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cover story] ‘휘게’하는 삶… 삶의 공간을 열었다, 마음이 열렸다

| ‘행복한 나라 1위’ 덴마크의 휘게 라이프
 
덴마크식 라이프스타일 휘게(hygge)엔 폭신한 양말 같은 따뜻한 아이템이 필수다. 보 크리스텐센 레고코리아 대표 부인과 두 딸이 서울 집에서 ‘휘게’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덴마크식 라이프스타일 휘게(hygge)엔 폭신한 양말 같은 따뜻한 아이템이 필수다. 보 크리스텐센 레고코리아 대표 부인과 두 딸이 서울 집에서 ‘휘게’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생소한 덴마크 단어 하나가 한국을 비롯해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바로 ‘휘게(hygge)’. 안락함·만족감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 휘게는 단순하고 소박한 덴마크식 라이프스타일을 함축하는 단어다. BBC 방송 등 서구 언론이 소개하면서 휘게 열풍이 세계로 확산하고 있다. 휘게 라이프를 소개하는 서적이 각국에서 출간됐고, 인스타그램에는 휘게 해시태그(#) 사진이 넘쳐난다. 지난달 옥스퍼드 영어사전 올해의 단어 후보로 선정되기도 했다.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꼽히는 덴마크인들이 한다는 휘게. 혹시 휘게에 행복의 비밀이 숨어 있는 건 아닐까. 덴마크인들에게 직접 물었다. 어떻게 하면 휘게할 수 있나요?

 
덴마크 라이프스타일 ‘휘게’를 즐기고 있는 보크리스텐센 레고코리아 대표와 맏딸 마야, 부인 하이디, 둘째 딸 소피(왼쪽부터).

덴마크 라이프스타일 ‘휘게’를 즐기고 있는 보크리스텐센 레고코리아 대표와 맏딸 마야, 부인 하이디, 둘째 딸 소피(왼쪽부터).

 
휘게, 그 안락함에 대하여
육면체 프레임 디자인이 특징인 덴마크 디자이너 모겐스 라센의 ‘쿠버스 캔들 홀더’. 주한 덴마크 대사관저 거실에 놓여있다.

육면체 프레임 디자인이 특징인 덴마크 디자이너 모겐스 라센의 ‘쿠버스 캔들 홀더’. 주한 덴마크 대사관저 거실에 놓여있다.


지난달 28일 보 크리스텐센 레고코리아 대표의 초대를 받았다. 휘게 관련 인터뷰를 요청하자 그는 “진정한 휘게는 말로 설명할 게 아니라 직접 느껴봐야 한다”며 집으로 초대했다. 오후 6시쯤 서울 동빙고동 자택에 도착하니 크리스텐센 대표와 부인 하이디, 두 딸 마야(16)와 소피(14)가 반갑게 맞아 주었다. 집안에는 포근한 기운이 감돌았다. 집 곳곳에 놓인 촛불과 램프, 크리스마스 트리를 장식한 꼬마전구가 거실을 은은하게 밝혔다. 나무로 된 식탁에는 간단한 음료수와 소피가 직접 구운 생강 과자, 초콜릿이 예쁜 냅킨과 함께 차려져 있었다.


크리스텐센 대표는 “휘게를 한 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다”고 입을 열었다. 그는 “휘게는 일종의 감정”이라며 “가족과 저녁을 먹고 휴식하면서 마음의 긴장을 풀고 편안함을 느끼는 게 내게는 휘게”라고 말했다. 부인 하이디는 “함께 있는 사람들 간에 친밀감이 형성돼야 휘게”라고 덧붙였다.
 
리만 대사 부인이 직접 만든 생강 과자를 로열 코펜하겐 접시에 담아냈다.

리만 대사 부인이 직접 만든 생강 과자를 로열 코펜하겐 접시에 담아냈다.


크리스텐센 대표는 퇴근하면 바로 귀가해 가족과 저녁 식사를 함께한다. 보통 1시간 정도 걸리는 식사 동안 가족 모두 휴대전화 사용이 금지된다. 온전히 서로에게 집중하기 위해서다. 소소한 일상에서부터 집안 대소사, 사회 문제까지 다양한 주제로 대화한다. 이런 시간이 이 가족에게는 휘게다. 주말엔 거실에 모여 영화를 보거나 각자 책을 읽는다. 마야는 “털실로 짠 양말과 포근한 담요, 따뜻한 차 한 잔 있으면 휘게”라고 말했다. 소피는 “주말에 크리스마스 트리를 장식하고 생강 과자를 구우면서 휘게했다”고 말했다.

다음날 대사관저에서 만난 토마스 리만 주한 덴마크 대사는 “휘게를 직역하면 영어의 코지니스(cosiness·아늑함)에 가깝지만 실제 의미는 더 넓게 쓰인다”며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느끼는 단란함(togetherness), 공기 중에 떠 있는 편안한 분위기를 지칭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명사와 동사로 동시에 쓰이는데, 형용사는 휘겔리(hyggeligt)다. 보통은 적은 인원이 함께할 때를 말하지만, 분위기가 편안하다면 대규모 행사도 휘겔리할 수 있다. 리만 대사는 “지난 10월 덴마크 총리 방한 만찬은 300 명 넘게 참석한 격식 있는 행사였음에도 농담이 오가는 등 편안한 분위기 속에 진행돼 휘겔리했다는 평을 들었다”고 말했다.
 
랜턴에 양초를 앉히면 바닥에 내려놓을 수 있어 활용도가 높다.

랜턴에 양초를 앉히면 바닥에 내려놓을 수 있어 활용도가 높다.


덴마크에서 10여 년 거주한 한정식 전문점 운산의 김윤영(69) 대표는 “휘게를 한국식으로 설명하면 어렸을 때 시골집 아랫목에 이불 덮고 앉아 화롯불에 군밤을 구워 먹으며 오순도순 이야기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1967년 덴마크로 유학 가서 학위를 마친 뒤 현지에서 교사로 일했다. 9년째 북유럽 라이프스타일 숍 덴스크를 운영하는 김효진(36) 대표는 휘게를 “내면에서 오는 행복감”으로 설명했다. 그는 “덴마크인들은 사랑하는 공간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시간을 보낼 때, 양초를 켜고 맛있는 음식과 대화가 오갈 때 느끼는 행복감을 추구한다”고 말했다.

한국에 사는 덴마크인 에밀 브레델 라우센(31)은 “지난 여름 휴가지 몰타의 루프톱 바에서 아내와 와인을 마실 때, 제주도에서 회를 먹을 때, 빗속을 걸을 때가 최근 휘게를 느낀 순간들이었다”며 “그 순간 그 자리에 있던 구성원이 즐거운 감정을 동시에 느낀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말했다.

 
휘게를 가능케 하는 것들
덴마크 스타일로 꾸민 거실. 간결한 디자인의 소파와 의자, 온기를 느끼게 해주는 러그와 램프가 특징이다. [사진 보컨셉]

덴마크 스타일로 꾸민 거실. 간결한 디자인의 소파와 의자, 온기를 느끼게 해주는 러그와 램프가 특징이다. [사진 보컨셉]


덴마크는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다. 제프리 삭스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 등이 발간한 ‘세계 행복 보고서 2016’에 따르면 157개국 가운데 덴마크는 행복 랭킹 1위였다. 한국은 58위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조사하는 ‘더 나은 삶의 질 지수’에서는 38개국 가운데 덴마크가 3위를 차지했다. 리만 대사는 “휘게 만으로 덴마크인의 행복을 설명할 수는 없지만 휘게와 행복은 분명한 연관성이 있다”고 말했다.

무상 교육·의료 서비스 등 사회 안전망이 두터운 복지 국가인 데다 정부와 사회, 이웃에 대한 신뢰가 높기에 행복도가 높다는 게 리만 대사의 주장이다. 하지만 고용과 연금이 안정적이고, 일과 가정이 균형을 이뤄 가족과의 시간이 확보되기 때문에 휘게를 추구할 수 있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

휘게는 겨울이 긴 덴마크 자연환경과도 연결된다. 비와 눈을 뿌려대는 추위 때문에 덴마크식 휘게에는 촛불이 빠지지 않는다. 김윤영 대표는 “북유럽 신화에서 촛불은 해를 상징한다”며 “어둡고 추운 겨울이 가고 해가 다시 나오기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촛불을 켠다”고 말했다.

가정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다 보니 집안을 가꾸는 산업이 커졌다. 덴마크인들에게 집은 단순히 먹고 자는 곳 이상의 큰 의미가 있는, 휘게의 장소이자 힐링 공간이다. 이런 문화 속에서 한스 웨그너, 아르네 야콥슨, 핀 율 같은 가구 디자인 거장들이 배출됐다. 덴마크 가구 브랜드 보컨셉을 수입하는 서태원 디아이비즈 대표는 “덴마크 가구는 단순하지만 실용적인 디자인과 기능성이 특징”이라며 “테이블 높낮이를 조절해 식탁과 티 테이블 겸용으로 쓰고, 소파 옆면에 수납 공간을 만드는 식”이라고 말했다.
 
리만 대사가 아끼는 덴마크 가구 디자이너 한스 웨그너의 ‘위시본 체어’에 앉았다.

리만 대사가 아끼는 덴마크 가구 디자이너 한스 웨그너의 ‘위시본 체어’에 앉았다.


덴마크인들이 몸을 치장하는 대신 집을 꾸미는 데 공을 들이는 것도 단순히 예쁜 인테리어를 추구하기 때문이 아니라 집과 가구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리만 대사는 약 15년 전 구입한 한스 웨그너의 ‘위시본 체어’를 부임지마다 갖고 다닌다. 1949년 이후 67년째 생산되고 있는 명작이다. 성북동 대사관저 한쪽 구석 햇빛 잘 드는 곳에 테이블과 놓았는데, 가족이 휘게하는 공간이다.
 
소피와 마야는 각각 유아 세례 때 받은 선물을 간직하고 있다(왼쪽부터).

소피와 마야는 각각 유아 세례 때 받은 선물을 간직하고 있다(왼쪽부터).


휘게는 겸손하고 소박하며 작은 것의 소중함을 아는 덴마크인의 정서를 바탕으로 한다. 물질적인 것을 뛰어넘었을 때 행복감이 또렷해진다는 것이다. 김효진 대표는 “좋은 가구는 가격이 비싸지만 덴마크인들은 가구를 한 번에 바꾸는 게 아니라 10년에 걸쳐서 하나씩 구입하면서 집을 완성한다”며 “가구나 생활 집기는 사용하기 위한 것뿐 아니라 다음 세대에게 물려줘 가족의 스토리를 이어가는 매개체로 여긴다”고 말했다.

 
토마스 리만 주한 덴마크 대사가 지난해 태어난 딸에게 선물한 딸랑이. 집안 대대로 내려온 것으로족히 100년은 넘었다.

토마스 리만 주한 덴마크 대사가 지난해 태어난 딸에게 선물한 딸랑이. 집안 대대로 내려온 것으로족히 100년은 넘었다.

하이디 크리스텐센이 46년 전 걸음마를 시작할때 신었던 신발. 친정 어머니가 간직해오다 실버 코팅을 해서 결혼 선물로 줬다.

하이디 크리스텐센이 46년 전 걸음마를 시작할때 신었던 신발. 친정 어머니가 간직해오다 실버 코팅을 해서 결혼 선물로 줬다.


덴마크인들은 오래되고 역사가 담긴 물건을 사용하는 것을 높이 평가한다. 가족 간의 휘게를 가능하게 해주는 매개이기 때문이다. 가령 리만 대사는 집안 대대로 내려온, 100년은 족히 넘은 딸랑이를 부모님께 받아서 지난해 태어난 딸에게 선물했다. 하이디 크리스테센은 46년 전 걸음마를 시작할 때 신은 신발을 실버 코팅해서 거실에 장식했다.


 
한국인이 휘게하려면
크리스텐센 레고코리아 대표 가족이 단출하게 차린 ‘휘게’ 초대 상. 목재 식탁 위에 양초를 켜고 과자와 음료를 냈다.

크리스텐센 레고코리아 대표 가족이 단출하게 차린 ‘휘게’ 초대 상. 목재 식탁 위에 양초를 켜고 과자와 음료를 냈다.


덴마크인과 생활과 문화가 전혀 다른 한국인도 휘게할 수 있을까. 실천하기 위한 조언을 구했다. 크리스텐센 대표는 “휘게는 삶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선택과 결정을 내리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말했다. 가족을 최우선에 두기로 선택하면 일주일에 한 번 시간을 정해 모여서 함께 시간을 보낸다. 이때 휴대폰과 TV는 끄고 온전히 서로에게 집중하는 연습을 해보라고 크리스텐센 대표는 권했다. 당장 어색하면 보드게임이나 레고처럼 가족이 함께할 수 있는 놀이로 시작하면 도움이 된다. 라우센은 “휘게는 개인적인 희생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뭔가를 포기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들 부부는 일주일에 하루를 ‘데이트 나이트’으로 정했다. 각자 휴대폰을 끄고 결혼 전처럼 밤늦도록 데이트를 한다.

김효진 대표는 “내가 머무는 공간을 사랑하라”고 조언했다. 공간에 관심을 갖고 가꾸면 자연스럽게 누군가를 초대하고 싶고 좋은 음식을 나누고 싶어지기 때문에 휘게할 수 있다는 것이다. 휘게 문화에서는 외식 대신 손님을 집으로 초대한다. 하이디 크리스텐센은 “집이 가족은 물론 친구들과의 관계에서도 구심점이 되기에 자연히 럭셔리 브랜드 가방이나 옷을 사는 것보다 집안을 꾸미는 게 훨씬 큰 만족감을 준다”고 말했다.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마음가짐도 필요하다. 하이디는 “음식 자체에 대한 기대치가 높지 않기 때문에 빵과 햄 몇 조각이나 샐러드·음료수를 간소하게 준비한다”며 “서로 부담이 없어야 휘게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 상 가득 음식을 차려내는 한국식 초대 문화로는 휘게가 성립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김윤영 대표는 “자기 공간을 조금은 오픈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덴마크에 살던 20대 시절 작은 방이었지만 깨끗이 치우고 촛불을 잔뜩 켜놓으면 친구들이 각자 냉장고에 있던 빵과 소시지, 맥주를 하나씩 들고 모였다. 개인 공간을 오픈하는 것은 마음을 여는 것이다. 집이 작으나 크냐 문제가 아니라 좋은 사람과 즐거운 시간을 갖는 게 목적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리만 대사는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촛대와 램프를 당장 들여놓으라고 권했다. “천장 불을 켜지 않은 채 양초와 램프에서 나오는 은은한 불빛 아래 모이면 저절로 마음이 열립니다.”


 
한국에서 휘게할 수 있는 7가지 팁
 
한스 웨그너가 1949년 디자인한 ‘위시본 체어’.

한스 웨그너가 1949년 디자인한 ‘위시본 체어’.

1 삶의 우선순위를 정하라.

2 뭔가 포기하고 희생하라.

3 누구든 함께할 때는 휴대전화를 꺼라.

4 내가 머무는 공간을 사랑하라.

5 자기 공간을 오픈하라. 마음도 열린다.


6 낡고 오래된 물건에 가치를 두자.

7 담요와 양말, 따뜻한 차, 그리고 촛불을 준비한다.


글=박현영·유지연 기자 hypark@joongang.co.kr
사진=오종택·김성룡 기자 oh.jongtaek@joongang.co.kr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