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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의 시시각각] 거국 경제 부총리부터 뽑아라

이정재 논설위원

이정재 논설위원

윌버 로스는 외환위기 시절 ‘한국 사냥꾼’으로 불렸다. 한국 기업을 사정없이 물어뜯고 먹어치웠다. 그 윌버 로스가 지난주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상무장관으로 내정됐을 때 그를 기억하는 옛 재무 관료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저었다. “큰일났다. 지독한 꾼에게 걸렸다.”

영국 로스차일드의 대표였던 윌버 로스는 1998년 초 한국이 ‘떨이 세일’에 나서자 가장 먼저 한국 땅을 밟았다. 그의 나이 60세 때다. 그는 김대중 정권 유력자들과 친분을 과시했다. DJ도 자주 자문을 구했다고 한다. 그는 한국 정부와 언론의 약점을 속속들이 뀄다. 한 푼의 달러가 아쉬웠던 때 “1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큰소리쳤다. 정부와 언론은 그를 칙사 대접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훗날 훈장까지 줬다.

한국은 그에게 손쉬운 먹잇감이었다. 그는 한국 금융기관을 지렛대로 썼다. 10억 달러는 말 뿐, 실제로는 3억5000만 달러만 들여왔다. 나머지는 우리 정부의 구조조정기금이나 산업은행에서 조달했다. 이렇게 돈을 빌려 인수한 뒤 한라그룹을 갈가리 찢어 팔았다. 한라시멘트는 프랑스의 라파즈사에, 한라펄프는 미국 보워터사에, 한라공조는 미국 포드사에 넘겼다. 전형적인 벌처펀드의 수법이다. 1년 만에 성공 보수 등으로 그가 챙긴 돈만 800억원이 넘었다. 이후에도 하나로통신, 현대투신 투자·매각 등 굵직굵직한 거래마다 손을 댔다.

그를 상대했던 옛 재무 관료 A씨는 “요구가 끝이 없었다. 안 들어주면 권력과의 친분을 활용해 압박하기도 했다. 정말 상대하기 고약했다”고 돌아봤다. 한국에서 번 돈을 종잣돈 삼아 윌버 로스는 2000년 투자회사 ‘WL 로스&컴퍼니’를 만든다. 2014년 현재 그의 재산은 290억 달러다. 60세까지 월급쟁이였던 그가 불과 십여 년 만에 이런 거대한 부를 일군 원천이 바로 ‘한국 사냥’이었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그런 그가 상무장관이 된다는 건 한국을 뜯어먹어 본, 어떻게 요리할 줄 아는 전문가 손에 칼이 쥐어졌다는 의미다. 그는 한국을 어떻게 대할까. 나는 불길한 상상을 그칠 수 없다. 한국 덕분에 돈 벌었다고 봐줄 것 같지는 않다. 게다가 트럼프의 경제팀은 철저히 아메리카 퍼스트, ‘무조건 미국 이득 우선’인 인물들로 짜이고 있다.

이런 ‘꾼’들을 상대해야 할 우리는 어떤가. 극심한 국정 혼란 속에 경제 리더십은 실종 상태다. 트럼프 측은 “한국의 죽은 정부와는 상대할 필요가 없다”는 말을 공공연히 흘리고 있다. 일본은 “한국 쪽 책임자가 누군지 모르겠다”며 통화 스와프 협상에서 발을 빼고 있다고 한다.

당장 경제 리더십부터 세워야 한다. 경제는 지금 백척간두다. 탄핵 심판이 진행되는 동안 경제는 더 엉망이 될 것이다. 대통령 대행이 된들 황교안 총리로선 리더십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망한 정권의 대리인, 정치적 폐족의 신분으로 미국·중국·일본의 강력한 공세를 견뎌내기 쉽지 않다. 하물며 유일호 경제부총리나 임종룡 내정자는 더 어정쩡한 처지다.

거국 내각 경제부총리가 해법이 될 수 있다. 거국 내각 총리는 여야 간 정치적 셈법 차이로 어렵다고 치자. 경제부총리는 다르다. 여야 합의가 비교적 쉬울 수 있다. 앞으로 최소 6개월, 예상되는 극심한 정국 혼란을 막아주는 방파제가 될 수도 있다. 고만고만한 인물이 아닌 총리급 인물을 골라야 한다. 조건은 ①국제 금융에 달통하고 ②위기를 이겨봤으며 ③국제사회가 인정할 만하고 ④정치적 편향이 없되 ⑤흔들리는 관료들을 꽉 잡을 수 있어야 한다. 강봉균, 윤증현, 이규성, 이헌재, 진념…. 인물은 차고 넘친다. 윌버 로스를 상대하고도 남음이 있다. 유일한 걸림돌은 정치권의 얄팍한 계산이다.

열강에 둘러싸인 우리에겐 경제 실력이 곧 국방이자 외교다. 경제가 망가지면 안보도 생존도 없다. 나라 안에선 머리가 터져라 싸워도 좋다. 대신 곳간은 꼭 지킨다는 믿음을 정치가 줘야 한다. 거국 경제부총리는 그 시금석이 될 것이다. ‘나라는 누가 집권하든 잘 굴러갈 것이다’라는 믿음, 이런 믿음을 주지 못하는 정치야말로 경제엔 최고 해악이다. 정치가 경제를 망치면 경제는 반드시 복수한다. 정치를 송두리째 쓸어버릴 수도 있다. 내일 탄핵이 부결되든 가결되든 상관없다. 즉시 거국 경제부총리부터 합의하라.

이정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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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