게 되면 무관심이라는 거미줄을 뒤집어쓰게 마련이다. 보석처럼 빛나던 호기심도 거미줄 같은 무관심에 쌓이는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곤 했다. 입맛을 다신 나는 퉁퉁 불어버린 면발을 젓가락으로 집어 들다가 음료 냉장고 위에 올려져 있는 가족사진을 보고는 피식 웃고 말았다. 병풍처럼 접었다 펼 수 있는 작은 사진첩에는 지난 세월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대학시절부터 매달렸던 고시 공부를 포기했던 것은 서른두 살이었다. 이차 합격자 명단에 이름이 없는 걸 확인한 나는 그날 밤새 술을 마시고 하숙집으로 돌아와서는 법전들을 쓰레기통에 처넣었다. 맹목적인 질주의 끝은 허무함이었다. 판사나 검사, 못해도 변호사 자식을 기대하던 부모님의 주름진 얼굴을 생각하며 질끈 눈을 감은 나는 텅 빈 책장에 머리를 찧으며 울부짖었다. 잠이 깬 내가 맨 처음 본 것은 내가 머물던 하숙집 딸 영심이었다. 걱정스러운 눈길로 이마에 물수건을 놓아주던 영심이의 팔을 움켜잡은 나는 한참동안이나 서럽게 울었고, 그녀는 그런 나를 이해한다는 듯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그해 겨울 우리는 양쪽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을 감행했다.
못마땅해 하는 부모님들을 양쪽에 두고 활짝 웃은 영심이의 뱃속에는 두 달 된 아이가 들어있었다. 그리고 난 그 이전에는 몰랐던 새로운 삶과의 전쟁에 뛰어들어야만 했다. 보험 외판원과 정수기 외판원을 거쳐 단과 학원 강사를 전전하던 나를 딱하게 여긴 부모님이 토지 매입 보상금이라며 돈을 내민 건 결혼한 지 6년이 지날 때, 둘 사이에 태어난 아들 휘가 다섯 살 때였다. 부모님이 주신 돈으로 마련한 것이 지금 이 당곡24라는 편의점 아닌 편의점이었다. 처음에는 그럭저럭 되던 장사는 오피스텔이 늘어나면서 따라서 늘어난 진짜 편의점들 때문에 매출이 반 토막 나버리고 말았다. 그런저런 과거들을 생각나게 하던 사진들은 어느 틈엔가 점점 커가는 휘가 차지했다. 늘 활짝 웃던 아이는 마지막 두 개의 사진에서는 침울하고, 차가운 표정으로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었다.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급성림프구성백혈병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병에 걸린 게 확인된 이후 아이는 늘 병원에 있어야만 했다. 가족 중에 골수가 맞는 사람이 없어서 일본에 있는 골수은행에서 조혈모를 이식받았다. 골수 이식을 받으며 고통스러워하는 휘를 보면서 나는 울고 또 울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 낡고 좁은 가짜 편의점을 지키는 일뿐이었다. 그래야만 병원에서 시시각각 삶과 사투를 벌이는 아들과 그 아들을 지켜주는 아내를 그나마 편안하게 해 줄 수 있을 테니까...
 
코를 훌쩍거리는 나는 눈가에 고인 눈물을 털어내고는 컵라면 국물에 담긴 젓가락을 휘휘 저었다. 어쨌든 살아남아야만 했다. 퉁퉁 불어서 뚝뚝 끊어져 버리는 면발을 입안에 한가득 털어 넣었다. 시원하게 트림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콜라 생각이 간절했지만 차마 손을 댈 수가 없었다. 집에서 가져온 미지근한 보리차를 한 모금 마시자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혼자 있으면 별의별 생각들이 다 들게 마련이다. 가끔 보는 신문의 인사란에는 함께 공부했다가 고시에 합격한 친구들의 이름이 보였다.
 
‘짜식들, 그땐 맨날 나한테 못하겠다고 징징거렸었는데...’
 
쓴웃음과 함께 과거를 털어버린 나는 냉장고 위에 올려져 있는 텔레비전의 채널을 돌렸다. 아내에게는 비밀이지만 나는 첫사랑과 놀랍도록 닮은 여배우가 나오는 일일 드라마를 꼭 챙겨보았다. 출생의 비밀과 계모의 학대라는 뻔하고 뻔한 스토리 속에서 허우적대던 여배우는 자신이 좋아하던 남자가 배다른 형제라는 사실을 할고 절규하는 중이었다. 제법 감정을 잡는 여배우를 따라 훌쩍거리던 나는 화면 아래 갑자기 나타난 뉴스 속보라는 굵은 글씨에 짜증을 냈다. 혀를 차던 나는 뒤이어 나타난 “세화병원 붕괴”라는 글씨에 넋을 잃었다. 세화병원은 올해 초에 아이가 옮긴 병원이었다.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는 사이 화면이 변했다. 귀에 꽂혀있던 이어폰이 말썽인지 잔뜩 찡그린 얼굴을 하고 있던 앵커는 큐싸인을 뒤늦게 받았는지 허둥거리며 화면을 응시했다.
 
“긴급 속보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 오후 네 시경 세화종합병원이 갑작스럽게 붕괴되었습니다. 현재 인근 소방서의 소방차와 구급차 백여 대가 출동해 구조작업을 펼치고 있지만 워낙 갑작스러운 붕괴라 사상자들이 많이 발생했을 것 같다는 추측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현장 연결해보겠습니다. 김보성 기자, 나와주세요.”
 
깔끔한 외모와는 다른 불안하고 다급한 앵커의 목소리가 편의점 안에 울려 퍼졌다. 또다시 바뀐 화면은 혼돈 그 자체였다. 무너져 내린 건물 더미를 뒤로 한 채 서 있는 기자는 속사포 같은 말들을 토해냈지만 내게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저기, 저 안에 내 마누라, 아이가 있는데’
 
소방차에서 뿌려대는 굵은 물줄기가 눈물처럼 무너진 병원 위로 쏟아져 내렸다. 마구 흔들리던 카메라는 인근 아파트 단지에서 쏟아져 나온 것이 분명해 보이는 주민들을 비춰주었다. 말없이 혼돈을 담아내다가 다시 기자에게 돌아온 카메라는 한 켠에 있는 다른 사람도 함께 담아냈다.
 
“현재 정확한 사고 원인과 피해 규모는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만 붕괴가 워낙 일순간에 진행되었고, 붕괴 직후 빠져나온 사람들이 없다는 증언을 종합해 볼 때 삼풍백화점 붕괴 이상의 사상자가 나올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잠시 목격자의 증언을 들어보겠습니다. 사건 당시 어디에 계셨습니까?”
 
“그러니까, 저기 병원 앞 가게에서 열심히 구두를 닦고 있는디 갑자기 천둥소리 같은데 들렸습니다. 맑은 하늘에 무신 날벼락인가혀서 고개를 빠꼼히 내밀어 봤는디 글씨 병원이 그냥 와르르 무너져 내리지 뭡니까. 내 평생 이런 일은 첨이라니까요.”

 
이미가 벗겨진 50대 중반의 아저씨는 침을 튀기며 열심히 입을 놀렸다. 아저씨에게 갔던 마이크를 도로 당겨온 기자가 다시 물었다.
 
“병원이 붕괴되기 직전 이상한 징조 같은 것은 혹시 느끼지 못하셨습니까? 예를 들면 건물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든지 하는 것 말입니다.”
 
“그러니까, 뭐시냐. 어린 계집애가 무너진 병원 위를 날아 댕겼습니다.”
 
“네?”

 
놀란 기자의 반문에 대머리 아저씨는 확신 가득한 얼굴로 다시 말했다.
 
“예니곱 살쯤 된 예쁘장한 계집애였다니까요. 가가 폭삭 내려앉은 병원 위를 나비처럼 날라댕겼어요.”
 
“아니, 그런 거 말고요. 뭐 건물에 금이 갔다든지 아니면 지반이 내려앉았다든지 하는 그런 징조 말입니다. 다른 목격자들 말로는 한 시간 전쯤에 병원 쪽에서 큰 소리가 났다고 하던데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기자의 말에 대머리 아저씨는 화를 냈다.
 
“삼화 연립 사람들은 입만 열었다 하면 다 거짓뿌렁들이여. 이 배대식이가 이 앞에 터를 잡고 구두를 닦은 지 딱 삼십 년이여. 삼십 년...”
 

대머리 아저씨의 횡설수설에 놀란 기자가 황급히 고맙다는 말을 하며 마이크를 거둬들였다. 카메라 화면 바깥에서 들어온 팔이 대머리 아저씨를 잡아당겼다. 바깥으로 끌어가려는 팔을 뿌리친 아저씨가 화면에 대고 소리쳤다.
 
“이거 왜 이려! 분명히 내 눈깔로 똑똑히 봤다니까, 어린 계집애가 무너진 병원 위를 날아 댕겼어. 히죽거리면서 말이여. 분명 구미호가 틀림없당께. 내 어릴 적 우리 할머시가 말씀하시길...”
 
참다못한 기자가 대머리 아저씨를 화면 밖으로 밀어버렸다.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며 바깥으로 사라진 아저씨의 팔 끝이 화면 끄트머리에서 한두 번 허우적거리다가 사라져버렸다. 작은 사각형 공간 안에서 벌어진 그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저 거대한 건물의 잔해 아래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이 갇혀있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텔레비전도 끄지 못한 채 셔터를 내린 나는 가게 밖으로 뛰쳐나갔다. 정신없이 큰 길로 내달렸다. 비가 내리는 거리는 한산했지만 빈 택시가 눈에 띄지 않았다. 세화병원 쪽으로 무작정 달리면서 빈 택시가 오는지 뒤를 돌아보던 나는 결국 신호등 앞에 멈춰서 있는 택시에 올라탔다.
 
“세화병원이요!”
 
시트가 젖는다는 택시 기사의 툴툴거림을 무시한 나는 두 손을 꽉 모으고 기도를 올렸다. 아들이 아픈 이후 몇 번 나간 게 전부였지만 하느님을 간절히 찾던 내 머릿속은 온통 후회뿐이었다. 올해 초 아내가 갑자기 세화병원으로 아들을 옮기자고 했을 때 별생각 없이 승낙을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아내는 이런저런 얘기를 주섬거렸지만 건물 주인이 갑자기 임대료를 올려달라고 하는 바람에 머리가 아팠던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거리고 말았다.
 
“제발, 하느님”
 

멀리 세화병원이 보이는 사거리에서부터 교통 통제가 시작되었다. 푸른 우의와 비닐을 씌운 모자를 쓴 경찰들이 붉은 경광등을 흔들며 차들 사이를 뛰어다녔고, 길게 멈춰선 차들은 클랙션을 빵빵거리는 것으로 짜증을 드러냈다. 더 이상 못 갈 것 같다는 택시 기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택시에서 뛰어내린 나는 차량 사이를 뛰기 시작했다. 한껏 달궈진 자동차의 보닛에서 피어오르는 수증기들이 빗줄기 사이를 뚫고 하늘로 역류했다. 큰 사거리를 지나자 혼잡은 한층 더 심해졌다. 병원으로 올라가는 좁은 오르막길은 구급차와 소방차에 방송국 차량들까지 바늘 하나 꽂을 틈 없이 빼곡하게 들어차있었고, 공사현장에서 쓰는 안전모를 쓴 기자들이 커다란 카메라를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중이었다. 다들 자기 할 일에 바쁜 탓에 오르막길은 어렵지 않게 지날 수 있었지만 커다란 병원의 철제 대문은 이미 경찰들이 통제하고 있었다. 신형 방석모와 방패를 든 전경들이 활짝 열린 철문을 거의 점령한 채 사람들을 차단하고 있는 중이었다. 전경들 앞에는 병원에 있던 환자 가족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물결처럼 출렁거렸다. 사람들은 제각각의 목소리로 각기 다른 사연들을 토해냈지만 절박함만큼은 놀랄 만큼 일치했다. 점점 약해진 빗방울들이 거대한 물결을 이룬 사람들 사이를 너울거렸다. 좀 높아 보이는 경찰이 확성기에 대고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현재 구조작업이 진행 중입니다. 여러분 심정은 이해하고 있습니다만 자칫 또 다른 인명사고로 이어질 수 있으니까 통제에 따라주십시오.”
 
잠시 잠잠하던 사람들은 누군가의 고함소리를 시작으로 다시 절규했다. 나 역시 그런 사람들 틈에 끼어서 연신 내 아들, 내 마누라를 찾았다. 감정의 결합은 급격한 증폭을 낳았다. 사람들의 물결은 조금씩 앞으로 밀려들어갔다. 파란색 방패는 사람들의 물결 앞에서 힘겹게 버텨나갔다. 상대가 조금씩 허물어진다는 걸 느낀 사람들은 영차 영차를 외치며 앞으로 밀려갔고, 주변의 기자들은 거대한 카메라를 들이댄 채 탐욕스럽게 셔터를 눌러댔다. 계속 밀리던 방패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우렁찬 함성과 함께 부풀어 오른 방패 벽들은 능숙하게 사람들의 물결들을 조각내 버렸다. 제일 앞 열에 선 사람들은 전경들과 드잡이 질을 했지만 군중심리에 휩싸여있던 대다수의 사람들은 누군가 잡혀간다는 말을 듣자마자 꼬리를 뺐다. 무너진 개미집에서 빠져나온 개미 떼처럼 사방으로 흩어져버린 사람들 틈에 있던 나 역시 물결에 쓸려갔다. 정신없이 뛰어가던 사람들 틈에서 빠져나온 나는 파란색 트럭이 세워져있는 골목길로 숨었다. 어떻게든 병원 안에 들어가서 가족들의 생사를 확인해야만 했다. 저 많은 잔해들 속에서 아내와 아이를 어떻게 찾을지 엄두가 나진 않았지만 맨손으로 잔해를 긁어내는 한이 있어도 내 손으로 가족들을 구해낼 생각뿐이었다.
비에 젖은 골목길은 바깥의 소란에는 아무 관심도 없다는 듯 앞발을 핥고 있는 고양이 한 마리만 있었다. 골목길 바깥을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타닥거리는 발자국 소리를 피해 더 안쪽으로 숨어든 나는 낯선 광경을 보았다. 셔터가 내려진 한샘 가구 앞에 이십 여쯤 되는 사람들이 조용히 비를 맞고 서 있었다. 보통 때라면 한번 흘끔거리고 지나갔을 풍경이었지만 그들이 입고 있는 하늘색 비닐 우의 등 한복판에 박혀있는 한국인명구조협회라는 굵은 고딕체 글씨가 내 눈을 확 잡아끌었다. 한 켠에는 미처 우의를 받지 못한 사람들이 가구점 앞에 서 있는 사내에게서 넘겨받는 중이었다. 잘 하면 저들 틈에 끼어서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희망이 나를 이끌고 갔다. 비닐로 만든 비옷은 조금만 움직여도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냈다. 하나같이 등을 돌리고 있는 그들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간 나는 머뭇거리며 물었다.
 
“저기 혹시 남는 우의 있으면 하나 받을 수 있을까요?”
 

대답 대신 돌아온 것은 싸늘하고 의심에 가득 찬 시선들이었다. 성별은 물론 나이도 제각각으로 보이는 위압적인 시선에 숨도 쉬기 힘들었지만 가족들에 대한 생각이 나에게 없는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제 가족도 저기 안에 있습니다. 들여만 보내 주시면 시키는 대로 다 하겠습니다.”
 
“여긴 아무나 낄 수 있는 데가 아닙니다.”

 
주저하던 사람들 틈에서 불쑥 튀어나온 덩치 큰 사내가 말했다. 한눈에 봐도 조폭같이 험악해 보였지만 절정에 달한 긴장감은 두려움조차 삼켜버렸다.
 
“그럼 그냥 그 비옷 하나만 주세요. 전 어떻게든 저기 들어가야만 합니다.”
 
“귓구멍은 있는 것 같은데 왜 말을 못 알아들어? 여긴 당신이 낄 데가 아니라고 했지.”

 
손가락 하나를 곧게 세운 상대방이 가슴을 꾹꾹 찌르며 욕설이 섞인 말들을 뱉어냈다. 땀처럼 얼굴에 달라붙은 비를 훔쳐낸 나 역시 지지 않고 상대방의 가슴을 밀쳐냈다.
 
“내 가족이 저기 안에 있다고 말했잖아요. 인명 구조를 한답시고 모인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말을 해도 되는 겁니까?”
 
“이거 참...”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목을 한 바퀴 돌리는 사내의 목에서 우두득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 사내를 제지한 것은 또 다른 사내였다.
 
“삼식아. 그만해라.”
 
“아따, 형님도 참...”

 
우의 속에 감춰져있던 짧은 머리를 손바닥으로 한번 쓱 흝은 사내가 불만 섞인 표정을 거둬들였다. 사내의 위협이 사라지고 흩어진 사람들이 엉킨 시선을 다시 한번 받게 되었다. 무미건조한 어색함은 한샘 가구 앞에서 우의를 나눠주던 사내가 다가오면서 끝이 났다. 다시 한번 부탁을 하려던 나는 상대방의 얼굴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아니, 당신은?”
 
“담배 한 대 있으면 좀 나눠 피웁시다.”

 
뜬금없는 상대방의 말에 나는 주섬주섬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아들이 입원하면서 끊었던 담배는 올봄부터 다시 살아났다. 마침 두 개비가 남은 담뱃갑이 주머니에서 나왔다. 약간 비에 젖은 담뱃갑을 내밀자 사내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 말고, 들어갔다 나온 후에 말입니다.”
 
그리고는 한 손에 둘둘 말려져 있는 하늘색 우의를 건네주었다.
 
“이봐요. 저런 어중이떠중이들까지 우리 팀에 합류시키면 난장판이 될 겁니다.”
 
등 뒤에서 불만 섞인 말이 들려왔지만 사내는 밝은 표정으로 대꾸했다.
 
“길수 씨. 나정현 씨는 어중이떠중이가 아니라, 원래 우리 구조대에 합류할 분이셨습니다. 안내장을 열어보지 못해서 오늘 일정을 알지 못하셨던 것뿐입니다.”

 
길수라고 불린 넓적한 얼굴의 사내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입을 다물었다. 손목을 털어서 시간을 확인한 사내가 골목길 여기저기에 흩어져있던 하늘색 우의들을 향해 소리쳤다.
 
“자, 다들 주목! 지금 시간이 네 시 사십 분입니다. 이제 계획했던 대로 민간구조단체로 위장 병원 안으로 잠입할 겁니다. 제일 앞에는 저와 사제님이 있을 겁니다. 누가 물어보면 그냥 한국인명구조협회 회원이라고만 하면 됩니다. 혹시라도 정문에서 문제가 생겨서 못 들어가신 분들은 아까 일러둔 오피스텔이 가셔서 기다리시고, 혹시라도 안에 들어갔는데 다른 분들과 헤어지시면 그냥 혼자서라도 본관 뒤편 임상실험센터 로비로 오시면 됩니다. 질문 있습니까?”
 
사내 앞에 모여든 하늘색 우의 차림의 사람들의 무겁고 복잡한 표정으로 서로를 흘끔거렸다. 뒤쪽에 있던 안경 쓴 청년이 손을 번쩍 들었다.
 
“로비에서 그곳까지는 어떻게 갑니까?”
 
“원래 통로는 무너졌겠지만 그에 대비한 비상통로가 몇 군데 있습니다. 그중 상태가 양호한 곳을 이용해 진입할 겁니다.”
 
“그곳에 내려간 다음에는요? 우리가 직접 가족들을 구출하는 건가요?”
 

한쪽 구석에서 서로 손을 잡고 오들오들 떨던 중년의 부부들 중 약간 더 나이가 먹은 남자가 물었다.
 
“그건...”
 
곤혹스러운 표정의 사내가 바로 아래 서 있던 다른 사내에게 눈을 돌렸다. 사내의 눈길을 받은 또 다른 사내는 뒤집어쓰고 있던 후드를 젖히고 사람들에게 돌아섰다. 나는 깡마르고 표독스러운 눈길을 가진 그 사내의 목에 있는 로만칼라를 보았다. 곁에 있던 다른 사람들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사제님”이라는 말을 하는 것 까지 더한다면 아마 가톨릭 사제인것 같았다. 사제는 방금 전 사내와는 다른 느낌의 강직함이 묻어 나오는 목소리로 말했다.
 
“여러분들은 그곳에서 여러분들이 탐욕과 욕심이 만들어낸 피조물과 만나야만 할 것입니다.”
 
“감언이설로 꼬드겨서 사인하게 만들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그런 소리를 하는 건 또 무슨 심보에요.”

 
사제 바로 앞에 서 있던 키 큰 불편함이 가득 담긴 목소리의 주인공은 머리를 뒤로 질끈 동여맨 젊은 아가씨였다. 아가씨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동조하는 듯 고개를 끄덕거리자 분위기는 빗줄기만큼이나 차가워졌다.
 
“여러분들 중 순수한 마음으로 이번 일에 동참한 사람들이 과연 몇 명이나 있으십니까? 여기 모인 것도 그들이 돌아오면 벌어질 일들을 막기 위해서가 아닙니까?”
 
나는 사제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일단은 잠자코 듣기로 했다. 사제는 열변은 점점 더 뜨거워졌다.
 
“우린 숭고함을 이루기 위해 여기 모인 게 아닙니다. 추악한 진실을 감추기 위해 모여들었고, 모두들 그걸 알고 있으면서도 가족들을 걱정하는 척 하는 것뿐입니다.”
 
“저 자식 사제 맞아?”

 
아까 내 가슴을 손가락으로 찌른 사내의 투덜거림은 곧바로 튀어나온 다른 여인의 앙칼진 목소리에 파묻혀버렸다.
 
아닙니다. 이건 다 하느님의 뜻입니다. 세상의 모든 죄악을 짊어지고 가신 하느님께서 우리들에게 내리신 새로운 세상을 향한 신호라고요. 우리 모두 기도해야합니다. 거짓되고 타락한 거짓 종교를 버려야만 진실한 뜻을 받들 수 있어요. 우리 모두 기도해요.”
 
테 없는 둥근 안경을 쓴 여인은 남편으로 보이는 이의 손을 꼭 붙잡고는 기도를 올렸다.
 
“가지가지들 하는군.”
 

누군가의 투덜거림조차 래퍼처럼 빠르게 쏟아내는 젊은 부부의 말을 이겨내지 못했다. 당장이라도 뿔뿔이 흩어질 것 같은 어수선한 분위기였지만 아무도 자리를 뜨지는 않았다.
 
“그만들 하고 어서 움직이죠. 여기서 이렇게 모여 있다가 다른 사람들 눈에 띄면 골치 아프질 수도 있습니다.”
 
아까 난장판 운운했던 그 목소리였다. 후드에 가려진 눈은 보이지 않았지만 적당한 살집이 붙은 턱과 약간은 위쪽으로 휘어진 입술로 봐서는 아직 세월에게 활력을 빼앗기지 않은 삼십 대 중반쯤의 남자로 느껴졌다.
 
“알겠습니다. 아까 나눠드린 명찰을 모두 목에 걸고 저를 따라오십시오.”
 

한샘 가구 앞에서 내려선 사내가 명찰을 목에 걸었다. 손바닥만 하게 코팅된 명찰에는 “차재경”이라는 이름이 쓰여 있었다.

작가 소개    
197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대기업 샐러리맨을 시작으로 커피를 만드는 바리스타를 거쳐 길을 쓰고 있다. 소설과 교양서를 비롯해서 다양한 장르의 글을 쓴다.  
장편소설 『폐쇄구역 서울』 『마의1, 2』 『쓰시마에서 온 소녀』 『김옥균을 죽여라』 『바실라』 『명탐정의 탄생』 등을 썼으며,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 시리즈에 〈불의 살인〉을 비롯한 단편추리소설들을 발표했다.
역사 교양서 『연인, the lovers』 『혁명의 여신들』 『조선의 명탐정들』 『조선전쟁 생중계』 『고려전쟁 생중계』 『조선직업실록』 『조선백성실록』 등을 펴냈다.
2013년 제1회 직지소설문학상 최우수상을 수상했으며 2016년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NEW 크리에이터 상을 받았다.
현재 한국미스터리작가모임에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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