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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선미의 취향저격 상하이] <19> 대문호 루쉰과 장아이링의 옛집을 찾아서

 
장아이링은 루쉰과 함께 상하이를 대표하는 작가다.

장아이링은 루쉰과 함께 상하이를 대표하는 작가다.


루쉰(魯迅)과 장아이링(張愛玲)은 중국을 대표하는 문호다. 루쉰은 익히 아는 『아Q정전』, 『광인일기』의 작가이며, 장아이링은 영화 ‘색계’의 원작 소설가다. 두 사람은 20세기 초에 왕성하게 활동하며 주목받았지만, 각자의 문학과 삶은 완전한 대척점을 이룬다. 상하이에서 그들의 판이한 흔적을 추적하는 일은 무척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옛집을 소개하기 전에 두 작가의 삶과 작품부터 비교해봐야 할 것 같다. 우선 혁명가를 자처한 루쉰은 계몽주의적 사회소설을 썼고, 소시민을 자처한 장아이링은 유미주의적 작품을 썼다. 루쉰은 한 외국인이 운영하는 서점을 500번이나 다녀간 독서광이었고, 장아이링은 헐리우드 영화와 현대식 영화관을 사랑했다. 그들의 기호는 작품에도 그대로 투영됐다. 루쉰은 마르크스 레닌 주의에 영향을 받은 에세이를 많이 남겼고, 장아이링의 소설에는 늘 남녀간의 사랑과 결혼, 극장과 카페가 등장한다.
 
루쉰 공원 안에 위치한 루쉰 기념관.14억 중국인이 사랑하는 작가 루쉰의 동상. 그의 묘가 상하이 루쉰 공원에 있다.

루쉰은 1936년 상하이에서 생을 마쳤다. 그는 사후부터 지금까지 중국 리얼리즘 문학의 대가, 위대한 혁명 사상가로 14억 중국인의 사랑을 한몸에 받아 왔다. 반면 장아이링이라는 이름은 오랫동안 어두운 골방에 묻혀야 했다. 1952년 홀연 미국으로 떠난 뒤, 반공작가로 낙인 찍혔기 때문이다. 물론 타이완과 홍콩에서는 그녀의 작품이 꾸준히 재판되어 인기를 누렸다. 장아이링은 미국에서 별다른 작품 활동 없이 평화롭게 지내다가 1992년 LA에서 영면했다.
 
루쉰이 생의 마지막 9년을 보낸 상하이 루쉰 옛집. 내부 촬영이 금지 등 관람 제한이 있다.

루쉰이 생의 마지막 9년을 보낸 상하이 루쉰 옛집. 내부 촬영이 금지 등 관람 제한이 있다.


루쉰의 흔적이 가장 짙게 서린 곳은 시내 북쪽의 루쉰 공원(魯迅公園)과 둬룬루(多倫路) 일대다. 루쉰은 이곳에서 생의 마지막 9년을 보냈다. 루쉰 공원 안에 그의 묘와 문학 기념관이 있고, 공원 남쪽 출구로 나오면 생가가 10분 거리다. 평소 산책을 좋아한 루쉰도 이 길을 자주 거닐었다.

생가는 한적한 골목 안쪽에 자리잡고 있었다. 3층 규모의 아담한 현대식 집이다. ‘루쉰의 옛집(魯迅故居)’이라고 쓰인 간판은 소설가 바진의 글씨다. 안쪽에서 입장권을 8위안에 구입할 수 있는데, 보존을 위해 관람객이 제한된다.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매시부터 20분마다 최대 10명까지만 관람이 가능하다. 안내인이 동행하며 중국어로 설명해주었고,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필사적으로 막았다.
 
장아이링은 이 건물 6층에서 어머니, 고모와 함께 살았다.

장아이링은 이 건물 6층에서 어머니, 고모와 함께 살았다.


루쉰은 이 집에서 아내 쉬광핑(許廣平), 아들 저우하이잉과 함께 1933년 4월11일부터 1936년 10월19일까지 3년 남짓 살았다. 지금은 낡았지만 당시에는 지은 지 1년 밖에 안된 신축 건물이었다. 말년의 루쉰은 이미 유명 작가라 형편이 넉넉했다고 한다. 1층은 거실과 주방, 2층은 루쉰의 침실 겸 서재다, 3층은 늦둥이 아들 하이잉과 보모의 방으로 쓰였다.

루쉰은 2층 침실에서 7권의 산문집을 쓰고, 4권의 외서를 번역했다. 방에는 그가 쓰던 실제  책상과 펜, 원고지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침대 역시 루쉰이 숨을 거둔 바로 그 침대다.
 
상하이의 문학인 거리 둬룬루. 루쉰의 옛집에서 가깝다.루쉰이 500번 이상 다녀갔다는 네이산 서점. 둬룬루 거리 중간에 있다.

루쉰의 고향 샤오싱(紹興), 루쉰이 대학교수로 있던 베이징에도 그의 옛집이 있지만, 복원상태는 상하이 옛집이 가장 훌륭하다고 한다. 루쉰의 아내가 이 집에서 실제 쓰던 가구와 물건을 그대로 보관했다가 기증한 덕분이다. 그래서인지 꾸며진 박물관과 달리 실제 사람이 사는 듯한 인기척이 느껴졌다. 루쉰의 흔적을 좀더 느끼고 싶다면 문학인의 거리 ‘둬룬루’에 자리한 네이산 서점(內山書店)으로 가보자. 루쉰이 평생에 걸쳐 500번 이상 방문해 1,000권 이상의 책을 사갔다는 곳이다.
 
창더맨션 1층에 장아이링 테마 북카페가 있다.

창더맨션 1층에 장아이링 테마 북카페가 있다.


한편 장아이링의 생가는 시내 중심의 백화점 거리 난징시루(南京西路)에 있다. 장아이링은 상하이에서 태어났고, 생의 대부분을 상하이에서 살았다. 그녀는 상하이의 도회적인 분위기를 좋아했고, 패션과 화장품, 영화에 무한한 관심을 가진 소위 ‘모던 걸’이었다. 첫 원고료를 받아 백화점으로 립스틱을 사러 갔다는 일화도 있다. 그녀는 아파트에서 듣는 전차 소리를 무척 좋아했는데, 그곳이 바로 난징시루의 창더맨션(常德公寓)이다. 장아이링은 창더맨션 6층에서 1933년부터 1947년까지 어머니, 고모와 함께 살았다. 이곳에서 그녀는 『경성지련』, 『첫번째 향로』 등 주옥 같은 대표작을 완성했다.
 
장아이링 북카페에서는 그녀의 열혈팬 `장미`들을 볼 수 있다.올드상하이티하우스는 장아이링의 친필원고를 전시한 찻집이다.


 이 아파트에는 현재 일반인이 거주해 내부 관람이 불가하다. 다행히 1층에 장아이링의 작품을 테마로 한 컬러풀 카페(Colorful Cafe)가 있어 아쉬움을 달래준다. 이곳에서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열렬히 장아이링의 작품을 탐독하는 이들을 흔히 ‘장미(張迷)’라고 한다. 장미는 장아이링의 열혈 팬을 지칭하는 말이다. 카페 주인 역시 장미 중의 장미다. 주인은 홍콩에서 그녀의 친필 원고와 초상화를 직접 구해와 카페에 전시해뒀다. 카페 안에서 장아이링의 전집과 그녀가 쓴 시나리오로 만든 영화를 함께 살펴볼 수 있다. 또 한 사람의 장미를 만나려면 위위안(豫園) 근처의 올드 상하이 티하우스(Old Shanghai Tea House)도 가보자. 이 찻집 주인은 상하이의 고서적 시장에서 장아이링이 쓴 영화 시나리오 ‘타이타이 만세(太太萬歲)’를 발견했다. 원고 친필본과 함께 장아이링이 직접 그린 삽화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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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