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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ew York Times] 트럼프와 중국, 결국은 잘 지낼 것

에릭 리 정치학자

에릭 리
정치학자

중국만큼 도널드 트럼프의 공격을 많이 받은 나라도 없다. 트럼프는 대선기간 내내 “중국 정부가 불법적으로 수출을 지원하고 통화를 조작해 미국의 부를 빼앗아 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대선 슬로건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는 중국을 박살 내 유일 초강대국의 지위를 되찾자는 선동처럼 들렸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중국 국민은 트럼프를 열광적으로 지지했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트럼프가 당선되자 가장 먼저 축하인사를 건넨 지도자 중 한 명이었다.

베이징(北京)은 워싱턴의 환골탈태를 고대하는 상황이다. 중국 입장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집권한 지난 8년은 1971년 미·중 관계 정상화의 문을 연 리처드 닉슨 대통령 행정부 이래 가장 어려운 시절이었다. 힐러리 클린턴이 국무장관을 지낸 오바마 행정부는 ‘아시아 중시(pivot to Asia)’ 전략을 통해 미국과 아시아·태평양 지역 동맹을 강화하려 했다. 아태 지역에서 중국의 힘을 빼고 미국의 군사적 주도권을 확대하려는 의도였다. 보호무역주의자 트럼프의 당선으로 물거품이 되긴 했지만 오바마는 중국의 경제적 고립을 유도하기 위해 일본과 손잡고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추진하기도 했다.

91년 냉전이 종식된 이래 빌 클린턴 대통령부터 오바마 대통령까지 미국 지도자들은 세계를 미국의 구상에 따라 재조립하려 했다. ‘세계화’란 미명 아래 ‘미국 제국(American Empire)’을 건설하려 한 것이다. 미국의 설계에 따라 규모가 커지고 복잡해진 동맹과 국제기구를 통해 무역과 금융·국제관계에 대한 글로벌 표준을 만들고자 했다. 이를 바탕으로 미국은 정치·경제·군사력을 확장해 다른 나라들이 민주적 선거제도와 시장 자본주의를 받아들이도록 압박했다.
그러나 중국만은 이를 거부했다. 세계화로 가장 많은 혜택을 받긴 했지만 중국 정부는 세계화를 자국 규칙에 맞춰 받아들였다. 이를 통해 중국은 불과 한 세대 만에 가난한 농업국가에서 강력한 공업국가로 변신했다. 하지만 정치적으로는 공산당 일당독재를 강화하고 시장 개방의 범위도 제한했다.

이 같은 정경분리 개혁방식은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중국 경제는 양적으로는 물론 질적으로도 지속적으로 성장했다. 이에 놀란 미국 지도층은 중국이 장기적으로 미국에 가장 위협적인 상대가 될 것이라고 인식했다.

트럼프는 이미 알고 있었던 듯 보이지만 워싱턴의 지도층은 알아차리지 못한 사실이 있다. 급부상한 중국이 미국식 자유주의 질서에 위협이 될까 봐 힘을 투사하는 동안 미국 내부의 정치체제는 쇠락의 길을 걸었다는 점이다. 세계 질서를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끌고 가려던 미국 지도층의 노력은 국내에서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간의 갈등을 부채질했다. 미국 내부의 희생으로 미 제국을 세운 셈이다.

세계화 정책 덕분에 미국 상류층에 부와 권력이 집중된 반면 중산층은 몰락했다. 중산층의 경제적 기반이었던 산업기반이 산산이 부서졌다. 인프라는 낡아 빠졌고 교육 시스템도 망가졌으며 사회계약체계도 엉망이다. 미국은 전 세계 인구의 4.5%와 국내총생산(GDP) 20%를 차지하지만 전 세계 군사비 지출의 40% 가까이를 부담하고 있다.

트럼프가 백악관에 입성하면 미·중 관계가 어려워질지 모른다. 특히 무역 갈등으로 단기적 관계는 악화될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양국 관계가 더욱 견고해질 공산이 크다. 미국이 세계 질서를 자신의 입맛대로 끌고 가려 하지 않는다면 중국도 미국과 잘 지내려 할 것이다. 중국은 경쟁국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잘 안다. 지금까지 미국은 자신들의 가치와 기준을 다른 나라들에 강제로 적용하려 해 왔다. 이 때문에 중국이 미국을 싫어하고 저항해 온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가 집권한 미국은 이런 일방주의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는 다른 나라에 이래라저래라 명령할 마음이 없음을 보여 줬다. 중국 지도층은 의지가 강하고 실용적이다. 국가 운영 능력도 갖추고 있다. 게다가 트럼프는 이데올로기에 구속받지 않는 사업가다. 나라가 이념의 굴레에서 벗어나면 가장 앙숙이었던 경쟁 국가와도 합의를 이룰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두 국가(미·중)의 관계가 새로운 시대로 접어든 것이다.

오바마 행정부의 아시아 전략은 실패했다. 아태 지역에 평화를 정착시키지 못했다. 동아시아에서 제일 가까웠던 동맹국 필리핀조차 미국과 각을 세우고 있다. 세계의 경찰 노릇을 하겠다고 설치다가 집안 살림을 망치며 값비싼 대가를 치른 셈이다.

중국은 글로벌 패권을 두고 미국과 경쟁하려는 욕망이 없다. 다만 자신이 속한 아태 지역에서 주도적 위치를 되찾으려는 건 당연한 생각이다. 트럼프가 집권하는 미국은 무엇보다 자국 재건에 관심을 쏟을 필요가 있다. 장기적으로 보면 트럼프의 미국은 최근 우리가 기억하는 어떤 시대보다 중국과 손발을 잘 맞춰 갈 가능성이 크다.


에릭 리
정치학자

◆원문은 중앙일보 전재계약 뉴욕타임스 신디케이트 지난달 15일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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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